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금강산관광 중단이 누구 때문인데 “南시설 철거” 협박하나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0월 24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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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금강산관광을 남측과 함께 진행한 선임자들의 의존정책이 매우 잘못됐다”며 금강산 남측 시설 철거를 지시했다고 노동신문이 어제 보도했다. 김정은은 “보기만 해도 기분이 나빠지는 너절한 시설”이라고 비난하기까지 했다. 특히 김정은이 ‘선임자들의 의존정책’ 운운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김씨 일가의 유훈통치 체제인 북한에서 아버지 김정일의 주요 정책을 사실상 비판한 것이기 때문이다. 북-미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제재 해제가 요원해지자 그 책임을 미국과 남측에 떠넘기고, 선대(先代)의 정책도 뒤집을 수 있을 만큼 자신이 강경하다고 강조하는 벼랑 끝 협박 전술이다.

김정은의 발언은 어처구니없는 적반하장이다. 1998년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소 떼 방북으로 성사된 금강산관광은 2008년 7월 관광객 박왕자 씨 피살사건으로 중단됐다. 2010년 3월 북한의 천안함 폭침 도발로 5·24대북제재가 가동되면서 금강산관광은 더 어려워졌다. 북측의 사과나 재발 방지 약속이 없어 금강산관광이 재개되지 못한 책임을 우리 측에 돌리는 후안무치한 궤변이다.

금강산관광을 가로막고 있는 또 다른 원인은 북한의 비핵화 거부다. 북한이 성의 있는 비핵화 조치를 이행하지 않는 이상 유엔의 대북 제재는 해제될 수 없으며 그런 상황에선 금강산관광이 재개되기 어렵다.

김정은의 지시는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과 합의한 4·27판문점선언, 9·19평양선언 정신에 역행하는 것이며, 문 대통령이 22일 시정연설에서 평화경제에 북한의 호응을 촉구한 데 대한 부정적 답변이기도 하다. 어제 청와대는 김정은이 남측과 시설 폐기를 협의하라고 한 대목을 놓고 남북대화의 계기로 기대한다는 취지로 반응했다가 뒤늦게 이를 취소했는데, 그 같은 저자세는 오히려 북한을 더 엇나가게 할 뿐이다.

공동사업이 중단됐다고 상대방이 설치한 시설물을 마음대로 철거하겠다는 이런 막무가내 행태에서 어떻게 신뢰에 기반한 협력사업이 가능하겠는가. 북한이 남측 시설물을 훼손할 경우 엄정한 책임을 물을 것임을 강력히 경고하고, 북한이 진정성 있는 비핵화 태도를 보이는 것 외엔 금강산관광 재개의 길이 없다는 메시지를 분명하게 전달해야 한다. 북측의 겁박과 망발을 그대로 용인해온 것이 오히려 북측의 오만을 키워온 측면이 크다.
#김정은#금강산관광#북한 비핵화 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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