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론조사의 창시자인 제임스 피슈킨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가 우리의 대입제도 개편 공론화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나타냈다. 한국을 찾은 그는 19일 “신고리 원전과 달리 대입제도는 정부가 전적으로 의사결정권을 가진 사안이 아니라 대학 자율에 맡길 수 있는 사안”이라면서 “공론화로 결정된 대입 정책은 신고리 원전보다 타당성이 떨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이어 “나라면 미국 대입시험인 SAT 평가 방식을 공론조사에 부치지 않겠다”고 했다.
피슈킨 교수의 경고가 무색하게도 어제 2022학년도 대입제도 개편 공론화위원회는 공론화에 부칠 4개의 시나리오를 발표했다. 수시 전형(학생부 위주)과 정시 전형(대학수학능력시험 위주)의 비율, 수능의 절대평가 전환 여부, 수시에서의 수능최저학력기준 활용 여부 등 3가지 쟁점을 조합해 4개의 시나리오로 만든 것이다. 앞으로 대국민 토론회, TV 토론회, 전화 조사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고 7월 말∼8월 초 시민참여단 400명이 최종적으로 시나리오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
4개의 시나리오 가운데 3개는 정시 확대에 방점이 찍혀 있고, 나머지 1개는 정시와 수시 비율을 대학 자율에 맡기되 특정 전형에 치우치지 않도록 했다. 결국 자세히 뜯어보면 모두 대학 자율보다는 ‘정시 확대’라는 정부의 의도가 반영됐다. 4개의 시나리오에 문제점과 한계가 있어도 시민참여단은 이 가운데 하나를 골라야 한다. 피슈킨 교수는 “시나리오 방식으로 선택을 강요하는 건 공론조사의 취지에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런데도 정부는 비전문가 시민참여단이 시나리오 하나를 선택하도록 했다. 공론조사 창시자의 경고를 새겨들어 정부는 이제라도 공론화 방식으로 대입제도를 개편한다는 발상을 접는 게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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