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시민을 거리로 내모는 ‘정치 무능’ 언제까지 계속될 건가

2019.10.06 20:37 입력 2019.10.06 21:18 수정

지난 주말인 5일 서울 서초동 검찰청사를 포위한 대규모 촛불집회가 다시 열렸다. 참석자들은 ‘조국 수호’ ‘검찰개혁’ ‘우리가 조국이다’라는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쳤다. 1주일 전보다 참가자가 더 늘어 경찰은 통제 구간을 400~500m가량 확대했다고 한다. 개천절인 3일에는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자유한국당 의원과 당원, 보수 기독교단체, 태극기부대 등 범보수세력이 조국 법무부 장관의 사퇴를 촉구하는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촛불집회의 맞불 성격이다. 보수단체들은 오는 9일(한글날) 같은 곳에서 비슷한 집회를 예고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양 진영의 대중집회는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켜 갈수록 세 대결 양상으로 치달을 것 같다.

시민들이 자신의 정치적 주장을 위해 집회를 여는 것은 당연한 권리다. 직접민주주의는 시민의 대표를 통한 대의민주주의와 함께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문제는 제도권 정치가 이런 시민의 뜻을 수렴하고 조정하는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한 채 ‘정치 실종’ 상태가 장기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 광장에선 조 장관 진퇴를 뛰어넘어 공정과 불평등, 세대 문제, 검찰개혁, 언론개혁 등 숱한 이슈가 쏟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1980년대 반독재, 2016년 박근혜 탄핵 촛불이 여론의 압도적 지지를 받은 한목소리 집회였다면, 지금은 대규모 대결적 집회가 진행되는 최초의 사례다. 그래서 ‘시민 대 시민’의 대결 구도란 분석도 나온다. 대규모 세력전으로 사회갈등과 국론분열은 극심해지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책임 있는 정당들이 시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사회적 의제를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는 모습이 절실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이대로 대의민주주의가 계속 작동하지 않으면 시민들은 더욱 거리로 나서고, 정치는 영영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지난 5일 대검찰청과 서울중앙지검을 사이에 둔 서울 반포대로를 가득 메운 시민들이 검찰개혁을 촉구하는 촛불을 밝히고 있다. 김창길 기자

지난 5일 대검찰청과 서울중앙지검을 사이에 둔 서울 반포대로를 가득 메운 시민들이 검찰개혁을 촉구하는 촛불을 밝히고 있다. 김창길 기자

수많은 시민이 거리로 나온 것은 정쟁만 난무하고 정치는 찾아볼 수 없는 국회의 무능함 때문이란 점을 여야는 깊이 명심해야 한다. 검찰개혁만 하더라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라는 데 이견이 없다. 한데도 국회는 패스트트랙에 올라온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와 검경 수사권 조정안을 놓고 지금까지 단 한번도 논의한 적이 없다. 검사장 직선제 등 검찰에 대한 국민통제를 제도화할 다른 방안도 많겠지만, 이 역시 난상토론을 벌였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서초동에 나온 시민도, 광화문의 시민도 모두 대한민국 국민이다. 어느 쪽이 더 많이 나왔다며 참가 인원수를 따지는 건 무의미하다. 이 와중에 편 가르기를 부추기고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는 건 스스로 민주주의의 위기를 부르는 것과 같다. 시급한 국정 현안이 사실상 올스톱된 지 오래다. 정치 부재로 꼭 필요한 국정 현안들의 논점이 흐려지고 집결되어야 할 시민의 에너지가 분산되는 건 국가적으로 불행한 일이다. 여야는 이제라도 지지층을 선동하는 정치를 접고 실종된 정치를 복원하는 데 전력해야 한다. 시민 여론을 수렴하고 조정하고 결정하는 건 결국 국회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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