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언론보도 막는 게 검찰개혁인가

2019.10.31 20:46 입력 2019.10.31 23:03 수정

법무부가 오보를 낸 언론사 기자의 검찰 출입을 제한하는 내용의 훈령을 만들었다. 어떤 기사를 오보로 판단할지, 기준이나 출입 제한 기간은 검찰이 정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전문공보관을 제외한 검사나 수사관은 맡고 있는 형사사건과 관련해 기자들을 개별적으로 만나지 못하도록 했다. 수사 중에는 피의자의 공개소환이나 수사 내용을 언론에 알리는 것도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수사를 지휘하는 차장검사의 구두 브리핑인 ‘티타임’도 금지된다. 한마디로 기자는 검찰이 불러주는 것만 받아 쓰라는 것이다. 이대로라면 검찰이 납득할 수 없는 수사를 벌인다 하더라도 어디 물어볼 데도, 물어볼 방법도 없다.

5공화국 독재정권은 보도하지 말아야 할 ‘보도지침’을 매일 내려보내 언론을 통제했다. 그때도 기자들의 취재 자체는 막지 않았다. 지금 법무부는 오보의 기준이 무엇인지 명확한 설명도, 기준도 없이 검찰이 ‘오보’라고 판단하면 그날부터 출입금지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했다. 가히 군사독재 시절 보도지침을 뛰어넘는 ‘신(新)보도지침’이라 할 만하다.

김학의 전 법무차관은 ‘별장 성접대 의혹’이 언론에 불거지자 “사실무근”이라고 했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처가 부동산 매매 의혹’이 폭로된 뒤 “오보”라고 반발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5촌 조카가 사모펀드 운영에 관여한 사실이 없다고 밝혔으나 사실과 다른 것으로 밝혀졌다. 공인(公人)에 관한 비리 폭로 기사가 나왔을 때 당사자는 오보라고 부인했지만, 결국 거짓 해명이었던 사례는 부지기수다.

국정 농단, 사법 농단 등 권력형 범죄는 대부분 언론이 의혹을 제기하면서 숨겨진 진실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이들 누구도 처음부터 “그 보도가 맞다”고 한 경우는 없었다. 법무부 훈령이 적용되면 ‘오보’ 딱지가 붙은 언론은 후속 취재가 제한되고, ‘권력 감시’라는 언론의 역할은 무력화될 수밖에 없다. 이러고 웃을 사람은 시민인가, 부정부패 권력인가.

요즘 법무부와 대검은 거의 매일 ‘검찰개혁안’을 쏟아내고 있다. 지난 한 달 새 법무부는 6차례, 대검은 7차례 개혁안을 발표했다. 대부분 무소불위 검찰권력의 폐단을 없애는 조치들이다. 백번 공감이 간다. 하지만 이번 훈령은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시대착오적 발상이요, 어느 민주국가에서도 볼 수 없는 언론자유 침해가 명백하다. 법무부는 훈령을 즉각 철회하는 게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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