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리 프랭키의 ‘도쿄타워’를 다시 읽다
릴리 프랭키의 ‘도쿄타워’를 다시 읽다
  • 에디터 이재우
  • 승인 2018.09.09 14: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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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싯대 매장에서 태연하게 낚싯대 2개를 들고 나온다. 집에 와서 “이게 있으니 이 달은 놀아도 되겠네”라며 호탕하게 웃는다. 올해 프랑스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영화 ‘어느 가족’의 한 장면이다. 영화의 원제는 ‘만비끼 가족’(좀도둑 가족). 낚싯대를 훔친 좀도둑은 일본 배우 릴리 프랭키(Lily Franky: 본명 나카가와 마사야)이다.

동네 슈퍼에서, 골목길에서 흔히 마주칠 듯한 편안한 인상의 이 ‘아재 배우’는 1963년생, 후쿠오카 태생이다. 무사시노 미술대학을 졸업한 그는 소설가(‘도쿄타워’), 일러스트레이터(‘오뎅군’을 주인공으로 동화책 출간), 기타 연주가(밴드 활동), 작사가(인기그룹 SMAP 멤버 기무라 다쿠야의 노래 ‘그대가 있어’ 작사), 사진작가(도쿄 거리 사진집 제작), 방송인(일본방송 ‘릴리메구의 올나이트 닛폰’ 등 출연)으로 활동하는 등 다양한 재주를 지녔다. 그런 그를 기인, 또는 천재라고 부른다.

그는 본명 대신 예명인 릴리 프랭키로 유명하다. 프랭키는 영국 밴드 ‘프랭키 고즈 투 할리우드’(Frankie Goes To Hollywood)에서 따왔다. 릴리는 대학 시절 절친과 함께 다니면 ‘장미와 백합 같다’는 말을 들은 데서 빌려 왔다고 한다.

이 ‘아재 배우’를 (기자가) 처음 접한 건 고레에다 감독의 2013년 작품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에서다. 병원에서 아이가 바뀌면서 두 부부가 겪게 되는 애환을 그린 영화다. 가난하지만 아이들과 잘 놀아주는 전파상 아저씨의 모습은 2018년 작 ‘어느 가족’에서도 그대로 투영됐다.

릴리 프랭키의 천재적 면모는 뭐니뭐니 해도 소설 ‘도쿄타워’에서 이미 증명됐다. 2006년 나온 이 자전적 소설은 200만 부 넘게 팔리면서 초베스트셀러가 됐다. 홀어머니와 사는 아들이 도쿄에 올라와 엄마를 암으로 떠나보낸다는 스토리다. 소설은 이듬해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영화에선 오다기리 죠가 아들 역을 맡았다. 엄마 역은 키키 기린.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어느 가족’에도 등장하는 그 배우다. 릴리 프랭키와 키키 기린은 고레에다 감독의 페르소나(분신)나 다름없다.

영화 ‘어느 가족’을 본 후 책 ‘도쿄타워’를 다시 읽었다. 마치 릴리 프랭키가 된 양. 엄마에 대한 향수가 절절했다. 고생한 엄마를 암으로 보낸 릴리 프랭키는 책 말미에 이렇게 적었다.

<엄니가 죽고 나서 한동안은 아무 것도 할 맘이 나지 않았지만, 지금은 착실히 노력하고 분발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 엄니 지금껏 이래저래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엄니가 나를 키워주신 것을 나는 자랑스럽게 생각하네.

도쿄타워의 창에 펼쳐진 하늘은 파랗고 서서히 지평선을 향하면서 하얗게 녹아들었다. 햇살이 부드럽게 바다와 도시를 비추었다. 나는 내내 머나먼 저쪽을 바라보았다. 목에 건 조그만 가방에서 얼굴을 내민 엄마도 같은 곳을 쳐다보고 있었다.

“엄니, 오늘은 날씨가 좋아서 참말 다행이네”>

<에디터 이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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