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⑤ 한국 정치에 청년은 없다]‘청년 마케팅’ 그 후 4년…청년 살리기 근본 처방 ‘법’ 없었다

이혜리·이효상·김원진 기자

국회 통과 법률 5288건 전수 분석

2012년 19대 총선에서는 그야말로 청년이 화두였다. 새누리당은 이준석·손수조로 청년 마케팅에 나섰고 민주통합당은 오디션 선발 방식으로 청년 비례대표를 선발해 김광진·장하나 의원이 국회에 입성했다. 반값 등록금이나 청년 실업과 같은 이슈들도 터져나왔다.

그 후 4년이 흘렀다. 지난달 15~29세 청년실업률은 12.5%로 1999년 6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고 지난해 첫 직장을 잡은 청년 400만명 가운데 20.3%(81만2000명)가 1년 이하 계약직이었다. ‘나쁜 일자리’만 많아지고 청년의 고통은 더 심각해지고 있다. 그동안 정치는 무엇을 한 것일까.

경향신문 ‘부들부들 청년’팀은 19대 국회의원들이 17일 현재까지 대표발의해 최종적으로 본회의에서 통과되거나 통과된 법에 반영이 된 법안 5288건을 전수 분석했다. 이 중 군인·여성 등까지 포함해 청년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법안은 643건(12.2%)으로 파악됐다.

[부들부들 청년][3부⑤ 한국 정치에 청년은 없다]‘청년 마케팅’ 그 후 4년…청년 살리기 근본 처방 ‘법’ 없었다

■국회의원들, 4년 동안 뭘 했나


청년에 영향을 주는 법안 643건은 건수로 보면 많은 것 같지만 면밀히 내용을 들여다보면 청년들의 사회적 불평등 문제를 구조적으로 풀 수 있는 법 제정은 없었다. 제한된 범위에서 지원 금액이나 세제 혜택을 ‘찔끔’ 늘린 것이 대부분이다. 복합적 처방이 필요한 청년 문제를 어떤 방법으로 해결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음이 극단적으로 드러났다.

예를 들어 ‘괜찮은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서는 일자리의 80%를 책임지고 있는 중소기업 임금을 끌어올려야 한다. 청년에게 영향을 끼치는 법안(통과) 가운데 중소기업 법안이 가장 많은 새누리당은 중소기업에 대한 규제 완화·세제 지원 접근법이 두드러졌다. 그러나 이 같은 방식으로 중소기업에 지원할 경우 노동자 임금 상향으로 직결될 것인지 불명확하다. 과녁을 명확히 조준하지 않고 화살만 쏘아댄 격이다.

중소기업 노동자들이 많은 점을 감안하면 대기업의 ‘납품단가 후려치기’ 등 ‘갑질’ 제재가 강력해야 한다.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불공정 거래 규제에 방점을 찍었다. 기업 생태계 질서에 관한 법안이 새누리당이 19건인 데 비해 30건에 이르렀다. 문제는 비뚤어진 대·중소기업 간 구조를 바꾸기엔 미약한 수준이었다는 점이다. 대기업 등으로부터 일감을 받는 ‘수탁기업’의 권익을 위해 ‘수탁기업협의회를 활성화하자’(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김우남 의원 대표발의)는 식이다.

다만 정의당은 종합과세대상 금융소득 기준을 2000만원에서 1000만원으로 하향하는 등 금융소득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는 법안(소득세법 일부개정법률안, 박원석 의원 대표발의)을 내 세금을 통한 불평등 완화에 신경 쓰는 모습을 보였다.

■괜찮은 일자리 창출엔 ‘무능’

일자리 창출 분야를 보면, 새누리당은 ‘창업’과 연계된 법안들이 많았다. 대학 안에 창업 지원 업무를 총괄하는 창업보육센터를 설치하는 중소기업창업지원법 일부개정법률안(이현재 새누리당 의원)이나 온라인을 통한 소액 증권 공모가 가능한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창업기업의 자금조달을 용이하게 하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김상민 새누리당 의원)이 그 예다. 상대적으로 더불어민주당은 일자리 창출 관련 법안엔 소홀했다. 다만 협동조합을 일자리 창출의 한 방법으로 보고 지원을 촉진하는 법안이 있었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은 그동안 일자리 숫자가 문제가 아니라 ‘괜찮은 일자리’가 많아져야 한다는 주장을 펼쳐왔다. 저임금의 불안정한 일자리를 줄이자는 것이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본회의에서 처리된 것을 기준으로 보면, 파견·하청 노동자에 관한 법안은 거의 없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비율을 공공기관 공시에 넣고 경영실적 평가에 반영한다는 법안(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박남춘 의원 대표발의) 정도가 눈에 띄었다. 더불어민주당이 발의한 파견·하청 노동 관련 법안은 대부분 ‘계류’ 상태였다. ‘거대 여당’인 새누리당의 저지로 통과시킬 수 없었다는 ‘변명’을 내세울 수 있겠지만 제1야당의 의제화 능력, 타협·협상력 수준을 지적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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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불평등을 부추기는 법안

주거 문제에 대한 접근방식도 유사했다. 새누리당은 임대주택 확보도 임대사업자 또는 민간 부동산회사에 세제 혜택을 주는 방식으로 해결하려고 했다. 19대 총선 때 새누리당은 불필요한 비과세, 감면제도를 대폭 정비하겠다고 했지만 그러한 내용은 없었다. 오히려 부동산 경기 활성화를 위해 주택 거래에 따른 취득세 부담을 완화하는 법안(황영철 새누리당 의원)을 냈다. ‘하우스푸어’ 지원을 위해 9억원 이하 주택을 취득한 후에 5년 이내에 양도할 경우 양도소득세를 전액 면제하는 법안(나성린 새누리당 의원)도 있었다. 법안 취지란에는 ‘주거안정’을 내걸었는데 내용은 오히려 집값만 올릴 법한 법안들이었다.

더불어민주당도 계류 법안을 빼고 ‘본회의 처리’를 기준으로 보면 새누리당과 주거 법안 수준이 대동소이했다. 기존에 자율적으로 하게 돼 있었던 공공임대주택 임대료를 가구소득을 고려해 차등 부과하도록 강제하는 법안(남인순 대표발의) 정도가 눈에 띄었다.

■엘리트의 길 밟아온 의원들…복합 처방 필요한 청년 고통 이해할까

타인의 고통은 자신이 유사한 일을 겪었거나 가까이서 면밀히 지켜봐야 이해가 가능하다. 시민뿐 아니라 일반 당원의 목소리가 당 지도부에 전달되는 통로가 빈약한 한국 정당의 현실을 고려하면, 국회의원 각자의 전문성과 경험치는 ‘이해의 폭’과 직결된다. 19대 국회의원 293명이 국회의원이 되기 전 가졌던 직업을 전수조사해 본 결과 새누리당엔 국가고시를 패스한 엘리트와 학자, 언론인이 44%였다. 더불어민주당은 1970~1990년대 운동권 출신이 많았다. 평균 연령도 54세이고 50~60대가 대부분이다.

삶의 궤적이 저임금·주거난·비정규직·등록금 빚·가난 대물림 문제 등이 복잡하게 엉켜있는 ‘2016년의 흙수저 청년’을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다.

■특별취재팀
박재현 송윤경 이혜리 이효상 정대연 김서영 김원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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