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역사적 인물 관련 표현의 자유 폭넓게 인정한 대법 판결

2019.11.21 21:18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일행위 등을 다룬 다큐멘터리 <백년전쟁>이 “방송심의규정의 공정성, 객관성, 명예훼손 조항을 위반했다”며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가 이를 다룬 방송사와 관계자에게 내린 징계는 위법하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1일 시민방송 RTV가 방통위의 제재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낸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한 원심을 파기 환송했다. 6년3개월 만에 원심의 잘못을 바로잡은 대법원 판결의 의미는 각별하다. 무엇보다 국가권력에 의해 침해당할 뻔했던 표현의 자유가 이번 판결로 바로 서게 됐다. 역사논쟁과 같은 이해관계가 첨예한 저작물이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국민들과 만날 수 있는 길이 넓어진 것이다. 대법원이 처음으로 방송 심의 기준을 명확히 한 점도 큰 의의다.

<백년전쟁>은 <친일인명사전>을 펴낸 민족문제연구소가 기획한 6부작 다큐멘터리다. 일제강점기부터 이명박 정부 때까지의 현대사를 담을 계획이었다. 그러나 방통위 제재로 이승만 전 대통령의 친일행위를 담은 ‘두 얼굴의 이승만’과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공산주의 활동, 친일·친미 행위를 폭로한 ‘프레이저 보고서 1부’만이 제작, 유튜브 등에 공개돼 300만 가까운 조회수를 기록했다. RTV는 2013년 3월 이 두 편을 방송했다가 방통위로부터 제재 조치를 당하자 소송을 냈다. 1·2심 재판부는 방통위 제재가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당시 재판부는 “전직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인 사례와 평가만으로 구성, 사실을 왜곡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그러나 대법관 13명 중 7명의 다수의견으로 낸 판결문을 통해 시청자 제작 프로그램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객관성·공정성·균형성을 심사할 때 기준을 완화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백년전쟁>은 사실을 기초로 기존 역사적 해석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 것으로, 공정성이나 객관성을 훼손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또 “역사적 사실·인물에 대한 역사논쟁은 피할 수 없으며 인류의 삶과 문화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끄는 건전한 추진력이 된다”고 판시했다. 하급심의 “일방적이고 부정적인 시각으로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전직 대통령을 폄하했다”는 판단을 지적한 것이다. 이번 대법원 판결을 계기로 국가권력에 의해 국민의 표현의 자유가 부당하게 침해당하는 일이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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