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석 변호사칼럼] 몰래 녹취해도 법적 효력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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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5.06.03. 오후 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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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아직까지도 많은 드라마나 영화에서 마지막 반전의 결정적 역할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상대방 몰래 이뤄진 녹음이다. 드라마나 영화가 나름 현실을 반영하는 것일 테니, 아직도 이런 것들이 대반전의 결정타로 등장한다는 사실은, 달리 말하면 '비밀녹취'야말로 상대방을 깜짝 놀라게 하며 전세를 역전시키는 강력한 무기가 된다는 방증이라 하겠다.

최근에는 '몰래 녹음해도 재판에 쓸 수 있다'는 것은 거의 상식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비밀녹취가 아예 재판에 쓰일 수 없는 경우도 있고, 재판에 쓰이더라도 본인의 주장을 입증하는데 불충분할 수도 있으며, 입증까지 성공하더라도 상대방에게 위자료를 물어줘야 할 경우도 있다. 이는 비밀녹음의 경우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측면이 강하고, 그 특성상 녹음된 내용이 불완전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하에서 상세히 알아본다.

1. 증거로 쓸 수 있는 조건.

가장 중요한 것, 반드시 그 대화에 참여한 사람이 녹음해야 한다는 점이다. 대화에 참여한 사람의 숫자는 2명이 넘어도 상관없으나, 반드시 그 대화참가자 중 1명이 녹음해야 한다. 만약 제3자가 몰래 녹음을 했다면 그 녹취 내용은 아예 재판에서 증거로 쓰지 못한다. 나아가 「통신비밀보호법」에 따라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 및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하는 형사처벌까지 받는다.

한편 '전화 통화'를 하면서 휴대폰으로 녹음한 경우라면, 특별히 제3자가 감청을 하지 않은 이상, 대화참가자의 녹음으로서 손색이 없다 할 것이다.

녹음한 후 경찰, 검찰, 법원에 제출하기 위해서는 속기사무소 등에 음성파일을 제출하여 문서 형태의 '녹취록'을 만들어야 한다. 녹음 분량에 따라 5~30만원 정도 비용이 들며, 가능한 속기사가 만든 녹취록 초안을 미리 받아 읽어보고 사람 이름이나 고유명사 등을 잘못 기재한 부분이 있다면(가령 "정연석"을 "정현석"으로 기재하였다든지) 속기사에게 알려 수정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내용을 왜곡하는 것은 위법한 증거 조작 행위가 될 것이며 속기사가 수용하지도 않을 것이다. 어떤 문장은 자음이나 모음 하나만 달라져도 의미에 엄청난 차이를 가져온다. 실제 있었던 사건 중에 "내가 확 죽어버린다"고 말한 것은 협박이 아니라는 판결이 있었는데, 이 문장에서 "어"라는 글자만 "여"로 바꾸면 아마도 충분히 무서운 협박이 되었을 것이다.

판사가 긴 분량의 음성을 다 들을 수도 없거니와 정확한 청취가 어렵기 때문에 반드시 녹취록을 제출해야 하는 것인데, 만약 녹취록으로 담을 수 없는 생생한 분위기를 전달할 필요가 있다면 녹취록과 함께 음성파일을 CD, USB 형태로 제출하거나 직접 업로드(전자소송)할 수는 있다. 그러나 판사는 아마 바빠서 안 들을 것이다. 따라서 판사가 꼭 직접 들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법정에서 짧은 일부분이라도 '재생'의 방법으로 증거조사를 신청하면 된다. 이렇게 되면 법정에서 재생하며 직접 다 같이 들어보게 되는데, 만약 녹취록만 읽어봐도 충분한 내용을 굳이 이렇게 한다면 아마도 판사는 좀 짜증이 날 수도 있을 것이다.




2. 중요한 내용이 구체적으로 담겨야 한다.

비밀녹취가 증거로 쓰이게 되는 경우라도, 과연 그 내용을 믿을 것인지는 전적으로 판사의 판단에 맡겨져 있는데, 판사 입장에서도 비밀녹취는 약간의 문제가 있다는 전제를 가지기 쉽다. 즉, 비밀녹취는 녹취를 하는 자가 어떤 목적이나 의도를 가지고 접근해서 대화를 이끌고 있고, 상대방은 그 사실을 모른 채 응하고 있는 형태여서, 녹취자가 유도하는 쪽으로 뉘앙스가 달라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사실(1억 원의 돈을 빌렸다, 돈을 빌릴 당시 부동산 자산이 5억 원이 넘는다고 말했다 등등)이 누가 들어도 명백하고 구체적으로 담겨있다면, 판사 역시 그러한 진실을 외면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 소송에서 매우 유리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녹취자 입장에서는 무리한 추궁으로 매우 불확실한 답변만 얻는 것 보다는, 녹취자에게 중요한 내용을 구체적으로 담아야 한다. 특히 녹취자가 억지로 답을 강요하는 형태가 아니라, 상대방의 입으로 자발적으로 구체적인 진술을 하게 하는 것이 가장 좋다. 아래와 같은 대화를 비교해보면 그 질적 차이를 쉽게 알 수 있다.

* 대화 A

- 녹취자 : 박사장님, 4월에 돈 빌려갈 때 다음달 대금 1억 들어온다면서요?

- 상대방 : 그게.. 내가 그 때는..

- 녹취자 : 그랬어요 안 그랬어요? 미국에 실내등 500개 수출한다고..

- 상대방 : ....

- 녹취자 : 똑바로 말씀하세요. 절 속이신 건가요?

- 상대방 : 내가 그때 한 말은.. 꼭 그렇다고 말한 게 아니라..

* 대화 B

- 녹취자 : 박사장님, 요즘도 조명 수출 괜찮아요?

- 상대방 : 요즘 좀 어렵네. 수중등 주문이 거의 없어.

​- 녹취자 : 올봄에 좋았잖아요. 미국 수출 건. 수중등이었던가요?

​​- 상대방 : 아니 그건.. 음.. 실내등이었지.

- 녹취자 : 맞다. 실내등 500개 오다 들어왔다고 하셨죠? 1억 짜리.

- 상대방 : 그렇지.​

- 녹취자 : 대금도 한달이면 확실히 준대놓고 걔들은 왜 그런대요?​

- 상대방 : 그러게 말야. 자네한테 미안하게 됐어.​

대화 B는 대화 A와 질적으로 다르다. 녹취자가 원하는 답 그 자체를 직접적으로 묻고 추궁하지 않음으로써, 상대방의 심적 부담을 덜어주고 적극적으로 대화에 참여하게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녹취자가 원하는 내용을 쉽고 충분하게 얻어낼 수 있었다.

물론 현실에서는 상황이 더욱 복잡할 것이다. 또한 상대방의 성향이나 대화 분위기에 따라 고려할 요소들도 많을 것이다. 여기서는 이해를 위해 단적인 예를 들었으며, 다음 칼럼에서는 좀 더 상세히 알아본다.

※ 녹취의 모든 것 ②편에서는, 자연스럽게 상대방의 진술을 얻어내는 추가적인 요령, 그리고 이러한 비밀녹취를 하다가 오히려 상대방에게 위자료를 지급해야 하는 상황 등에 대하여 살펴본다.

※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매경닷컴 "MK 비즈&/비즈앤" 법률 칼럼리스트 정연석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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