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금 받자" 주말에만 반짝… 사무실 절반 불 꺼진채 썰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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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장지동 가든파이브에 있는 서울시 강남청년창업센터 사무실 모습. 불이 꺼진채 적막감이 흐르고 있다. /사진=박재원기자

서울시 청년창업센터 가보니

3대1 뚫고 선정되고도 "한달에 60시간만 채우자"

1,292개팀 사무실 잘 안써

200억 예산 낭비 우려… 공간보다 정보가 중요

'이제 나도 사장이다!'

지난 16일 창조경제의 요람으로 불리는 서울시 '강남청년창업센터'에 들어서자 복도 천장마다 이 같은 글귀가 눈에 띄었다. 이곳은 서울시가 창업촉진을 위해 아이디어만 있으면 누구나 창업을 할 수 있도록 지난 2010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지원센터다. 하지만 예비 청년창업가들로 북적여야 할 2만4,000㎡의 공간은 어둡고 적막하기만 했다.

서울 장지동 가든파이브에 있는 강남청년창업센터의 200여개 사무실은 절반 이상이 불이 꺼진 채 비어 있었다. 불이 켜진 사무실도 4명의 이름표가 붙어 있었지만 1~2명만이 보였다. 지난 3월18일 이 곳을 처음 찾았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청년 창업가 A씨는 "지난 7월에 입주해 초반에 반짝 사람들이 붐볐을 뿐 늘상 오늘처럼 불 꺼진 사무실이 상당수"라며 "재미삼아 도전한 사람들이 지원금을 받기 위해 주말에만 의무시간을 채우러 나오기도 한다"고 털어놨다.

서울시와 서울산업통상진흥원(SBA)이 운영하는 '청년창업1000프로젝트'는 20세~39세 예비 청년창업가들을 선발해 창업을 지원하는 창업지원 프로그램이다. 현재 입주 중인 5기 예비 청년창업가만 1,292개 팀에 달한다. 지난 2009년부터 4년간 청년창업1000프로젝트을 거쳐간 팀은 4,224개.

그러나 정작 약 3대1의 경쟁률을 뚫고 입소한 창업가들은 창업센터 사무실을 잘 활용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매년 200억원의 예산을 들여 창업활동비, 창업공간 등을 제공하지만 매달 50만원의 지원금을 받기 위해 기준시간(한달 60시간)만 채우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증언도 나왔다.

디자인 관련 창업을 한 B대표는 "굳이 창업센터에 올 필요가 없는 업종 사람들이 많아 출석만하고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꾸준히 나와서 열심히 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 역외기업을 신청해서 원래 본인이 일하던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도 있다"고 밝혔다.

마포에 위치한 강북창업센터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적게는 4~5명, 많게는 9~10명이 한 사무실에 입주해야 하지만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은 많아야 두셋 뿐이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민간빌딩 사무실의 비싼 임대료를 내느라 쩔쩔 매는 창업가들에게 이같은 현실은 답답할 수 밖에 없다. 특히 200억원의 예산 중 상당액이 낭비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서울시 등 지자체와 정부가 창업공간과 같은 하드웨어 지원에 집착하다보니 정작 창업가들이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돕는데 미흡하다고 보고 있다. 이민화 KAIST 교수는 "한시적으로는 지금처럼 정부가 지원할 수는 있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역할은 스페이스 제공이 아니다"라며 "예비창업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누구를 만나서 어떤 정보를 얻을 수 있는지 등의 연성 정보"라고 강조했다.

창업활성화를 단순히 고용률을 높이는 수단으로 이용해서는 안된다는 진단도 나온다. 배영임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창업을 만만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지나친 하드웨어 중심 지원은 옳지 않다"며 "창업 활성화라는 목표는 고용률을 늘리기 위한 것이면 곤란하다"고 조언했다. 강석흔 본엔젤스벤처파트너스 이사는 "창업경진대회에 심사를 나가 보면 아이디어 제안 수준에 머무는 준비가 미흡한 예비 창업가들이 너무 많다"며 "당장 창업에 뛰어들게 장려하기보다는 스타트업 기업에 먼저 취업을 장려해 실무와 시장을 좀 더 배우게 유도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박재원·박진용기자 wonderful@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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