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특조단)이 ‘문건을 둘러싸고 제기되는 의혹을 해소하겠다’며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문건 98개를 5일 추가 공개했다. 이 가운데 <조선일보>가 다시 등장하는 대목이 눈에 띈다. 2015년 8월6일 양 대법원장이 박근혜 대통령을 면담한 직후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브이아이피(VIP) 면담 이후 상고법원 입법 추진전략’에 상고법원 추진을 위해 조선일보 1면 기사를 활용하자는 제안이 담겨 있다. 당시 박 대통령이 ‘상고법원은 문제가 있으니 법무부와 협의해 창조적 대안을 창출해 보라’고 하자 법무부와 협상을 앞두고 청와대 인식을 환기하기 위해 ‘조선일보 1면 기사 등’을 활용해 압박하자고 한 것이다.

지난달 특조단이 제목만 공개한 첨부문서에는 언론 가운데 유일하게 조선일보가 등장하고, 그것도 10건이나 된다. 다른 문건에서도 행정처는 진보 성향 판사들을 ‘보수 언론을 통해 고립화’시키자거나 ‘보수 성향 언론사에…인사모(인권과 사법제도 소모임) 비판기사를 내는 방안도 검토’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그런데 특조단은 ‘특정 언론기관이나 특정 단체에 대한 첩보나 전략이란 제목의 문서들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는 거리가 있다’는 이유로 조선일보 관련 문건 내용을 하나도 공개하지 않았다. 특조단의 해명처럼 이 문건이 재판이나 법관 독립과 직접 관련되지 않을지는 모르겠으나 만일 언론을 활용해 여론을 조작하려 했다면 정당한 사법행정권 행사로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조선일보는 이 사건이 처음 불거진 지난해부터 ‘블랙리스트는 없다’며 일선 판사들의 주장을 ‘괴담’으로 매도해왔다. 청와대와의 재판 거래 흔적을 보여주는 문건이 공개되고 행정처가 판사들 연구모임 해체를 시도하거나 판사 재산상태를 뒷조사한 사실이 드러난 뒤에도 가해자 격인 행정처를 감싸고 피해자인 판사들을 비판하는 기이한 보도 태도를 보였다. 판사들이 진상 규명을 요구할 때마다 ‘분란’과 ‘갈등’ 프레임으로 편가르기를 해온 것도 특징적이다. ‘양승태 대법원’이 상고법원 추진을 위해 이에 반대하는 판사들을 사찰·압박하는 것도 모자라 특정 언론과 협조해 이들을 폄하·고립화하는 언론공작까지 벌였다면 사법부가 아니라 공작부라 불러야 마땅하다. 조선일보 문건부터 당장 공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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