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들은 경제적 불평등을 현재 한국의 가장 심각한 문제로 꼽는 것으로 나타났다. 평화재단(이사장 법륜 스님) 산하 평화연구원이 지난 10월 실시한 북한이탈주민 의식조사 결과, ‘남한에 살면서 가장 문제라고 생각하는 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19.1%가 ‘빈부격차가 너무 심하다’고 답해 가장 높은 비율을 보였다. 그 뒤로는 ‘돈이 없으면 사람을 무시한다’(18.4%),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격차가 심하다’(15.2%) 순서로 높은 비율을 나타냈다.
이번 조사 결과는 지난 17일 ‘통일코리아를 위한 한국사회의 성찰과 변화’라는 주제로 열린 평화재단 창립 11주년 심포지엄에서 발표됐다. 조사는 10월 4~18일 탈북자 517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와 10월 8~12일 탈북자 15명을 대상으로 한 심층면접 등 두 가지 방식으로 진행됐다. 조사 결과를 분석해 발표한 고경빈 평화연구원 연구위원(전 통일부 정책홍보본부장)은 심층면접에서도 “돈 없는 사람은 사람 취급도 안 한다”거나 “무조건 돈이 최고라고 생각하고 물질만능주의가 심하다”, “경쟁이 치열한데 너무 야비한 경쟁”이라는 답이 공통적으로 나왔다고 소개했다.
‘남한 정부와 사람들이 어떻게 하는 것이 통일에 도움이 될까’라는 질문에서도 일맥상통하는 결과가 나왔다. 가장 많은 탈북자들이 ‘남한부터 골고루 잘 사는 사회로 만들어야 한다’(18.0%)고 답했고, ‘남한부터 차별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16.6%), ‘남한부터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16.5%), ‘남한을 더 민주화시켜 북한에 모범을 보여야 한다’(15.7%)는 답변이 뒤를 이었다.
고 연구위원은 “탈북자들은 ‘가난한 북한’이라는 인식이 곧 ‘열등한 북한 사람’이라는 이미지로 이어지는 것에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며 “북한이 비록 정치경제적으로 낙후한 독재국가라는 사실은 틀림없다. 그러나 그런 체제 안에 살았다고 해서 북한 사람들도 열등할 것이라는 생각은 오류”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심층면접 참여자들은 각기 민주주의에 대한 상은 다를 수 있어도 남한 사회가 지금보다 더 사람을 존중하는 사회가 돼야 한다는데 인식을 같이 했다”며 탈북자로 캐나다에서 3년을 거주한 후 남한에서 10년 동안 살고 있는 림모씨의 다음과 같은 견해를 소개했다.
“(남한의) 시민의식이 통일을 안기에는 아직 너무 어립니다. 어린 정도가 아니고 아주 어려요. 지금 여기도 다문화사회가 됐지만 200만 넘는 외국인도 잘 못 안으면서 70년 떨어져 살아온 북한을 안는다는 게 간단치 않거든요. 경제 부담은 오히려 좀 문제가 아닐 수도 있어요. 시민의식이 안 되면 재앙 수준의 뭔가 올지도 모릅니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통일코리아를 위한 민주주의 실현과 시민으로서의 각성’이란 주제의 발표에서 언론의 남북관계 보도에 대해 “사실에 대한 객관적 보도라는 텍스트를 중시하되 통일 지향과 대비라는 컨텍스트(맥락)도 적극 고려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반도의 정치·군사적 긴장이라는 현실을 고려할 때 통일지상주의적 시각에 따라 북한의 군사적 위협과 그에 따른 정치·사회적 긴장을 축소 보도할 수는 없을 것이다. 북한의 3대 세습이나 인권탄압에 대해서도 올바르게 보도해야 한다”면서도 “이러한 보도가 분단체제를 공고화시키는 방향에서 이루어져서는 안 되고, 현실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화통일을 모색하는 방향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또 김 교수는 “민주적 시민문화와 시민윤리를 내면화하는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교육”이라며 “인간의 존엄성, 합리적 의사결정, 공공질서 덕목 등이 민주시민 교육을 통해 사회화될 수 있듯이 사회·문화적 이질성에 대한 수용, 북한 주민에 대한 적극적인 포용, 보편적 인권 가치의 승인 등은 지속적인 통일 교육을 통해 내면화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역사학자인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해방 후 70년간 한국 사회가 정치·경제·사회적인 성찰이 부족했음을 강조하며 “2003년 이라크 파병과 최근 계속되고 있는 사건 사고는 성찰이 없었던 현대사의 문제가 단지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문제라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라크 파병 당시 베트남 파병과 같은 전쟁특수를 희망했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았음을 언급하며 “1960년대까지 미국은 참전 동맹국들의 비용을 모두 담당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게다가 베트남 참전의 결과가 참담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지금 이라크를 비롯한 중동 지역은 IS(이슬람국가)로 인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개입 자체도 어려운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세월호 사건 역시 인재였다. 사고 과정뿐만 아니라 사고 후 구출 및 처리 과정에서도 인재가 주요한 사회적 관심이 되었다”라며 “그러나 그 사고로부터 1년이 더 지난 지금 과연 세월호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과 사건 책임자에 대한 처리가 얼마나 이뤄졌는가?”라고 물었다. 그는 “위기가 있을 때마다 적절한 성찰이 이뤄져야 한다”며 “객관적으로 성찰할 수 있는 기능을 가진 기구들이 정치적 중립성과 객관적 조사를 가능하도록 하는 법적·제도적 장치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제안했다.
황준호 기자 jhwang7419@etomato.com
법륜 스님이 이사장으로 있는 평화재단이 창립 11주년을 맞아 지난 17일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희망을 찾는 한국, 어디로 갈 것인가 - 통일코리아를 위한 한국 사회의 성찰과 변화’를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었다. 사진/평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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