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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숙선

반세기 넘은 세월 우리 소리를 품고 지르다

입력 2011.12.02 09:49

이문동 한 켠에 자리잡은 한국예술종합학교에 들어서니 가을냄새가 물씬 풍겼다. 소복이 쌓인 노란 은행잎 길을 걷다 보니 인터뷰를 앞둔 긴장된 마음이 푹신하게 녹아 내렸다. 강의실 창문 사이로 한국의 소리가 어렴풋이 새어 나왔다. 학생들이 길을 걸으면서도 남의 눈은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스스럼없이 이름 모를 국악을 부르며 지나가는 것을 보아하니 제대로 찾아온 것이 맞는 듯 했다.

[안숙선]반세기 넘은 세월 우리 소리를 품고 지르다

오늘 만날 사람은 한국의 소리를 품은 ‘명창 안숙선’ 교수이다. 안숙선 교수는 중요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산조 및 병창 예능보유자로, 유럽과 미국 등 전 세계적으로 순회공연을 하시면서 한국의 소리를 알리신 분이다. 자그마한 체구에서 나오는 교수님의 소리는 세계 곳곳에 퍼져 한국의 소리를 알렸고, 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서 울렸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전통예술원 음악과 교수로서 우리나라 국악 꿈나무들을 지도하고 계신 명창을 만나보았다.

[안숙선]반세기 넘은 세월 우리 소리를 품고 지르다

삶에 대한 태도와 원칙은 무엇입니까?
제 삶에 대한 원칙은 할 수 있는 일을 최선을 다해서 하는 것이에요. 모든 사람들이 보기에 명분이 있고, 귀감이 되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젊은 시절 가장 열중했던 일은 무엇입니까?
저는 9살이라는 어린 나이부터 전통음악을 시작했어요. 처음 시작할 때는 가족들의 영향을 받아서 시작하게 되었죠. 어릴 적에는 이 일을 평생 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당시 사회에서는 문화생활을 즐기기란 어려운 일이었어요. 먹고 살기 바빴거든요. 그러면서 문화는 일종의 사치라는 편견에 부딪혔고, 그 때문에 갈등도 많았어요. 하지만 그 후에 제 분야의 스승들을 만나면서 점점 확신과 사명감이 생겼고, 젊은 시절에도 역시 전통음악에 열중했습니다.

젊은 날에 지녔던 초심을 일관되게 지켜왔다고 생각하십니까?
음악을 하는 사람도 한 인간이기 때문에 슬럼프가 찾아올 때가 있었습니다. 인간사에서 부대끼는 많은 일들을 이기기 어려울 때가 적지 않았어요. 그러면서 슬럼프가 찾아올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국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다시 시작했어요. 할 수 있는 일을 최선을 다해서 하는 것, 이것이 초심을 잃지 않은 것에 대한 대답이 되겠네요.

[안숙선]반세기 넘은 세월 우리 소리를 품고 지르다

자신이 가장 자랑스러웠던 순간은 언제였습니까?
제 음악으로 많은 분들이 행복을 느끼는 순간, 그리고 그 분들과 제가 같이 교류하는 그 순간이 가장 자랑스러운 것 같아요. 특히 해외에 나가서 공연을 할 때에는 한국의 정신인 담긴 나의 소리를 듣고 사람들이 ‘아 저게 한국이다.’ 라는 생각을 할 때 뿌듯함을 느낍니다. 그리고 제 음악이 상당한 평가를 받는 순간에도 그렇고요.

자신이 가장 부끄러웠던 순간은 언제였습니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설 익었는데 다 된 것처럼 뻐겼던 순간들이 참 부끄러웠던 순간이에요. 그리고 제가 저질렀던 실수나, 공인이면서도 잘 관리하지 못하고 미처 처리하지 못 했던 것들이 이제와 돌이켜보면 부끄럽네요.

본인에게 부모님이란 어떤 의미입니까?
제가 어렸을 때 부모님은 하늘 같은 존재였어요. <심청가>에서 심청이가 아버지를 위해 인당수에 몸을 바치잖아요. 당시에는 부모님을 위해서는 ‘심청이처럼 자기 몸을 기꺼이 내던질 수 있어야 한다.’ 라고 생각을 했었죠. 제가 음악을 하게 된 것도, 힘들었던 시절에 부모님을 도와드리기 위해서였어요. 나를 조금 희생하면서 부모님을 도와드려야겠다는 생각이었죠.

[안숙선]반세기 넘은 세월 우리 소리를 품고 지르다

인생에서 돈이란 무엇입니까?
젊은 날에는 돈이 가장 컸던 것 같아요. (웃음) 돈이 있어야 어렵지 않게 살 수 있으니까요. 요즘에 와서는 ‘돈을 많이 가지는 것 자체가 고통이지 않나?’ 이런 생각이 드네요. 돈이라는 게 잘 쓰면 참 좋은데, 잘못 쓰면 욕되기 쉬우니까요. 돈에 대한 욕심 때문에 정도에서 벗어난 일을 하게 되기도 하고요.

젊은 날, 가장 힘들었던 경험은 무엇입니까?
음악의 길을 가면서 힘든 것들을 많이 감수하고 가야만 했습니다. 음악을 하고 소리를 하려면 체력이 상당히 많이 필요해요. 때때로 건강이나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았을 때 참 많이 힘들었어요. 그래서 지금은 스트레칭, 요가, 등산으로 체력관리를 하고 있죠. 또 한가지 들자면 가정이에요. 음악을 하면서 제 가족들을 많이 챙기지 못했어요. 나이가 들고나니까 그때 ‘내가 가족들에게 나에 대한 희생을 강요했고, 나의 손길을 주지 못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이라도 남편, 시어머니, 자식들에게 많이 보상을 해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안숙선]반세기 넘은 세월 우리 소리를 품고 지르다

타임머신이 있다면, 과거로 돌아가 가장 바꾸고 싶은 순간은 언제입니까? 그 순간을 왜, 어떻게 바꾸고 싶습니까?
만약 타임머신이 있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체계적이고 밀도 있게 소리에 대한 공부를 했을 것 같네요. 소리를 하는 것에 대한 사명감을 빨리 판단할 수 있었더라면 ‘좀 더 좋은 소리를 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리고 좀 더 나은 인간이 되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방황을 하면서 헛되이 보냈던 시간들이 지금 돌이켜보면 금과 같은 시간들이었어요. 그 나이에 공부할 것이 있었을 텐데 어느 정도 공부할 시기를 놓쳤다는 점에서는 후회가 됩니다. 돌아간다면 시간을 지금보다 더 소중히 쓸 것 같아요.

자신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 스승이 있다면 누구입니까?
어릴 때는 외가 쪽 어른들이 소리에 대한 기초를 다져주셨어요. 그러다 제가 서울에 60년대 말, 70년대 초에 상경했는데, 처음으로 가족 품에서 떠나 만났던 선생님이 만전 김소희 선생님, 향사 박귀희 선생님입니다. 두분 다 여성분이지만 국악계의 대부, 대모이신 분들이죠. 옆에서 그분들의 정신을 보면서 제가 하고 있는 일이 어떤 것인지 진중하게 생각할 수가 있었고, 선생님들께 소리에 대한 교육을 받았어요. 스승님이 아니었더라면 결혼하고 나서 다른 일을 했을 수도 있었을 것 같아요. 저를 방황에서 이끌어주셨던 너무도 고마우신 스승님들입니다.

내 인생에 영향을 준 책과 젊은이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 각각 한 권을 추천해주십시오.
어릴 적에 읽은 책과 나이 들어 읽은 책의 느낌이 너무 다른데, 딱히 어느 책이라고 말하기보다는 다양한 글을 읽으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글 안에는 참 많은 교훈이 들어있습니다. 신문의 칼럼 같이 길이는 짧지만, 그 안에 세상에 대한 지식을 많이 품고 있는 글들이 있잖아요. 저도 항상 읽을거리를 끼고 있는데, 글을 읽으면 사람이 사는 모습 그리고 다양한 상식을 얻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책뿐만 아니라 다양한 글들에서 매우 유익하고 삶의 좌표가 되는 지식을 얻을 수 있으니 항상 글읽기를 즐기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안숙선]반세기 넘은 세월 우리 소리를 품고 지르다

마지막으로, 어떻게 살면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을지 젊은 세대에게 한 말씀 들려주십시오.
시간을 허투루 쓰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그렇다고 일만 하라는 것이 아니라, 자기자신을 위해서 시간을 적절히 이용해야 한다는 것이에요. 시간을 쓸데없이 흘려 보내는 것은 물이 흘러가면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것과 같아요. 사람은 나이에 맞게 해야 할 일이 있어요. 한 번 시기를 놓치면 빙 돌아가야 할지도 모릅니다. 벽돌을 쌓아나가다가 어느 한 순간에 벽돌 쌓기를 중지하면 그 부분에 구멍이 뚫리게 되고, 그 부분을 다시 채우느라 힘들어질 수가 있어요. 그렇다고 서두른다고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항상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차곡차곡 쌓아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 젊은 세대들에게 가장 하고 싶은 말은 항상 ‘시간을 금처럼 사용하라.’는 겁니다.


<프로필>
안숙선 安淑善 1949.9.5

현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음악과 교수
중요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산조 및 병창 예능보유자

경력

1979. 국립창극단 입단
1997.8 중요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 산조 및 병창보유자
1997.12~2001.1 국립창극단 단장 겸 예술감독
2003.3~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음악과 성악전공 교수
2004~2009 전주세계소리축제 조직위원회 위원장
2007.8 2012년 여수세계박람회 홍보대사

수상내역

1986 남원춘향제 전국명창경연대회 대통령상
1987 KBS 국악대상
1993 제25회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1994 국제문화친선협회 올해의 국제문화인상
1995 제22회 한국방송대상
1996 한국문인협회 선정 국악부문 가장 문학적인 상
1998 프랑스문화부 예술문화훈장
1999 제48회 서울시문화상
1999 옥관문화훈장
2003 남원시민 문화장(남원시장)
2005 (사)전북애향운동본부 애향상 대상
2006 제2회 허규 예술상

독주 및 협주사항

1986년~1999년 판소리 5바탕 완창공연(국립극장)
1981년 동남아 12개국 순회공연
1984년 캐나다남미 순회공연
1986년 국립극장 완창 판소리
유럽 7개국 순회공연
미주 7개국 순회공연
1988년 유럽 7개국 춘향가 완창 순회공연
1990년 영국 에딘버러 페스티벌 초청공연
남북 송년음악회
1993년 핀란드 국제 쿠모음악페스티벌 초청공연
1996년 네덜란드 홀랜드 페스티벌 초청공연
1997년 하와이 우먼스쿨 초청공연
1998년 프랑스 아비뇽축제 ‘한국의 날’ 초청공연
윤이상 음악제 평양공연
판소리 5바탕 완창공연
1999년6월 뉴욕 <춘향가>완창공연
9월 유럽 3개국순회공연(독일, 프랑스, 이태리)
2002년5월 한. 베트남 수교기념 베트남 초청공연
10월 파리가을축제 초청 춘향가 완창
2003년7월 뉴욕링컨센터 썸머 페스티벌 초청 춘향가완창
8월 에딘버러 축제 초청 춘향가 완창


전지영/인터넷 경향신문 대학생 기자(웹場 baram.kh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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