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신 없는 살인사건’ 실종 변호사의 약혼녀에겐 동거남이 있었는데…

2017.07.07 21:55 입력 2017.07.07 21:56 수정

이종운 변호사 실종사건

[도진기 변호사의 판결의 재구성]‘시신 없는 살인사건’ 실종 변호사의 약혼녀에겐 동거남이 있었는데…

1심 판결은 ‘징역 10년’. 명백히 실종(혹은 살인)의 책임을 물었다. 약혼녀의 수상한 행적은 이 변호사가 살아 돌아올 수 없는 것을 확신한 것이라고… 판사의 서슬 퍼런 정의감과 분노가 느껴졌다. 그러나 2심은 달랐다. ‘징역 2년’. 인간이 모든 악인을 처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법과 절차가 있다. 불가능한 최선을 포기하고 차선이라도 건지기 위해… 2심은 법리에 충실했다.

독자 여러분이 만약 다음 사건의 배심원이라면 형을 어느 정도로 하실 것인가.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33세 이종운 변호사가 실종됐다. 어느 날 일찍 퇴근하고는 그대로 종적을 감추었다. 일주일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자 가족들은 경찰에 실종신고를 냈다. 이 변호사에게는 2년을 교제한 약혼녀 채영서(가명)가 있었다. 약혼녀는 이 변호사가 3억원과 고급 승용차, 사무실을 요구해왔고, 난색을 표했더니 결혼을 다시 생각하겠다며 가버렸다고 했다. 그녀는 이 변호사가 자신이 건넨 현금 5000만원을 쓰면서 잠적 중인 것 같다고도 했다. 성인 남자의 단순 가출 정도로 사건은 종결되나 싶었다.

그런데 채영서의 거짓말이 하나둘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우선 이 변호사가 돈과 혼수를 요구했다는 말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오히려 이 변호사가 채영서를 위해 오피스텔을 구입해준 사실이 있을 뿐이었다. 금전 요구를 들어주지 않자 이 변호사가 결혼을 다시 생각하겠다고 했다는 채영서의 말과 달리, 놀랍게도 두 사람은 이미 혼인신고가 된 상태였다. 혼인신고서에 적힌 ‘이종운’의 연락처는 다른 사람의 번호였다. 채영서가 몰래 동거하던 남자 배호근(가명)의 것이었다. 실종 한 달 전 이 변호사는 생명보험에 가입한 걸로 되어 있었는데, 수익자는 채영서였다. 실종 당일 저녁 남산 1호 터널 폐쇄회로(CC)TV에는 동거남 배호근의 차량에 이 변호사와 채영서로 보이는 남녀가 동승한 모습이 찍혀 있었다.

채영서는 이 변호사 실종 이틀 만에 그의 신용카드로 명품가방 등 800만원어치의 쇼핑을 했다. 이어 인감증명서를 허위 발급받아 이 변호사의 차량을 1000만원에 처분했다. 이 변호사 명의의 오피스텔을 담보로 7000만원의 대출을 받으려다 실패하자, 이를 세놓아 보증금 6000만원을 가로챘다. 200만원의 예금도 인출해 편취했다. 이 과정에서 구직사이트를 통해 일당 5만원에 정한주(가명)를 고용해 이 변호사 대역을 시켰다. 정한주는 채영서의 지시에 따라 동사무소에 가서 이 변호사 행세를 하며 인감증명서를 발급받고, 휴대전화를 개통하고, 은행에 들러 ‘변호사 개업에 필요하다’며 대출을 시도했다.

수사망이 좁혀지던 중, 채영서는 30만원을 주고 길거리에서 사람을 구해 이 변호사의 시골집으로 ‘잘 지내고 있다, 곧 돌아가겠다’는 전화를 걸게 했다. 채영서는 또 ‘헤어지자, 너도 다른 남자 만나라’는 자필 팩스를 받았다며 경찰에 제출했는데, 글씨를 잘라 붙여 조합한 것임이 드러났다. 채영서의 집에서 이 변호사의 주민등록증과 일기용 수첩이 발견되었는데, 수첩 곳곳이 찢겨 있어 여기서 글자를 오려내 붙인 것임을 짐작하게 했다.

이쯤 되면 이 변호사의 실종은 살인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법하다. 채영서가 ‘실종’에 깊게 관련돼 있을지 모른다는 의심도 함께. 경찰도 같은 의심을 두고 수사를 계속했지만, 벽에 부딪혔다. 사망을 증명할 수 없었던 것이다. ‘시신 없는 살인’에 관해 우리 판례는 융통성이 있다. 죽음이 확실하다면 시체가 없어도 살인죄를 적용할 수 있다. 이 사건의 경우 다량의 피라도 발견되었다면 죽음이 분명해졌겠지만, 아니었다. 죽었다는 확실한 증거가 없었다. 검찰은 결국 살인죄를 포기하고, 사기죄와 문서위조 혐의 등으로만 기소했다. 채영서로부터 돈을 받고 이 변호사 대역을 한 정한주도 공범으로 기소되었다.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서, 독자 여러분들은 어떻게 판단하실 것인가. 아, 여기서 공평한 처우를 위해 채영서 측의 항변도 소개하기로 한다. 그녀는 결혼이 한 차례 연기된 후 이 변호사와 그 가족들한테 냉대를 받았고, 그러던 중 이 변호사가 갑자기 사라졌다고 말했다. 그가 자신과 결혼을 하기 싫어 모습을 감춘 것으로 생각한 나머지 화가 나 위자료 상당이라도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사기라든가 문서위조 같은 범행을 저지르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살인이나 실종과는 무관하다. 돈은 전부 돌려주었다. 이상이 그녀의 항변이다.

1심 판결은 놀라웠다. 징역 10년을 선고한 것이다(공범 정한주는 징역 2년). 사기죄의 법정형 상한이 10년이다. 문서위조와 경합범이기에 법적으로 15년형까지 가능하다. 하지만 이 정도 사기죄는 실무상 기껏해야 2년형 정도가 한계다. 내가 현직에 있을 때 한 재판 중에는 할머니 수백명을 상대로 40억원을 편취한 사건에서 징역 9년을 선고한 것이 최고였는데, 검색해보니 그건 몇 년간 전국 최고 형량과 타이 기록이었다. 징역 10년은 명백히 실종(혹은 살인)의 책임을 물은 것이다. 우발적 살인의 경우 당시 통상적인 형량이 12년 정도였던 걸 감안하면, 살인을 했다고 거의 전제하고 판결한 거나 다름없었다. 실제로 1심 판결문은 ‘양형의 이유’란에서 채영서의 수상한 행적을 상세히 기술하고, 이는 이 변호사가 절대로 살아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확신한 사람의 행동이라고 했다. 피고인이 이 변호사의 실종에 깊이 관련되어 있다는 판단하에 그 책임을 묻는다는 취지였다. 기소되지 않은 범죄를 사실상 저질렀다고 인정하고 형을 정한 판결인 셈이다. 판결문에서 ‘성난 판사’의 서슬 퍼런 정의감과 분노가 느껴졌다.

1심 판결은 2심에서 처참하게 깨졌다. 채영서는 징역 2년으로 감형되었다. 그녀가 실종에 관련되어 있다는 점이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만큼 엄격하게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공범 정한주의 형량도 6월로 줄었다.

1심과 2심, 독자들은 어느 쪽을 지지할지 궁금하다. 1심의 결론이 정의 관념에 더 부합할지 모르지만, 2심이 지적한 법리상의 한계를 넘어서기 힘들다. 2심은 법리에 충실한 결론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 결말에 분개할 듯하다. 정서적으로 2심을 공격하기는 쉽지만, 이런 점도 있다. 1심과 같은 결론이 1회성이라면 몰라도, 재판이란 그렇지 못하다. 법률 적용에서의 판결은 유사한 사안에서도 그렇게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일관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다른 범죄를 저질렀다는 의심이 있을 때면, 그 혐의로 기소되지 않았어도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이걸 일반론으로 우리 재판절차에서 채택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다. 도무지 가능하지 않다. 일반의 오해와 달리 재판이란 원래 최종적인 정의에 도달하려는 목적을 가진 절차가 아니다.

솔로몬 같은 판관이 개별 사안에서 지혜를 발휘해 현명한 판결을 내리는 것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재판의 원형적 모습일 것 같다. 하지만 솔로몬이 늘 옳은가? 솔로몬이 어느 날 갑자기 미친다면? 아침에 부부싸움을 하고 나왔다면? 솔로몬도 감정이 있는데, 미운 놈 오면 괜히 없던 죄도 뒤집어씌우고, 벌을 더 주고 할 수도 있지 않나? 아니, 솔로몬은 괜찮은 사람이니까 믿을 만하다고 치자. 그런 판사가 수십, 수백, 수천명으로 늘어난다면, 그래도 다 개인의 인격을 믿고 맡겨야 하나? 그렇지 않다. 인간은 믿을 수 없다. 그래서 절차를 만들어 놓았다. 형사소송법이라는 쇠사슬을 칭칭 감아놓았다. ‘이걸 지키면, 못해도 중간은 간다’는 뜻에서 만들어진 거다. 악인을 빠짐없이 처벌하는 것이 최선이겠지만, 모두가 솔로몬이 될 수 없는 한 불가능하다. 그러니 절차라도 지키라는 것이다. 불가능한 최선을 포기하고, 그나마 차선이라도 건지기 위함이다. 그러다 보니 악인을 놓치고 부들부들 떨게 되는 일이 생긴다. 그러면 사람들은 또 재판이 뭐 이래, 하고 분개한다.

실은 고백하자면, 나는 판사로 재직하던 시절 법률가답지 못한 응보심에 가득 찬 적이 있었다. 증거와 정황이 강력해 보인 살인사건이었는데, 증거 부족으로 무죄가 확정되었다. 신문에서 그 기사를 보고 판결문도 찾아 읽었다. 법리적으로는 타당했지만 난 개인적으로 그 결론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 그 뒤 그 피고인은 다른 사기 범죄가 발각되어 다시 구속되었다. 난 그 사건이 내 재판부에 배당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온갖 그럴 듯한 명분을 동원해 사기죄의 법정 최고형에 처하리라. 말하자면 사기죄를 재판하는 김에 사실상 살인의 죄책까지 묻겠다는 심산이었다(그랬기에 ‘성난 판사’에 실은 박수를 쳤다. 인간적으론 이 분이 더 좋다). 피고인에게는 다행스럽게도 사건은 옆 재판부로 배당되었고, 그는 3년형을 받는 데 그쳤다. 물론 3년이 그 사기죄에서는 적절한 형이었고, 내가 품은 마음은 생활인으로서는 몰라도 판사로서는 성급한 것이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종운 변호사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사건이 발생한 때가 2004년 7월이니 아직 공소시효는 지나지 않았다(2015년 형사소송법 개정으로 살인죄의 공소시효가 폐지됐고, 이는 그때까지 공소시효가 지나지 않은 사건에 모두 적용된다). 경찰이 이 사건을 붙들고 있는지 궁금하다.

아직 가능성은 남아 있다. 아니, 사실은 그저 공상에 불과한 것인데, 법률가로서가 아니라 소설가로서의 몽상으로 해 두자. 현재 당시 재판과 달라진 점이 있다. 바로 ‘시간’이다. 그땐 이종운 변호사가 실종된 지 불과 1~2년이었다. 지금은 14년째다. 이 변호사가 살아 있지 못하리란 건 사실에 가까운 게 아닐까. 그렇다면 이 변호사의 시신 없이도 ‘살인’으로 기소한다면 어떻게 될까(그 당시 살인으로 기소되지 않았으니, 일사부재리에 어긋나지는 않는다). 이제는 어느 정도 확실시된 이 변호사의 ‘죽음’을 전제로, 수상한 주변인들의 움직임에 대해 어떤 형사상 책임을 묻는 판단이 내려질 수도 있지 않을까. 세월이 지나 다시 법정에 서면 묻혔던 사실이 더 밝혀지지 못하리란 법도 없으니까. 혹시 또 모른다. 만약 올드보이처럼 이 변호사가 어디엔가 갇혀 있다면, 그들은 살인의 죄책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털어놓게 되지 않을까. 다시 말하지만 어디까지나 ‘비법률가적인’ 공상이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이 사건의 피고인이었던 채영서는 살인이 입증되지 않았기에 보험금 수취에 법적인 문제가 없었고, 아마 전액을 수령했을 것으로 보인다. 보험금은 15억원이었다. 동거남 배호근은 아예 기소도 되지 않았다.

▶도진기 변호사

[도진기 변호사의 판결의 재구성]‘시신 없는 살인사건’ 실종 변호사의 약혼녀에겐 동거남이 있었는데…


1994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법관이 되었고, 2010년 단편소설 <선택>으로 한국추리작가협회 미스터리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작가로 데뷔했다. 이후 8년 동안 주중에는 판사로, 주말에는 소설을 쓰는 작가로 살면서 10여권의 책을 썼다. 2017년 2월 공직을 떠나 변호사가 됐다. 작품으로는 <정신자살> <악마는 법정에 서지 않는다> <순서의 문제> <모래 바람> 등이 있고, 2014년 <유다의 별>로 한국추리작가협회 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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