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 인간이 만드는 길 - ‘마음’ 전문가들과의 대화](4) 프랑스 현대미술가 크리스티앙 볼탕스키

우리 안에 선·악 공존… 권력자가 어느 단추 누를지 주시해야

나치도 슈베르트를 사랑… 예술은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해

크리스티앙 볼탕스키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현대미술가이며, 당대의 거장이다. 40년 넘게 세계 주요 미술관에서 작품으로 관객에게 질문을 던져왔다. 철학자의 풍모가 진하다. 그는 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4년, 파리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유대인이고 어머니는 프랑스인이다. 유대인들이 강제수용소로 끌려가던 1941년 어느 밤, 둘은 동네가 떠들썩하도록 다툰 다음 아버지는 마루 밑 비밀창고로 숨어들었고, 어머니는 관청에 가출신고를 했다. 볼탕스키가 태어난 뒤 동네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아내야 했지만, 어머니는 식구가 모두 살아있음에 안도했다. 그 후 가족은 뭉쳐 다녔고, 12세에 학교를 그만둔 볼탕스키는 주중에는 의사인 아버지와 함께 병원에서, 주말이면 소설가이자 공산당원인 어머니와 문화예술인들의 모임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가 예술가로 성장하는 데는 12살 위 형이자 세계적인 언어학자인 장 엘리, 5살 위 형인 세계적 좌파 사회학자 뤽 볼탕스키의 영향이 한몫한다.

매일 아침 병원에서 그저 세상을 관찰하던 소년 볼탕스키는 어느 날, 대로를 지나는 사람들을 세기 시작했다. 한 명, 두 명, 세 명…. 그러다 600만명이 됐을 때 그는 중얼거린다. “모두 죽었다.” 유대인 수용소에서 죽은 사람이 600만명이라는 사실을 그렇게 이해하려 했다. 그는 아티스트가 된 후, 전쟁 속 죽음을 넘어 보편적인 죽음이라는 근원으로 들어갔고, 거대한 집단학살이 반복되는 인간의 역사를 꿰뚫어 보고자 탐구했다.

작가, 크리스티앙 볼탕스키와의 만남은 지난 1월21일, 파리 근교 말라코프에 있는 스튜디오에서 이뤄졌다.

미술가 크리스티앙 볼탕스키는 “예술이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그래도 한 가지 정도 개선하는 데 자극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진다”고 밝혔다.

▲ 선한 자·악한 자 따로 없어
유토피아 좇는 자는 위험
그래서 난 종교 믿지 않아

▲ 종교·정치·기업·언론이
내면의 선악 조정하는지
매 순간 이성으로 살펴야

▲ 예술로 세상 살릴 수 없지만
작가는 세상에 큰 질문 던져야
도박사와 ‘언제 죽나’ 내기

▲ 수시로 나의 일상 촬영
그것이 마지막 작품 될 것

안희경(이하 안) = 늘 사람들을 주제로 작업해오셨습니다. 여러 나라 사람들의 심장박동 소리를 들려주거나, 거대한 크레인이 누군가 입던 헌옷을 옮기는 그곳을 거닐게도 했고, 1930년대 사람들의 흑백사진에 알전구를 비추며 사물함을 전시하기도 했죠. 여러 사람의 이미지를 통해 관객에게 존재에 대한 물음을 던져왔어요.

크리스티앙 볼탕스키(이하 볼탕스키) = 네, 제 작업에는 아주 많은 사람들이 나오죠. 왕이나 왕자에 대한 이야기는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소중하기 때문에 그래요. 아티스트로서 세상을 기록하는 제 방식이죠. 시대의 목격자가 되고자 관객의 기억과 고정관념을 흔들어 민낯을 마주하도록 안내하려고요. 작가는 관객에게 거울을 비추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안 = 사진들마다 흐릿합니다. 일부러 인화할 때 값싼 재질에 싸구려 인쇄를 찾으신다고요?

볼탕스키 = 세상엔 선명한 진실이 별로 없잖아요. 또 그래야 이 사람 저 사람 다 자기를 투영해 볼 수 있고요. 예술은 정교하지 않을 때 포용력이 커지고, 보는 이들이 각자 자기가 원하는 것을 가져갈 수 있어요. 너무 꽉 차고 선명하면 관객이 마음 붙일 데가 없어집니다. 일본에서 처음 전시했을 때, 나보고 선문화(禪文化)를 이해한다며 좋아들 했어요. 그러더니 급기야 우리 할아버지가 일본 사람이었을 거라고 우깁디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또 내 작업에서 아프리카의 정신을 본다고 하고요. 저는 이런 반응이 참 좋아요. 내가 만들었지만, 관객이 이야기를 채우는 과정 말입니다. 그렇게 만드는 기본 바탕은 질문이에요. 저는 작가라면 그 무엇보다 세상을 향해 큰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안 = 어떤 질문이죠?

볼탕스키 = 당신이 지금 스튜디오 밖으로 나갔는데, 그 순간 차가 돌진해와 죽는다면, 이는 우연일까요, 운명일까요? 파리까지 와서 요 앞 카페에서 두 시간을 기다린 거며 저녁 6시30분에 어떤 사람과 동시에 충돌한다고 어디 써 있을까요? 종교적이라면 운명이라고 믿겠지만, 나처럼 종교적이지 않다면, 우연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내게는 이 모든 것이 질문이죠. 답은 없어요. 질문은 또 다른 질문을 부르고 끝이 없으니까요. 우리가 어떤 깨우침을 얻고나면 반드시 거기엔 또 다른 현실이 찾아옵니다. 계속 계속 이어지죠. 신부님들은 답을 갖고 있을 거예요. 작가는 아니죠. 이것이 아티스트와 종교인의 차이죠.

안 = 특히 동아시아는 인과론에 따른 사고가 문화적으로 깊습니다. ‘전생에 나라를 구했다’는 표현이 치켜세우듯 일상에서 사용되고, 가난한 나라 사람들에게는 게으르고 무지하여 그렇다는 인식도 있고요.

볼탕스키 = 우선 아프리카와 아시아, 남아메리카 사람들이 가난한 이유는 세상의 큰 부자들이 그 가난한 이들의 자원과 돈을 훔쳐갔기 때문이에요. 더 게으르고 더 아둔해서 그리 사는 건 아닙니다. 수탈당하는 심각한 세계 경제구조 속에 있으니까요. 그리고 제게 일본에서 모델을 하는 한국인 친구가 있는데, 일본 사람 이름으로 개명했습니다. 인종차별 때문에. 우리 사람들은 말이죠, 참 끔찍한데, 자기 아래에 꼭 누군가를 두고 싶어 해요. 그러고는 그들은 나쁘고 더럽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실생활 속에서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검둥이’입니다. 서로 가르고 또 갈라요.

안 = 결국 다 같은 처지인데, 숙명적으로 풀어내며 우월감을 가지려는 해석이라는 건가요?

볼탕스키 = 저는 우리가 세상에 존재하는 배경은 우연에 의해서라고 봅니다. 저나 당신이나 우리 부모님들이 딱 그 시간에 사랑을 나눴기에 여기 있다고 여기죠. 2분만 늦게 사랑을 나눴어도 다른 누군가가 있을 거고, 우리 얼굴도 누군가가 빚어낸 것이 아니라 먼저 태어난 이들의 우연적인 조합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은 기억 못하지만, 당신 얼굴에는 증조할머니의 눈, 고조 작은 할아버지의 코가 있어요. 그들이 선택해서 나눈 사랑의 행위가 우리 안에 우연의 조합처럼 나와 있습니다. 마음 또한 먼저 왔던 이들이 우리 내면에 한 자리 정도는 차지하고 있고요. 이 모든 것이 정해진 무언가에 의해 예정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안 = 제 부모님이 다른 시간에 사랑을 나눴다해도 성별과 모습은 다를지언정 그 분들의 자식으로 세상에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다가, 또 두 분이 서로를 선택하지 않았다면 존재하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고, 꼬리를 무네요. 우연을 강조하시는데, 인간의 의지에 무게를 두는 건지요?

볼탕스키 = 네, 의지는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우리는 ‘왜 죽음을 차단하는가’라는 질문을 하고 싶어요. 우리 모두는 독보적이고 중요하지만, 매우 취약해서 빨리 사라집니다. 다 죽어요. 그런데, 현대는 죽는다는 사실을 거부하거든요. 여기서 여러 문제가 생겨요.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늘 집안에는 누군가 돌아가셨어요. 아이들이 할아버지의 죽음, 이웃의 죽음을 목격하면서 자연스레 소멸이 오는 시간을 터득해 나갔죠. 그런데 현대는 죽음을 거부합니다. 우리가 다 죽어가고 있다는 진실을 잊도록 금기시하죠. 지금은 수많은 사람들이 죽기는 죽는데 텔레비전 속에서 죽고, 죽어감이 가상의 이미지로 되었어요. 제가 농담처럼 말하는데, 이제는 다들 병원에 있다 거기서 그렇게 끝날 거라고요.

안 = 죽음을 옆에 두고 산다는 걸 깨우치면, 물 한 잔이라도 공손히 전할 거 같습니다. 저의 한계, 타인의 한계를 인정하면서요.

볼탕스키 = 그래요, 제 마지막 필름작품 소재도 저의 죽음입니다. 여기에 카메라가 다섯 대 있어요. 태즈메니아 도박사가 녹화하고 있죠. 5년 전에 내기를 걸어왔거든요. 한 번도 돈을 잃어본 적이 없었다며, 제가 9년 안에 죽을 것이 확실하다며 계약을 하자고 합디다. 이 안에서 녹화되는 모든 필름은 그가 소장하고 제게 일정 금액을 지급하는 거죠. 제가 오래 살 수록 그는 돈을 잃어요. 작품 전개와 내기에 대해 자세히 약정했죠. 이제 4년 남았어요. 그 이후에는 내가 이기는 거죠.

안 = 이기시길 바랍니다.

볼탕스키 = 한 30년은 더 살고 싶어요. 하지만 지금 70이니까 4년 안에 죽을 가능성이 확실히 높죠. 재미있는 작업입니다. 사실, 내가 그 안에 죽는 것이 훨씬 정상적이에요. 제가 죽으면 공개될 이 필름에는 계단 오르는 것도 힘에 부쳐 중간에 쉬는 늙은 모습이 나올 수도 있을 거예요. 오래 산다면요. 이 모두가 죽음으로 가는 모습입니다. 슬프지만 정상이에요.

볼탕스키의 설치작 ‘페르손(Personnes·사람들)’. 2010년 파리 그랑 팔레의 기획전 ‘모뉘망타’ 출품작으로 익명의 수많은 옷들을 통해 삶과 죽음, 지속과 소멸을 사유케 한다.

안 = 이곳에 오는 동안, 예술의 전당인 퐁피두센터 앞에 드리워진 “Nous Sommes Charlie(우리는 샤를리다)”라는 거대한 검은 휘장을 보았습니다. 파리시청에도 걸개 그림처럼 드리워져 있구고. 샤를리 에브도도, 테러에서도 타인에 대한 차별을 봅니다. 제삼자의 입장에서는 수탈당한 가난한 나라 사람의 저항이라 애달파 보이기도 합니다.

볼탕스키 = 매우 슬픈 일이죠. 선한 사람들이 죽음을 당했으니까요. 그런데 프랑스인들이 크게 충격을 받은 이유는 총탄 테러라서가 아니라 우리 정서에 너무나도 터부시되어온 종교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 그래요. 프랑스는 종교를 미워하고 섹스를 사랑하고 와인을 사랑해요. 오래된 전통이죠. 18세기 볼테르의 정신이고 오늘날 프랑스인에겐 익숙한 사고예요. 그런데 종교를 위해 사람을 죽이다니 그들은 무슬림을 모독한 자는 죽여도 된다고 생각했어요. 누군가 일본 사람들한테 한국 사람은 죽여도 된다, 한국인은 사람이 아니라고 했던 거와 같죠. 비뚤어진 인문정신에 조종된 겁니다. 하지만 정작 테러를 저지른 그들은 어떤가요? 다들 가난한 파리 사람들이고 결국 경찰에 의해 어린 나이에 사살됐습니다.

그동안 우리 역사가 가르쳐준 지독한 교훈들이 있습니다. 유토피아를 좇는 일은 매우 위험하다는 사실입니다. 서구의 기독교인들도 많은 사람을 죽였죠. 남아메리카 원주민들이 기독교를 믿지 않겠다고 하자 집단살육을 했습니다. 이는 제가 왜 그렇게 종교와 거리를 두는지, 그 이유이기도 해요. 당신이 유토피아를 믿는다면 당신도 위험한 사람입니다. 프랑스는 정교 분리의 정신, 종교를 멀리하는 조심성이 강합니다. 종교는 자신들은 옳고 다른 사람은 틀리다는 오류에 빠져들 수 있어요. 최악은 내 종교 말고 다른 종교는 다 무지한 거라는 생각입니다.

안 = 이념이나 사상 역시 많은 희생을 가져왔고, 전체주의식으로 밀어붙이는 경제개발 역시 일종의 유토피아를 좇는 일에 속한다고 봅니다. 집단의 전체주의도 있지만, 개인 안에서 작동되는 파시즘적 성향도 있다고 봅니다. 대중이 자극에 의해 쉽게 마녀사냥에 동조하는 경향은 SNS 안에서도 수시로 ‘악인’이 등장하고 비난 댓글이 들끓어 오르는 것에서도 보여요. 한국에서 어린아이에게 폭력을 행사한 보육교사 사건이 났을 때 역시, 구조를 점검하는 이성이 살아나기 이전에 여론재판에는 폭력적인 언어, 신상털이가 난무했습니다.

볼탕스키 = 악한 사람이 따로 있지 않아요. 또 악독한 성격이라서 악인이 되는 건 아니죠. 누구나 권력을 가지면 휘두릅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권력을 줄 때는 신중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참 인자한 모습을 하다가도 곧 누군가를 죽일 수 있거든요. 당신도 나를 죽일 수 있고요.

안 = 저는 그럴 계획이 없는데요.

볼탕스키 = 아뇨. 그럴 수 있어요. 권력을 얻으면요. 사람들은 어느 순간, 모든 유대인과 모든 이발사를 죽일 수 있다니까요. 자, 누군가 대중의 인기를 얻고 힘을 업은 강력한 사람이 나와서 ‘이제 우리는 모든 유대인과 이발사를 죽여야 합니다’ 하고 외치면, 사람들이 물을 거예요. ‘하필 왜 이발사죠?’ 그리고 유대인을 죽이는 데는 아무런 질문이 없습니다. 이미 벌어졌던 일이에요. 자, 내일 만약 어떤 정치가가 나타나 머리가 긴 모든 소녀를 죽여야 한다고 하면 어떨까요? 사람들은 긴 머리 소녀를 찾아 나섭니다.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에요. 그래서 권력을 위임받는 정치인들은 중요하기도 하고, 위험하기도 한 거죠. 우리 인간들은 매우 착한 일을 할 수도 있고, 아주 악한 일을 할 수도 있기 때문에, 권력이 생기면 두려움이 없어져요. 예전에 파리에는 ‘유대인은 반려동물을 키우지 못한다’는 고약한 법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우리 집 고양이가 이웃 아주머니댁에 오줌을 싼 거예요. 정말 좋은 이웃이었는데, 그날 저녁 찾아왔더라고요. 오늘 밤 안에 당장 고양이를 죽이지 않으면 경찰에 고발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그날 우리 고양이는 죽었어요. 이는 권한을 갖게 된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안 = 스스로에게 묻고 묻다 보면, 결국 내가 좋으면 취하고 싫으면 버리는 거 같습니다. 옳다 그르다를 판단하는 이성을 찾기보다는 내 몸이 안전하고 편한 선택을 하죠.

볼탕스키 = 세계대전 동안 일본 사람들이 매우 매우 잔인했죠. 한국 소녀들을 납치해도 된다는 권력을 만들어 휘둘렀어요. 사람들을 사냥한 그들을 나쁜 사람들이라 말할 수 있지만, 확신하건대 한국인을 고문하던 일본 사람들 역시 그들의 아이를 사랑했고 부인을 사랑한 아주 좋은 아버지였을 거예요. 각각의 인간들 내면에 그런 면이 있다고 봅니다. 두 가지 가능성을 갖는 거죠. 제 또래의 독일 친구들한테 아버지에 대해 물어봤어요. 자기 아버지를 사랑하며 참 멋진 남자라고 기억합디다. 그러고는 자기 아버지가 나치였다며 풀 죽은 표정이 돼요.

안 = 제가 작년에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를 인터뷰할 때, 예술가가 세상을 살릴 수 있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아니라고 고개를 가로저었죠.

볼탕스키 = 아니죠. 절대 아니죠. 자, 나치도 슈베르트를 사랑합니다. 나도 슈베르트를 사랑하고요. 슈베르트의 음악을 깊이 감상하고 난 오후에도 나치 군인은 여전히 사람을 죽였죠. 이런 이유로 나는 예술이 사람들을 변화시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티스트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세상은 훨씬 나아졌어야죠. 아티스트가 그래도 어떤 한 가지 정도는 개선하는 데 자극이 될 수는 있겠다, 희망은 가져 보긴 합니다만….

안 =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는 용서라는 메시지를 말했습니다. 용서만이 슬픈 역사를 반복하지 않는 열쇠라고요. 이 말을 어느 60대 유대인 심리학자에게 했었어요. 그녀는 폴란드에서 유년을 보냈죠.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캘리포니아에서 자라난 유대인이라면 동의할 수도 있겠지만, 전쟁 생존자에게 둘러싸여 보낸 폴란드 시절을 겪었기에 절대 동의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볼탕스키 = 그래도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려고 꼭 노력해야 합니다. 내가 보여줄 것이 있어요. 자, 내가 만든 사진첩입니다. 독일 벼룩시장에서 산 1940년대 사진들로 만들었어요. 여기 나치 장교 가족 보이죠? 봐요. 그들도 어린이를 사랑합니다. 크리스마스 트리도 좋아하고요. 나치는 매우 달콤달콤한 이들이에요. 청춘들이 키스하죠? 사랑스럽지 않나요? 제 말은 만약에 우리가 악마를 마주한다면 분명한 결론을 내기가 쉬울 거예요. 하지만 그 악마가 바로 우리 안에 일부로 자리를 틀고 있다는 것이 함정입니다.

안 = 어머니께서 유대인 예술가들이며 생존자들과 활동을 많이 한 걸로 압니다. 학살의 기억을 들으며 자랐을 텐데, 젊은 시절 작업 또한 같은 메시지를 전하고 있어요.

볼탕스키 = 내가 네 살, 다섯 살 그때일 거예요. 사람들은 모두 위험할 수 있다는 말을 무수히 들었습니다. 사람들이 무서웠죠. 그래서 생각했어요. ‘그 사람들이 나쁜 사람일까? 왜 그랬을까?’ 그때부터 이해하려고 노력한 거죠. 분명히 그들은 나쁜 짓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나라면 어떨까요? 권한을 갖게 된다면 나 또한 어린아이를 죽일 수 있는 거죠. 멀쩡한 이웃이 고발하는 것을 이해하게 됐습니다. 사람들을 두려워하기보다는 과연 우리 안에 있는 착한 모습과 악한 모습을 조정하는 권력이 무엇인지 그걸 주시하게 됐습니다. 사람이 원인이 아니에요. 우리 내면의 단추를 누르는 자가 종교인인지, 정치인인지, 기업인인지, 언론인지 그걸 살펴야 합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때, 프랑스가 해방되고 거리에는 머리카락이 잘리고 벌거벗겨져 조리돌림을 당하는 여자들이 이어졌어요. 프랑스 사람들이 프랑스 여성들을 고문하며 끌고 다녔습니다. 단지 독일 병사와 사랑에 빠졌다고요. 진정한 사랑을 나눈 거였는데도요. 소녀들도 있었답니다. 성난 군중 또한 위험을 저지를 수 있어요.

안 = 매 순간 이성을 놓지 말아야 함을 느낍니다.

볼탕스키 = 저는 우리 인간은 누구나와 마음으로 통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전시 때문에 세계를 다니면서 길에서건 택시에서건 여러 사람을 만날 때면 확인하는 거예요. 처음엔 무뚝뚝하고 경계를 하지만, 누구나 곧 친구가 되더라고요. 그렇게 우리들은 참 좋은 사람도 될 수 있는 거죠. 인간은 놀라운 존재입니다. 저는 모든 사람을 사랑해요.

볼탕스키와 대화하는 가운데, 같은 맥락이지만 다른 일상의 모습이 떠올랐다. 지위와 명성에 사로잡혀 그 행동을 분별하지 못하는 경우다. 결국, 행위가 본질을 말한다. 대통령이라 해도, 깨달았다 칭송받는다 해도 도둑질로 도둑이 되는 것을.

▲ 크리스티앙 볼탕스키
2차 대전 체험한 유대인… 미술관 밖 대중미술로 유명

[문명, 인간이 만드는 길 - ‘마음’ 전문가들과의 대화](4) 프랑스 현대미술가 크리스티앙 볼탕스키

크리스티앙 볼탕스키(Christian Boltanski·70)는 현대미술 작가이다. 조각, 사진, 회화, 필름, 설치 등의 작업을 해왔다. 1958년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으며 1960년대 말 아방가르드 단편영화를 선보이며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1970년대 초에는 아르비방(Art Vivant·살아 있는 미술) 그룹과 함께 색다른 방식으로 정치적 화법을 구사하는 작업을 했다. 구조주의 등 사회과학에 깊은 관심을 가진 그는 미술관보다 대중의 생활공간에서 미술의 경계를 넓혀갔다. 수집가에게 팔려가는 그림보다는 미술관 작업들을 해왔으며, 기차역이나 버려진 공간에서 전시를 열어 무작위 대중에게 말을 걸기도 했다.

볼탕스키의 작품은 세계 주요 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그는 카셀 도쿠멘타에 세 차례 초대됐고, 베니스 비엔날레 프랑스 대표작가이기도 했다. 독일의 쿤스트프라이스상(2002)과 카이저 링상(2002), 일본의 프리미엄 임페리얼상(2007), 프랑스의 경계없는 창작가상(2007) 등을 수상했다.

<글 안희경 재미 저널리스트 ·사진 노치욱 재불 작가>

문명 인간이 만드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