[김순덕 칼럼]김종인은 문재인의 ‘수소폭탄’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17일 21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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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노패권주의 척결” 선언에
운동권86 뜻밖에 박수를 치며 “경제민주화님 환영합니다”
위기 때문인가, 얕잡아 본 건가
현역 공천작업 끝나서인가
문재인-김종인 밀약 통해 꼴통좌파 없는 야당 탄생하려나

김순덕 논설실장
김순덕 논설실장
박근혜 정부 탄생 주역 김종인 박사가 14일 더불어민주당 선거대책위원장으로 영입됐을 때 가장 놀라운 건 친노(친노무현) 반응이었다.

친노의 속내를 신속 정확하게 발신해온 정청래 최고위원은 “경제민주화님 환영합니다”라고 예쁘게 트위터를 날렸다. 2014년 새누리당에서 김종인과 비슷한 역할을 한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의 비상대책위원장 영입 시도 소식에 광화문에서 세월호 단식농성을 하다 말고 달려와 “박근혜 정권 탄생의 1등 공신을 영입한다면 퇴진 투쟁을 불사하겠다”고 외쳤던 것과 딴판이다. 김종인이 “친노패권주의 문제는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다”고 예고탄을 쐈는데도 “친노패권주의 없다”던 문재인은 토를 달지 않았다. ‘철새’ ‘기회주의적 행보’ 같은 비난이 새누리당에서 나왔지만 더민주당은 조용한 것도 이상하다.

그가 맡은 자리는 보통 선대위원장이 아니다. 제1야당의 대표를 이번 주 조기 사퇴시키고 대표 권한까지 전권을 장악한다. 문재인이 야권 통합을 봐가며 물러나겠다고 했는데도 김종인은 “통합하려다 정력만 낭비한다”고 잘랐다. 공천권 행사는 물론 공천 룰도 ‘편파적일 경우’ 수정할 것이고 “선대위에 친노는 한 사람도 없다”고 폭탄선언까지 했다. 안철수가 2014년 이 당에 들어올 때는 호랑이를 잡으러 왔다며 비장미를 뿜었는데 김종인은 총 한 방 안 쏘고 가볍게 호랑이굴을 접수한 형국이다.

대체 이유가 뭔지 궁금했다. 공자가 천하를 주유하며 제후를 찾았듯이 종자(鍾子·김종인)는 어디서든 전권을 요구하고,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박차고 나오는 핵폭탄임을 친노가 알기 때문일 수 있다. 그가 “가망 없다”며 나가버리면 더민주당은 정말로 끝장날 판이다.

하지만 이 가설은 친노의 속성과 너무나 안 어울린다. 박영선도 “김 위원장이 이 당의 속사정과 문화를 잘 모를 수 있다”고 했다. 이상돈 때는 비노(비노무현)인 박영선 당시 원내총무가 영입에 나섰고, 지금은 문재인이 나섰다는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같은 이중 잣대로도 설명이 미진하다.

아니면 문재인의 비장의 무기인 ‘김상곤 혁신위원회’의 공천혁신 시스템이 완비됐기 때문인지 모른다. 현역의원 하위 20% 교체를 위한 선출직공직자평가위원회의 채점 작업도 거의 끝나 김종인이 손댈 여지가 없을 수도 있다. 정청래는 14일 “공직선거후보자 검증위에서 예비후보자로서 적격 판정을 받았다는 통보가 왔다”고 트위터에 올렸다. 같은 날 영입된 김종인이 이를 모른다면 속은 것이고, 알고도 큰소리쳤다면 국민을 속였다는 얘기다.

그것도 아니라면 김종인은 문재인의 수소폭탄, 즉 ‘게임체인저(game changer)’ 가능성이 있다. 북한 김정은이 수소탄 시험을 통해 동북아의 안보 지형을 뒤흔들고 북핵 문제의 성격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작정인 것처럼, 문재인은 김종인을 통해 당내 권력구도를 뒤흔들고 더민주당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켜 자신의 체제로 대선을 치를 작정을 한 것이다!

15일 SBS 라디오 인터뷰에서 김종인은 이런 말을 했다. “문 대표도 안철수 의원과 비슷하게 내년도 대선에 대한 자기 나름대로의 판단을 했을 것 아닌가. 경쟁자들한테 자기가 내놓고 누구한테 이걸 맡겨야 할 것인가에 대해 … 이제 당을 추스르기 위해 제3자가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즉, 친노를 쳐내지 않고는 문재인 자신이 대통령이 될 수 없음을 깨닫고 그 일을 해줄 적임자로 김종인을 영입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문재인이라고 자신을 ‘도구’로 여기는 친노가 늘 좋을 리 없다. 권력의지도 없는 자신을 대선후보로 올려준 친노가 고마웠겠지만 더는 아니다. 친노 때문에 될 일도 안 된다는 걸 모른다면 대표 자격도 없다. 더구나 김종인은 안철수를 ‘깜’이 아니라고 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서도 “몇 마디 충고에 얼굴이 굳어지는 것을 보고 기대를 접었다”고 할 만큼 선구안 있는 경세가(經世家)다. 그가 박근혜 대통령에 이어 문재인 자신을 택했다면 다음 대통령은 자기 차례라고 생각할 공산이 크다. 문재인 대통령이 탄생하면 1등 공신 김종인에게 총리인들 못 주겠는가.

문재인의 리더십과 정치적 역량은 여전히 의심스럽지만 이 정도 ‘전략’이 있다면 우리는 대안(代案)정당을 가질 수도 있을 것 같다. 부디 그의 수소폭탄 실험이 북핵 같은 자충수가 되거나 엉뚱한 데서 터져 대량살상을 일으키지 않길 바랄 뿐이다.

김순덕 논설실장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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