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총선버스터’ 세계기록 野, 안보불안 정당 딱지 뗄 수 있나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2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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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부끄러운 세계 최장기록이다. 테러방지법 저지를 위한 야당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가 어젯밤 9시를 기해 170시간을 넘겼다. 2011년 캐나다 새민주당(NDP)이 세운 58시간을 훌쩍 뛰어넘은 기록이다. 필리버스터를 주도한 더불어민주당 이종걸 원내대표는 총선 역풍을 우려한 김종인 대표의 만류에 따라 어제 오전 중단을 발표하려 했다. 그러나 당내 강경파 의원의 반발과 참여연대 등 46개의 이른바 진보좌파 단체들의 반대성명으로 온종일 오락가락했다.

이 원내대표는 그제 의원총회에서 “국민 인권과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필리버스터 기록 도전에 우리가 나서고 있다”며 “국민의 관심이 커졌으며 정치가 이렇게 재미있는 줄 몰랐다는 얘기까지 나온다”고 자평했다. 단상에 선 의원들은 마치 독재 시절 민주투사라도 된 듯 운동화 패션으로 발언 오래하기 신기록 경쟁까지 벌였다.

그러나 테러방지법은 김대중 정부 때인 2001년 9·11테러 이후에 추진됐으며 노무현 정부도 역점을 두었던 법안이다. 15년 전부터 지금까지, 참여연대처럼 이번에 필리버스터 중단 반대에 나선 시민단체들의 조직적 반대와 이들의 눈치를 보는 더민주당 때문에 번번이 통과되지 못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테러방지법 내용도 김대중 정부 때는 국가정보원에 대테러센터를 설치하고 수사권을 부여했으나 이번에는 대테러센터를 국무총리실에 두는 등 보완책이 마련돼 있다. 그런데도 야당이 좌파 단체들의 반대에 번번이 주저앉는다면 국정 운영의 한 축을 맡은 정당으로서의 책임 방기(放棄)라고 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더민주당이 ‘안보 정당’으로 변신을 꾀한다면서 국민의 생명과 안보에 관한 테러방지법을 걸고넘어지는 것도 전략적 판단 잘못이다. 더구나 선거가 50일도 남지 않은 상황에 선거구 획정을 볼모 삼아 무려 7일간이나 필리버스터를 벌인 것도 무책임한 일이다. 더민주당의 지지층인 ‘집토끼’를 결집시키는 효과를 얻었을지 몰라도 총선 승리를 위해 공략해야 할 중도층에는 ‘안보 불감증 정당’이란 인상을 강하게 심어 주었다.

의원들의 발언 내용을 보면 더 가관이다. 광우병 사태를 연상시키는 괴담에 가까운 억지 주장도 난무했다. 더민주당 김용익 의원은 “테러방지법은 성생활까지 포함하는 민감한 정보를 국가정보원이 결정하도록 하는 법”이라는 황당한 주장도 했다. 일부 의원은 자신의 얼굴을 알리려는 총선용으로 악용해 ‘총선버스터’라는 말까지 나왔다.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안 채택이 임박하면서 북한이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설 것이 우려된다. 유엔 제재와 함께 북을 변화시켜 나가기 위해서는 테러방지법과 함께 북한인권법 제정도 더는 늦춰선 안 될 것이다.
#필리버스터#안보불안#테러방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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