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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부품·소재 克日 더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입력 : 
2019-12-13 00: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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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화학, 철강, 전자기기 등 우리나라 주력 산업 분야에서 일본과 교역하는 비중이 80%에 근접한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경영자총협회와 현대경제연구원이 12일 공동 개최한 '한일 양국 산업의 협력과 경쟁 토론회'에서 발표된 내용인데 한일 양국의 외교 갈등이 커지면 우리 경제가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경고로 해석할 수 있다.

우리나라 산업 발전 역사를 돌이켜보면 대일 의존도가 높은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자동차, 반도체, 철강 등 거의 모든 분야의 기반 기술은 일본 기업들을 벤치마킹하며 터득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일본산 소재·부품·장비를 사용하게 됐고, 한일 양국의 교역 비중도 커질 수밖에 없었다. 이는 글로벌 공급망의 한 축을 이루며 더욱 공고해졌다. 이 시스템의 근간을 흔든 것은 일본이다. 일본 정부는 지난 7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생산에 필요한 3개 핵심 소재의 수출규제를 강화했고, 8월에는 한국을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조치를 취했다. 최근에도 아소 다로 일본 재무상은 강제징용 배상 판결로 압류된 일본 기업 자산의 현금화가 이뤄지면 무역과 금융제재를 취하겠다고 협박했다. 아직까지는 피해가 크지 않지만 양국의 교역 비중을 감안했을 때 이런 사태가 장기화하면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우리 정부는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소재·부품·장비 개발을 지원하는 데 내년에만 2조원이 넘는 예산을 배정했고, 공공연구기관 기술의 기업 이전을 지원하는 등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기업들도 핵심 소재·부품·장비의 국산화에 박차를 가하는 한편 거래처를 독일 러시아 중국 등으로 다변화하고 있다.

그러나 단기적인 대책만으로는 일본을 극복하기 어렵다. 더 긴 안목을 가지고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일본이 부품과 소재 강국이 된 배경에는 오랜 기간 축적한 기초과학 기술과 우수한 인재들이 있다. 우리도 일본처럼 기초부터 단단하게 다져 나갈 필요가 있다.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되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융·복합 연구가 가능하도록 교육과 산학연 협력 시스템을 확 바꿔야 한다. 기업들이 연구에 매진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일도 시급하다. 이를 위해선 과감한 규제 완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수도권 규제를 풀어 인재들이 한곳에 모여 연구할 수 있는 혁신클러스터를 만들고,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게 아니라면 환경 규제도 과감하게 풀어줘야 한다. 연구원들이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연구할 수 있도록 유연근로제를 확대하고, 뛰어난 소재·부품 기술을 가진 외국 기업을 유치하는 정책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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