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육군의 고고도 시제 전투기 : 나카지마 Ki-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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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1. 8.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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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17년(1942년) 가을 경, 대본영은 미군이 이례적인 고고도 중폭격기 B-29의 완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는 첩보를 손에 넣었다. '하늘의 요새'로 불리며 일본의 전투기 파일럿들이 이를 갈며 두려워하던 B-17을 능가하는 이 4발 중폭격기는 B-17의 두 배가 넘는 폭탄을 싣고 중국에서 출격하여 일본 본토를 공습을 가하고 귀환이 가능한 폭격기로, 지금까지의 항공기와는 차원이 다른 신병기였다. 이것은 곧 고도 10,000 m에서 일본 본토를 향해 대량의 폭탄이 떨어지는 미증유의 공습이 예상되는 중대한 사태였으며, 이 재난을 막을 수 있느냐 없느냐는 전쟁 국면을 바꾸어놓을 수 있는 전환점으로 부상했다.

이 사태에 직면한 육군 항공대 사령부는 나카지마(中島) 사와 다치가와(立川) 사에게 고고도 폭격기 요격용 전투기의 개발에 착수할 것을 지시했다. 이에 근거하여 나카지마 사는 Ki-87(キ-87) 고고도 국지전투기를, 그리고 다치가와 사에게는 고고도 방공 전투기 Ki-94(キ-94) 개발을 맡겼다. 나카지마 Ki-87은 수석 엔지니어 코야마 야스시(小山悌 : 1900~1982) 기사의 지도에 따라, 그를 도와 4식 단좌전투기 하야테를 개발한 경험이 있는 니시무라 세츠오(西村節朗) 기사, 육군의 간이 특공기 Ki-115 츠루기의 개발 작업을 진행중이던 아오키 쿠니히로(青木邦弘) 기사, 그리고 가토 히로미(加藤博美) 기사 등의 협력으로 나카지마 비행기 부속 미타 연구소(三鷹研究所) 기체부와 오타 제작소(太田製作所)가 함께 1942년 11월부터 설계와 제작을 시작하였다.

육군에서 방공, 제공, 대지 공격 등 모든 임무에 사용할 수 있는 만능 전투기로 개발된 4식 전투기 Ki-84 하야테는 400 km(1.5시간)의 전투행동반경을 요구했지만, 이보다 긴 2시간의 전투 행동이 가능하며 고공 전투도 감당할 수 있는 전투기로 개발이 시작된 Ki-87은 1942년에 3대의 시작기 제작에 착수했으며 추가로 시제기 7대가 더 발주되었다. 원래 1945년 4월까지는 10대가 모두 완성될 예정이었으나, 신기술을 많이 적용한 기체였기 때문에 4식 단전의 개발과 개량이 우선하게 되어 실기의 완성은 계획보다 훨씬 늦어져 패색이 짙어진 1945년 2월이 되어서야 볼 수 있었다.

참고로 이 중전투기에 장착하기 위해 개발 중이던 화기에 관해서도 알아보자.

본 블로그 리뷰에서 여러 번 강조한 바와 같이, 구일본 해군에서 40mm 미만의 자동화기는 무조건 기관총이라 했던 것에 비해, 육군에서는 12.7mm 미만의 구경은 기관총, 그 이상은 기관포로 분류했다. Ki-87에 주무기로 채용된 Ho-155 기관포(ホ155-II / ホ一五五-II)는 구경 30mm, 중량이 30kg에 달하는 대구경 기관포였다.

개발이 시작된 시기는 연합군의 항공기가 대부분 방탄 장비를 둘러치고 있던 1942년(쇼와 17년) 말로, 전황의 변화와 육군 수뇌부의 정책이 표류하던 시기와 일치한다. 나고야 육군 조병창(名古屋陸軍造兵廠)에서 개발을 담당해 설계는 이듬해인 1943년부터 시작되었다. 시제품은 조병창장이 직접 지휘해 아쓰타 제조소(熱田製造所)에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브라우닝 계열 기관총의 구조를 도입한 이 포는 쇼와 18년 8월에 완성, 쇼와 19년 5월부터 육군의 심사를 받았다.

일본의 패전 후 GHQ에 제출된 보고서에는 연구 및 조달한 업체로 중앙 공업연구소(中央工業研究所)로 되어 있으며, 시작포는 쇼와 19년 2월부터 쇼와 20년 6월에 걸쳐 시험을 실시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기능 시험의 결과는 프레임 뒤에 배치된 슬라이드 가이드의 강도가 부족해 실사격에서 금이 가고 깨져나가거나, 그로 인한 장전 불량과 실탄을 배출해버리는 불량을 보였다고 전해지는데, 이러한 단점은 종전까지 해결되지 않았다고 보고 있다.

쇼와 19년 8월에 들어서야 II형 포의 양산은 나고야 육군 조병창의 치구사 제조소(千種製造所)에서 시작되었다. 그해 10월에는 II형 포에 생산력을 집중할 것이 결정되었으나 불과 두 달 후에 이 결정은 번복되어, I형의 생산을 늘이기 위해 생산량이 축소되었다. 이 때까지 798문이 생산되었다고 한다. 그 대신 오구라 육군 조병창(小倉陸軍造兵廠)에서 II형 포의 양산을 맡게 되었으며 이토야마 제조소(糸山製造所)에서 8월까지 2문을 제조해 양산 준비를 진행하던 도중 패전을 맞았다. 나고야 육군 조병창의 자료에 따르면, 쇼와 20년의 Ho-155 생산수(I, II형 모두 포함)는 336문이다. 최종 생산수는 I, II형 합해 1,200문 정도이지만, 자료에 의해 제조 수량이 크게 다르다.

Ho-155에 사용되는 탄약은 I형과 II형이 공유할 수 있었다. 기존의 20mm 기관포에 비해 탄약이 커져 탄두 중량만 235g, 작약량이 520g이다. 탄종으로는 철갑탄, 유탄, 작렬탄 마-301(マ301)과 연습탄(훈련탄)이 준비되었고 사격시의 반동은 약 1.5톤에 달했다. B-29를 때려잡을 필살 병기로 개발된 이 포의 양산형은 Ki-84-I 병형(キ84-I丙)의 주익에 2문 탑재될 예정이었고, 더 많은 수가 로켓 전투기 Ki-200 슈스이(キ200 秋水)의 주무기로 사용하기로 예정이 잡혀 있었다.

하-44(ハ44)는 전쟁 중 나카지마 사에서 개발 및 생산한 공랭식 성형 엔진으로, 일본이 그때까지 만들낸 항공 엔진 중에서 실용 및 시제품을 통틀어 가장 강력한 엔진이었다. 육군 명칭은 하-219(ハ219)로, 하-44는 육해군 통합 명칭이다. 초기 일본제 공랭식 엔진의 걸작으로 불리던 코토부키를 복열 14기통으로 강화한 하-5(ハ5)가 있었지만, 하-44는 그것을 18기통으로 늘린 것이었다. 개발은 1942년 7월부터 시작되었지만, 종전까지 단 23대만 제작되었다. 배기 터빈 과급기 장착형이 나카지마의 시제 고고도 전투기 Ki-87의 엔진으로 사용될 예정이었다.

종류 : 공랭식 성형 18기통

보어 × 스트로크 : 146mm × 160mm

배기량 : 48.2L

길이 : 2,110 mm

직경 : 1,280 mm

본체 중량 : 1,150 kg

압축비 : 7.2

과급기 : 원심 과급기 1단 2속

이륙 출력 : 2,450 HP / 2,800 RPM / 부스트 +550 mmhg

공칭 마력 : 2,300 HP / 2,700 RPM / 부스트 +350 mmhg (고도 2,700 m)

2,050 HP / 2,700 RPM / 부스트 +350 mmhg (고도 6,400 m)

하44-12루 (ハ44-12ル : ハ219ル)

과급기 : 배기 터빈

이륙 출력 : 2,450 HP / 2,800 RPM

공칭 마력 : 2,350 HP / 2,700 RPM (고도 1,100 m)

2,200 HP / 2,700 RPM (고도 4,400 m)

2,040 HP / 2,700 RPM (고도 11,000 m)

가장 큰 문제는 10,000m 이상의 고고도에서 충분한 성능을 발휘하는 발동기를 손에 넣는 것이었고, 여기에는 해발 고도의 수십 분의 일에 산소 농도에 불과한 희박한 대기 조건에서도 제대로 작동하는 3단 수퍼차저 또는 배기 터빈 과급기가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다. 개발진은 상용 고도 10,000m, 실용 상승한도 13,000m를 비행할 수 있는 전투기를 상정하여 일찍이 본 적 없는 대형의 배기 터빈 과급기가 부착된 나카지마의 프로토타입 엔진인 하-44(ハ44 : NK11A)를 채택했다. Ki-87에 장착되는 하-44는 기수 카울링 우측에 대형 배기 터빈을 배치하여 고고도 성능 향상을 노렸다. 이것은 피탄 시 연료 누출에 의해 발생하는 화재를 방지했지만 테스트시 일어난 배기 터빈의 과열 문제는 미완성 상태인 엔진에 악영향을 끼쳤다. 따라서 추가 제작될 시제기에서는 동체 아래쪽에 배기 터빈을 설치하는 형태도 검토되고 있었다.

오늘날에 와서는 경차에도 조립되어 있을 정도로 대중화된 터보 차저이지만, Ki-87에 필요한 엔진 출력은 2천 마력 이상에 이 출력을 내는데 요구되는 배기량은 50리터를 초과했다. 과급기 작동시 터빈실 안은 섭씨 700도 이상으로 치솟게 되는데, 이런 고온에 견딜 신합금(일본측 자료에는 '초합금'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마징가 Z의 '초합금 Z'가 이런 기술 명칭에서 영향을 받아 태어난 것임)의 개발도 여의치 못 해서 실용화를 목전에 두면서도 좀처럼 완성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기체 디자인 면에서도 대형 배기 터빈과 P-51와 닮은 벤튜럴 레디에이터까지 복잡하게 얽혀 연결되는 흡배기 덕트와 이것에 필요한 시스템의 냉각장치도 추가되어야만 했는데, 이런 점들은 개발진에게 더욱 무거운 짐을 지웠다. 뿐만 아니라 이 정도의 고고도에서는 탑승자의 컨디션을 고려한 여압 캐빈이 꼭 필요했지만, 개발진은 기밀 좌석은 사용이 불편할뿐더러 피탄 시 데미지를 더욱 늘이는 확률이 높아진다는 판단하에 대량의 산소 봄베를 내장시키는 방향으로 설계 사양을 변경하여 이 과정에서도 완성이 지연되었다. 착륙장치는 90도 회전한 뒤에 날개로 접어넣는 방식을 취했는데, 이것은 미국제 전투기 P-40의 구조를 답습한 것으로 날개에 대구경 기관포와 연료 탱크의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주익 앞전에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그러나 당시 일본의 기술력으로는 이러한 복잡한 구조를 신뢰성을 갖추고 완비하기가 어려웠고, 다섯 차례에 걸친 시험 비행은 모두 바퀴를 접지 않은 채 실시되었다. 또한 이 전투기는 일본기로서는 이례적으로 중무장되고 충분한 방탄 조치를 취한 기체로, 전비중량은 약 6.1톤에 달해 당대 최대급 단발 전투기로 자타가 공인하는 큰 덩치를 가진 P-47 썬더볼트와 맞먹는 거구였다.

시작 1호기의 테스트 중에는 엔진 부조화나 배기 터빈 과열 문제가 두드러졌으며 착륙장치의 오작동 문제로 시달렸고, 그로 인하여 총 5시간의 시험 비행만이 이 시제기가 하늘에 떠 있었던 시간이었다. 육군은 정식 명칭이 아직 붙지 않은 기체이지만, 제식화할 것을 결정하고 우선 1차 생산물량으로 500대를 나카지마사에 발주했다. 육군은 거기에 그치지 않고, 장차 개발될 3천 마력급 엔진을 장착한 개량형도 개발할 것을 지시했지만, 이는 시작 2호기가 겨우 만들어지던 상황에서 부질없는 명령이었다. 결국, 이 전투기는 시제기 1대만을 남긴 채 일본제 전투기의 명문이라 일컬어지던 나카지마가 만들어낸 마지막 항공기가 되었다. 패전 후 이 기체를 압수한 미군은 현지에서 시험해 보기 위해 수리를 명령했으나, 그것이 여의치 않자 분해하여 본국으로 실어갔지만, 현재 그 행방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D A T A

형식 / 명 칭

단발 단좌 시제 전투기 / Nakajima Ki-87

전장 / 전폭 / 전고

11.82 m / 13.42 m / 4.5 m

익 면 적

26.0 m²

탑승인원 / 초도비행

1명 / 1945년 2월

공허중량 / 전투중량

4,388 kg / 5,633 kg

최대이륙중량

6,102 kg

동 력

미츠비시 Ha-44 성형 18기통 공랭 엔진 1기 (2,450 마력)

최 대 속 도

697 km/h

순 항 속 도

470 km/h

항 속 시 간

800 km + 2시간

상 승 한 도

12,855 m

상 승 률

m/min.

무 장

30 mm Ho-105 기관포 2문 / 20 mm Ho-5 기관포 2문 /

250 kg 폭탄 1발

생 산 수

1호기 완성 후 2호기 제작 중 종전

비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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