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 파장> ③ 기득권에 '분노한 민심', '조용히' 투표로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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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6.06.26. 오전 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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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연합뉴스)

'샤이 토리' 반란 시대…각국 선거 '숨은 표심' 변수 가능성

선거에서 '反기득권·反엘리트' 표출…민생과 동떨어진 기성체제 '심판'

(서울=연합뉴스) 김정은 기자 = 유럽연합(EU) 탈퇴를 선택한 영국의 표심은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지난 23일(현지시간)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앞두고 실시된 여러 여론조사에서 찬반양론이 팽팽하기는 했지만, 브렉시트 현실화를 예상하는 전문가는 많지 않았다. 투표일 전후로 발표된 최종 여론조사·예측조사에서도 '잔류'가 우세했기에 그 충격은 더 컸다.

이번 결과를 두고 '영국 유권자들의 반란'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기성 체제와 기득권층, 엘리트층에 대한 영국인들의 불만과 불신이 드러난 것보다 훨씬 컸고, 국민투표를 계기로 폭발한 것으로 풀이된다.

세계화라는 거대한 물결 속에 글로벌 기업과 부유층, 고학력 전문직 노동자, 자본가 등 기득권층은 큰 혜택을 보고 있지만, 정작 보통 국민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는 분노가 이 같은 결과를 낳았다는 진단이다.

[EPA=연합뉴스]

'금융위기와 경기침체로 열심히 일해도 급여는 오르지 않고 실직과 부채에 시달리고 치솟는 집 값에 허덕인다. 소득 격차에 따른 양극화는 갈수록 악화하고 있지만, 정부는 이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비단 영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숨은 보수표'를 일컫는 '샤이 토리'(shy tory) 유권자가 이번에 영국 국민투표에서 주연을 맡았다. '침묵하는 다수'의 이같은 커밍아웃은 빗나간 여론조사 예측과도 연결될 수 있다.

'샤이 토리'는 1992년 영국 총선 직전 최종여론조사에서 보수당이 1% 포인트 차이로 노동당에 지는 것으로 예측됐지만 실제 투표에서는 7.6% 포인트 차로 이긴데서 나온 말이다.

인기 없는 정당, 정치적 올바름과는 거리가 있는 정당을 찍는것에 부끄러움을 느껴 실제 표를 던질 때까지는 여론조사원은 물론 경우에 따라 스스로에게도 어느 쪽을 택할지 입장을 입밖에 내지 않는 유권자를 말한다.

이번 브렉시트 국민투표에선 투표를 불과 일주일 앞둔 16일 EU 잔류를 지지하던 노동당 조 콕스 의원 피살사건이 터졌다. 이 사건 이후 시행된 여론조사는 그간의 브렉시트 진영 우세를 뒤집고 일제히 잔류쪽으로 돌아섰고, 이 추세는 투표당일 시행된 유고브 여론조사까지 잔류가 52%로 앞서는 것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투표 결과는 정반대로 브렉시트가 51.9%로 앞섰다. 부동층 10%가 콕스 의원 피살에 영향받았다는 관측은 틀린 것으로 확인됐다. 콕스의원의 지역구인 웨스트 요크셔에서도 브렉시트 찬성이 55%로 잔류보다 우세, 콕스 의원 피살의 영향은 제한적이었다는 것이 드러났다.

브렉시트 지지 지역 투표율은 평균 투표율 72%를 뛰어넘는 80%에 달했고, EU 잔류 지역의 투표율은 대체로 평균에 못쳤다. EU 잔류지역 뉴캐슬의 경우 잔류가 압도적일 것으로 생각됐지만 결과는 잔류 50.7%, 탈퇴 49.3%로 박빙이었다.

[AFP=연합뉴스]

그동안 유럽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기성 체제와 기득권층에 대한 불만은 시위 등 집단행위로 표출됐다. 2011년 '세계 금융시장의 심장' 미국 월가를 강타한 뒤 세계 각국으로 번진 '점령하라(Occupy)' 시위와 스페인의 '분노하라(Indignanos)' 시위, 프랑스의 '뉘 드부(Nuit Debout·밤샘시위), 2014년 홍콩 도심을 점거한 '우산혁명' 등이 그랬다.

그러나 지금도 여전히 비슷한 문제가 반복되고 있는 상황에서 일반 국민의 요구에 부응하는 데 관심도 능력도 없는 정치권에 '호소'하기보다는 선거로 변화를 끌어내겠다는 움직임이 뚜렷하다.

이달 19일 이탈리아 지방 선거에서 포퓰리즘 성향 야당 오성운동의 37세 비르지니아 라지, 31세 키아라 아펜디노 두 여성후보가 수도 로마와 토리노 시장으로 당선됐다. 부패하고 무능한 기성정치를 표로 심판한 '침묵하던 다수'의 힘을 보여준 사례다.

오성운동은 코미디언이 만든 정당으로 인기 영합주의 공약만 내세운다고 치부되던 군소 정당이었지만, 참신한 인물을 앞세워 생활밀착형 공약을 내걸어 예상을 웃도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

영국에서도 2015년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예상을 깨고 단독 과반을 달성할 때 역시 이같은 샤이 토리의 힘이 작용했다.

미국 공화당 여론조사전문가인 프랭크 런츠는 최근 미 시사잡지 '타임' 기고문에서 "사람들이 거리에서 시위를 벌이지는 않을지 몰라도, 그들은 점점 극단적이 되는 그들의 목소리를 알리기 위해 선거 과정을 이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런 분노한 유권자의 숨은 표심을 등에 업고 최근 각국에서는 기성 주류 정치에서 벗어나 있던 '아웃사이더'들이 잇따라 급부상하고 있다.

기뻐하는 탈퇴 지지자들 [AFP=연합뉴스]

앞서 오스트리아 대선에서는 극우 색채의 '자유당'이 선전하며 파란을 일으켰고, 프랑스에서도 극우정당 국민전선(FN)의 마린 르펜 대표가 각종 대선 후보 지지도 조사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독일에서는 극우 성향 신생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이 지난 3월 선거에서 제3당으로 부상했다.

미국에서는 '반이민'·'미국 우선'을 내건 부동산재벌 도널드 트럼프가 기성 정치인을 제치고 공화당 후보가 되는 파란을 일으켰다. 트럼프와 맞붙을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지지율 조사에서 앞서고 있지만, 침묵하는 다수가 감추고 있는 숨은 표가 어느 정도인가가 미국 대선의 결정적 변수 중 하나다.

특히 최근에는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가 이러한 현상을 확산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카톨릭 헤럴드'에 24일 실린 '페이스북이 어느 때보다 많은 조용한 다수를 만들고 있다'는 제목의 블로그글은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발달하면서 사람들이 각종 정치 현안에 대한 자기 생각을 거리낌 없이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지만, 그 한편에서는 사회적 고립이나 비판이 두려워 점점 더 조용해지고 위축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고 진단했다.

kj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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