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시대…다시 생각해보는 노인의 가치와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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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5.11.12. 오전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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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형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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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대교육 중요성 일깨우는 '노인이 스승이다' 출간

(서울=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 고령 인구가 급속히 늘고 있다. 고령화 사회를 넘어 3년 뒤인 2018년이 되면 우리나라도 고령 사회로 진입할 듯하다.

지난 7월 통계청이 발표한 '세계와 한국의 인구 현황 및 전망'에 따르면, 올해 현재 전체 인구에서 65세 이상 노인이 차지하는 비율이 13.1퍼센트에 이른다. 2060년에는 40.1퍼센트로 높아져 세계 2위로 올라설 전망. 인구 300만명 이상 국가 중 가장 늙은 나라가 된다.

반면에 도시화, 산업화, 핵가족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전통의 가치와 역할은 크게 퇴조하고 있다. 가족 공동체에서 정신적 중추로 존중받던 노인들 또한 그 가치와 역할이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 할아버지·할머니, 손자·손녀의 조손(祖孫)간 거리도 멀어졌다. 노인이라는 존재는 더이상 존중받을 필요가 없는가.

한국국학진흥원은 '노인이 스승이다'를 출간해 잊혀져가는 노인의 가치와 역할을 다시 탐색해본다. 국학진흥원이 기획한 '전통의 재발견' 시리즈 중 여섯 번째권. 부제 '왜 지금 격대교육인가'가 말해주듯이 조부모가 손자녀에게 친근한 정서를 바탕으로 인성교육을 했던 전통의 조손 교육에 초점을 맞췄다.


필진은 모두 7명. 윤용섭 국학진흥원 부원장과 김미영 수석연구위원, 장윤수 대구교대 윤리교육과 교수, 정재걸 대구교대 교육학과 교수, 작가 겸 칼럼니스트 최효찬 씨, 장정호 부천대 영유아보육과 교수, 이창기 영남대 사회학과 명예교수가 그들이다.

이들 필자는 100세 시대를 맞아 노인이라는 존재 의미와 역할을 되새겨보고, 조손 관계의 친밀했던 전통과 실제 사례를 다각적으로 들려준다. 나아가 격대교육을 했던 서구 명문가의 경우도 살폈다.

'슬하(膝下)'라는 말이 있다. '무릎 아래'라는 뜻. 옛 한시에는 '슬하분감(膝下分甘)'이라는 구절로 자주 나온다. '분감(分甘)'은 '사랑을 베풀다'는 의미. 따라서 '슬하분감'은 '무릎 아래서 받던 사랑'을 뜻한다. 이와 관련해 '무릎학교'라는 용어도 있다.

이는 조부모가 손자녀를 무릎 위나 앞에 앉혀놓고 돌봤던 데서 비롯했다. 대가족의 전통사회에서 어린 아이들의 양육은 대개 생업활동에서 물러난 조부모에게 맡겨졌다. 아이들의 버릇 교육이나 일상적 가르침도 조부모의 몫. 아이들은 부모의 사랑 못지않게 조부모로부터 깊은 관심과 푸근한 애정을 받으며 성장했다.

그 효용성은 무척 컸다. 부모는 자녀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자녀가 이에 부응하지 못하면 질책과 분노가 앞서기 마련. 부모와 자식 사이의 긴장과 갈등이 쉽게 빚어지는 이유다.

하지만 조부모는 한 세대를 건너뛰는 관계여서 손자녀에 대해 무언가를 크게 갈망하지 않는다. 비교적 느긋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기대에 못 미치더라도 차가운 질책보다는 너그러움과 타이름으로 손자녀를 바라본다. 그 애정과 여유의 효과는 무척 크다.


이게 바로 '격대교육(隔代敎育)'이다. 현대 중국어에서 나온 이 용어는 세대를 건너뛰는 이른바 격세대(隔世代)에 근거를 둔다. 조부모가 손자녀에게 친근한 정서로 인성교육을 한다는 점에서 '조손교육'이라고도 하겠다.

격대교육의 실효성에 대해선 아주 오래전부터 인정돼왔다. '예기(禮記)'에 "군자라면 손자는 안아도 아들은 안지 않는다"는 구절이 나오고, 맹자가 "아버지와 아들은 세(勢)가 통하지 않으니 올바름을 가르칠 때 통하지 않으면 화를 내고 결국에는 서로를 해치게 된다"며 경계한 이유다.

긴 인생을 산 경험과 그 지혜를 바탕으로 손자녀를 훌륭하게 키워낸 사례는 수없이 많다. 전통사회는 이 같은 격대교육을 일상에서 당연하게 여겼다. 예컨대 조선 중기의 인물 이문건(李文楗·1494~1567)은 손자의 출생에서 16살 때까지를 꼼꼼하게 기록한 육아일기 '양아록(養兒錄)'을 남길 만큼 후손에게 각별한 애정을 나타냈다.

이 책은 격대교육의 효용을 입증하는 외국 사례도 들려준다. 대표적인 경우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흑인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오바마 대통령은 두 살 때 부모가 이혼하고 열 살부터 대학 때까지 외조부모의 집에서 살아야 할 만큼 험난한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를 보냈다.

불행의 나락에 쉽게 빠져들 수 있었던 그를 첫 흑인 대통령 반열까지 올려놓은 주역은 바로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이들은 손주가 피부색 때문에 상처받지 않도록 한없는 정성을 쏟은 반면, 곁을 떠난 오바마 아버지에 대한 험담은 한번도 하지 않았다. 오바마 대통령이 긍정적 세계관을 갖고 밝고 힘차게 살아온 배경에는 이처럼 자상하고 배려깊은 조부모의 사랑이 있었던 것.

격대교육은 비단 가족 내에 그치지 않는다. 74세의 중국 노인 옹방강(翁方綱)이 24살의 조선 청년 추가 김정희(1786~1856)와 깊은 사제의 정을 나누고, 장한나가 12살 나이에 첼로 하나로 20세기 최고 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의 제자가 됐던 건 격세의 편안함과 따스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요즘 맞벌이가 일반화하면서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필요해진 부모들은 조부모에게 아이를 맡기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이런 시류 속에 전통사회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던 조손 관계의 의미를 되짚어보고 격대교육과 경로정신의 효용성에 다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물론 사회에서 제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노인 스스로도 노력해야 한다. 자신의 멋과 존재감을 가질 때 비로소 그 가치와 역할을 존중받을 수 있어서다. 이를 위해 노인 자신의 자기계발이 필수. 즉 모든 세대가 노인의 가치와 역할을 인정하고 상호 노력할 때 상생 공동체의 행복도는 높아질 것이라고 저자들은 강조한다.

글항아리. 316쪽. 1만8천원.

id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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