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적 동지이자 친구인 문재인 변호사(사진)가 9일 청와대로 다시 돌아왔다. 지난해 5월 건강을 이유로 청와대 민정수석에서 물러난 지 10개월 만에 청와대 비서실을 책임지는 자리로 온 것이다.

지난해 8월 그를 법무부 장관에 기용하려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격렬한 반대에 가로막혔던 노 대통령은 이번에 그에게 “임기말 청와대를 책임져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그동안 “대통령에게 부담주기 싫다”며 장관 후보로 거론되는 것조차 꺼렸던 문 내정자도 “다른 자리는 몰라도 이 자리는 받겠다. 참여정부를 잘 마무리짓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화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 대통령과 문 내정자는 인생의 주요 고비를 함께 해온 동반자다. 이호철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은 “세상 누구보다 서로의 영혼을 잘 아는 친구이자 동지”라고 두 사람 관계를 평가했다.

광고

1980년 사법고시 22회에 합격했지만 경희대 재학 시절 박정희 정권 반대 시위와 계엄령 위반 경력 때문에 판사에 임용되지 못한 문 내정자는 82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운영하던 ‘법무법인 부산’에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하는 것으로 인연을 맺은 뒤 25년을 동고동락해왔다.

노 대통령은 대통령 당선 직후인 2003년 1월 그에게 참여정부의 인사시스템 쇄신, 법원·검찰·경찰·국정원 등 권력기관 개혁 방안을 마련토록 지시했고, 취임과 동시에 그를 청와대 민정수석에 기용했다. 이후 시민사회수석과 민정수석으로 번갈아 자리를 옮겨가며 대통령을 가까이서 보좌해온 그는 ‘왕수석’으로 불릴 정도로 참여정부의 핵심 실세로 자리잡았다.

광고
광고

그러나 그는 원칙적이고 깐깐하게 일처리를 하고, 대통령에게도 싫은 소리를 서슴지 않는 인물로도 정평이 나있다. 이런 점 때문에 정치권 일부에서는 “말이 안 통하는 원칙주의자”라며, 대통령과 정치권의 원활한 소통을 막는 장본인으로 그를 지목하기도 했다.

임기를 채 1년도 남기지 않은 노 대통령은 바로 이런 점 때문에 문 내정자를 임기 말 비서실장으로 발탁한 것으로 보인다. 익명을 요청한 노 대통령의 한 핵심 참모는 “문 실장 기용엔, 매사에 원칙적이고 꼼꼼한 일처리 스타일로 임기 말 청와대와 국정 전반을 누수 없이 챙겨 달라는 대통령의 강한 바람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자연히 임기 말 청와대 내부의 권력구도는 문 내정자 중심으로 재편되고, 그의 지휘 아래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시스템으로 변화될 것으로 보인다.

광고

청와대 정무수석 역할을 겸했던 이병완 전 비서실장과 달리, 문 내정자는 정치권과 일정한 거리를 둘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의 다른 핵심 관계자는 “문 실장 기용으로 가장 크게 변화되는 것은 청와대 비서실의 정무 기능 축소”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이 이병완 전 실장을 대통령 정무특보에 기용한 것도 이런 변화를 염두에 둔 포석으로 풀이된다. 노 대통령은 정치권과의 의사 소통에선 이 전 실장을 적절히 활용하고, 정책협의 기능은 한덕수 총리 지명자 중심의 총리실에 권한을 줄 생각인 것으로 관측된다.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한겨레 자료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