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악플 살인’과 여혐, 더 이상 묵과하면 안된다

2019.11.25 20:44 입력 2019.11.25 22:55 수정

걸그룹 카라 출신의 가수 구하라씨(28)가 지난 24일 극단적 선택을 했다. 세 살 아래 ‘절친’ 가수 설리가 한달 전 세상을 떠났을 때 “언니가 네 몫까지 열심히 살게”라고 눈물짓던 그였다. 마지막 자필 메모엔 ‘신변에 대한 비관’이 있었다고 한다. 악플과 불법촬영물에 당당히 맞서고, 얼마 전 일본에서 첫 솔로 앨범까지 내며 키워온 삶의 의지를 스스로 꺾은 것이다. 줄잇는 비보 앞에서 세상은 아픔을 곱씹고 있다. 연예계는 추모 글과 행사 취소가 줄잇고, SNS엔 해시태그 ‘#디지털성범죄아웃’이 이어졌다. ‘가해자 중심적인 성범죄 양형기준을 재정비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엔 하루 만에 동의가 20만명을 넘었다. 누구도 책임 없다 못할 ‘사회적 타살’에 공감하고, “더 이상 죽이지 말라”는 비원이 쏟아진 하루였다.

설리가 그랬던 것처럼 구씨도 악플에 시달려왔다. 구씨는 옛 남자친구에게 동의 없이 찍힌 영상을 협박받은 송사도 하고 있었다. 원본 동영상·속옷 노출·방송 사고…. 그가 죽은 뒤에도 한 시민모임이 지워간 구씨의 연관검색어들이다. 그의 안검하수 수술을 성형수술이라고 써댄 글도 있었다. 여성 연예인의 사생활을 퍼나르고, 인형·여신 이미지를 벗어나면 떼로 몰려가 가학적 악플과 2차 가해를 하는 일이 지금도 세상엔 버젓하다. 조리돌림은 유독 부당한 댓글·시선·혐오와 맞선 연예인들에게 가혹했다.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읽은 인증샷을 찍고, 남녀평등 문구 사진을 올렸다고 악플을 맞았다. 여섯달 전 극단적 선택을 하다 구조된 구씨는 “악플 달기 전에 나는 어떤 사람인지 생각해볼 수 없을까”라고 썼다. 그의 죽음 앞에 뿌리 깊은 여성혐오가 소환되고, “차마 추모를 말하기도 죄스럽다”(녹색당)는 말이 나왔다.

25일은 ‘세계 여성폭력 추방의날’이다. 2000년 유엔은 권력형 성폭력과 가정폭력, 데이트성폭력, 스토킹, 디지털 성범죄까지 여성을 억압·착취하는 모든 범죄를 공공의 적으로 매김했다. 한국에선 다음달 국가의 책임과 개입을 규정한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이 시행된다. 하지만 지금도 성범죄 양형이 가해자에게 관대하다고 성토하는 목소리는 커지고 있다. 다크웹(아동성착취물 사이트) 범법자 처벌은 미국·영국과 천양지차였고, 한국사이버성폭력센터가 고발한 126개 음란물사이트 중 실형(1년6월)은 1곳뿐이었다. “더 죽이지 말라”는 외침과 흥분이 가라앉으면 다시 행동이 굼떠지는 게 대한민국의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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