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 5천억대 교보문고, 이익률은 0%대…수익보다 독서에 더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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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6.05.25. 오전 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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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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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일속의 비상장사 (6) 교보문고

고 신용호 창업자의 '책사랑'…국민 독서량이 나라장래 좌우
책 베껴가도 눈치 주지 마라…연 4000만권 판매 '독보적 1위'

모바일족 증가에 성장 한계…오프라인 단행본 시장 위축
수년간 매출 5000억대서 정체…경영이념이 위기대응 더디게해



[ 고은이 기자 ] 1980년 광화문에 교보빌딩이 들어섰을 때 사람들의 최대 관심사는 이 건물의 지하 1층이었다. 워낙에 목 좋은 금싸라기 땅이라 어떤 점포든 열기만 하면 땅 짚고 헤엄치기 식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고(故) 신용호 교보그룹 창업자는 온갖 사업 아이디어를 다 물리치고 서점을 만들었다. “돈은 교보생명으로 벌고 사회 환원은 서점으로 하겠다”는 지론에서였다. 그래서인지 교보문고는 그동안 돈을 버는 데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매출 5000억원대의 초대형 서점이지만 영업이익률은 1%를 넘지 않는다. 하지만 요즘은 독서인구 감소와 인터넷 서점, 모바일 콘텐츠의 도전에 시장을 지키기 위해 부심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IMF도 놀란 독서 행렬

교보문고가 세상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건 1981년 6월1일. 8930㎡에 달하는 매장은 단일 면적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였다. 서가 길이만 24.7㎞였다. 이 대형 서점은 개장하자마자 서울의 명소가 됐다. 사람들은 앞다퉈 교보문고를 찾았고 아무런 부담 없이 오랫동안 책을 읽을 수 있었다. 교보문고 개점 이후 고(故) 이병철 삼성 회장은 ‘내가 하지 못한 일을 해줘서 고맙다’는 요지의 칼럼을 신문에 싣기도 했다.

고 신용호 교보생명 회장은 생전에 “연 500억원 정도의 적자는 내도 괜찮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교보문고를 찾은 고객이 노트에 책 내용을 베끼더라도 직원들이 절대 눈치를 주지 않도록 했다. 책을 훔치려는 사람이 있어도 도둑 취급해 망신을 주지 말고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타이르게 했다. 1985년엔 학자들을 위한 80만종의 해외 논문도 공급했다. ‘국민의 독서량이 나라의 장래를 좌우한다’는 신조 때문이었다. 이 같은 사회적 책임의식과 독서에 대한 애정은 교보문고만의 고유한 기업문화를 형성하는 밑거름이 됐다. 1997년 말 외환위기 때 국제통화기금(IMF) 관계자가 우연히 광화문지점에 들렀다가 많은 젊은이들이 책을 읽고 있는 것을 보고 “이 나라는 분명히 다시 일어난다”고 말했다는 에피소드는 교보문고 임직원의 자랑 중 하나다.

◆온라인에선 밀려

교보문고의 등장은 영세한 서점업계에 대형화·고급화 바람을 불게 했다. 물류·유통 비용을 줄이기 위한 규모의 경제가 서점 경영 전면에 등장했다. 1995년 630억원이던 매출은 2015년 5234억원으로 늘었다. 전국 16개 매장과 바로드림센터 6곳, 인터넷 교보문고를 통해 연간 4000만권가량(전자책 포함)을 팔고 있다. 독보적인 업계 1위다. 2위인 예스24(매출 3586억원)와도 차이가 크다. 문구류를 파는 자회사인 교보핫트랙스 매출(2015년 기준 1213억원)도 쏠쏠한 편이다.

하지만 2011년 이후 매출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것이 이 회사의 고민이다. 지난해 교보문고 매출의 54.3%는 전국 16개 오프라인 매장에서 나왔다. 온라인 비중은 37.7%로 비교적 낮다. 2000년대 초 인터넷 서점들이 벌인 30~40% 할인 경쟁에 참여하지 않았던 탓에 온라인 시장을 기선제압하는 데 실패했다. 단순히 시장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업계 전체에 피해를 줄 수 있는 ‘출혈 경쟁’은 하지 않겠다는 윤리적 판단에 따라 스스로 선택한 일이었다.

온라인 매출만 보면 예스24와 알라딘에 이은 업계 3위다. 한 업계 관계자는 “교보문고는 온·오프라인 서점을 동시에 운영한다는 장점과 동시에 온라인이나 오프라인 한쪽에만 유리한 전략을 펼치기 힘들다는 한계도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성장 정체 타개할 수 있을까

스마트폰을 쓰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교보문고가 주력하는 오프라인 단행본 시장도 쪼그라들고 있다. 2012년 6월 본사를 광화문에서 파주로 옮긴다고 발표했을 때도 한 차례 위기설이 불거졌다.

교보문고 관계자는 “겉으로는 출판도시로 옮긴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내부에선 미래 먹거리가 불확실하다는 불안감이 팽배했다”고 말했다. 2013년엔 창사 이래 처음으로 매출이 전년보다 3.7% 줄었고 영업이익도 적자가 났다.

당시 교보문고 경영 컨설팅을 맡은 송길영 다음소프트 부사장은 “교보문고 임직원은 하나같이 회사와 서점업을 사랑한다”며 “역설적이지만 이런 문화가 위기를 돌파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자신의 업을 너무나 사랑해 상황을 객관화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창립 이념에서 비롯된 인문학적 정서가 지금까지 교보문고를 키워 온 원동력이지만 경쟁이 심해지고 있는 시장 상황에 대응하는 데는 오히려 약점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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