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중음격 43회: 가면 뒤의 가수들 [한동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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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중음격 43회: 가면 뒤의 가수들 [한동윤]

2015.04.15

이달 5일 첫 선을 보인 MBC 예능 프로그램 "복면가왕"이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노래 부르기를 소재로 하는 점은 기존에 나온 음악 경연 쇼와 별반 다르지 않지만 출연자들이 복면을 쓰고 나와 철저히 존재를 숨긴다는 설정으로 참신함을 어필했다. 얼굴을 가리기 때문에 시청자들은 오롯이 노래에 집중하게 되고 나아가서는 출연자가 누구인지 알아맞히려고 관심을 지속하게 된다. 방송에 나와 노래를 부르는 연예인들의 노래 실력은 신비감 덕에 더 극대화된다.

가면을 쓴 가수들은 사실 그리 낯설지 않다. 자신이 하는 음악 스타일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자, 혹은 남들보다 두드러지기 위해 가면을 착용하고 대중 앞에 서는 뮤지션이 있어 왔기 때문이다. 로봇 헬멧으로 늘 얼굴을 가리는 Daft Punk, 귀여운 쥐 탈을 쓴 Deadmau5, 존재가 공포인 Slipknot 등이 대표적이다. 커다란 박스 캐릭터로 특징을 잡은 프라이머리, "복면가왕"의 탄생에 영향을 줬을 영화의 주인공 차태현은 국내 음악 팬들에게 익숙하다. 이번 "다중음격"은 가면을 쓴 뮤지션과 그들의 노래들로 구성했다.

Random Access Memories

얼굴 가리는 인물을 이야기하면 많은 이가 곧장 Daft Punk를 떠올릴 것이다. 프랑스 출신의 이 듀오는 반짝이는 로봇 헬멧을 착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최대한 예의를 갖춘 상태에서 고맙다고 굽실거려야 할 것 같은 그래미 수상 순간에도 이들은 헬멧을 벗지 않았다. 사생활을 마구 드러내는 편이 아닌 데다가 공연과 공식적인 자리에 언제나 헬멧을 쓰고 나타나니 이제는 진짜 로봇이 아닌가 하는 우스운 오해도 받는 실정이다.

이들은 데뷔 초에는 그냥 검은 헝겊을 쓰고 나왔다. 싼티는 기본이고, 마치 테러 집단에 잡힌 포로 같아서 불쌍해 보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데뷔 앨범의 성공으로 큰돈을 벌면서 2집 [Discovery] 때부터는 특수 제작한 세련된 헬멧을 착용하고 나타났다. 사진 찍히는 게 싫다는 이유로 행했던 얼굴 원천봉쇄는 곤궁했던 짧은 과도기를 거친 뒤 스타일리시하면서도 부유한 미스터리의 상징으로 승격됐다.

The Return Of The Aquabats

유쾌한 에너지를 전달하는 캘리포니아주 출신의 록, 스카 밴드 The Aquabats는 가면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그렇다. 슈퍼히어로를 따라 한 평민의 저렴한 코스튬플레이처럼 어설픔이 풀풀 풍긴다. 얼굴을 가렸는데 누구인지 다 알 것 같은 정교하지 않은 아이템 탓도 있겠지만 슈퍼히어로와는 거리가 먼 비루한 몸이 가장 기본적이고 거대한 에러다. 그러나 히어로답지 못한 신체 덕분에 이들의 음악은 더 즐겁게 느껴진다. 일상의 웃긴 사연을 앞세운 코믹한 가사가 멤버들의 외형과 허술한 복장으로 한결 산다. 님들아, 앞으로도 쫄쫄이는 벗지 마오!

5 years of mau5

캐나다의 하우스 뮤지션 Deadmau5는 월트 디즈니의 인기 캐릭터 미키 마우스를 본뜬 것 같은 고양이 로고와 이를 바탕으로 만든 탈로 자신을 특수화했다. 하직을 알리는 침울한 단어와는 달리 깜찍한 모양의 캐릭터 탄생 배경은 이렇다. 10대 시절 컴퓨터가 갑자기 꺼지는 일이 잦고 이상한 냄새까지 나서 본체를 뜯어 봤더니 죽은 쥐가 있었다는 일화. 이 일 때문에 친구들 사이에서 "Dead Mouse Guy"라고 불리자 이를 인터넷 닉네임으로 만든 것이 Deadmau5의 시작이다.

튀는 탈 덕분에 인지도가 상승했지만 이것이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인기가 커지면 시샘도 커지는 법이랄까? 지난해 3월 월트 디즈니는 Deadmau5의 로고가 미키 마우스와 유사해서 자신들의 상품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이유로 Deadmau5를 고소했다. 하지만 얼마 후 미키 마우스의 "Re-Micks" 만화 홍보 영상에서 월트 디즈니가 자신의 노래 'Ghosts 'N' Stuff'를 무단으로 사용한 것을 발견하면서 상황은 역전됐다. 디즈니와 Deadmau5 간의 갈등은 잠재적, 우호적 협력을 언급하며 일단은 훈훈하게 마무리된 듯하다.

Slipknot (Clean Ver.)

공포영화 속 연쇄살인마의 전형적인 모습을 연상시키는 분장, 그리고 살인을 저지르는 장면에 딱 어울릴 음악의 주인공이다. 초반에는 기타리스트만 가면을 썼지만 밴드 안에서 착용 욕구가 전염돼 모든 멤버가 괴기스러운 마스크를 쓰게 됐다. 늘 똑같은 마스크를 쓰는 것 같지만 새 앨범을 낼 때마다 마스크에도 변화를 준다는 놀라운 사실도 있다. 멤버들의 단체 사진을 보면 은근히 포즈에도 신경을 쓴다는 것이 느껴지는데, 이 때문에 공포물 덕후들의 정모 사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Monsters And Robots

익스페리먼틀 록 밴드 Praxis를 비롯해 많은 밴드에서 활동했으며 2000년부터 2004년까지 Guns N' Roses에 몸담았던 기타리스트 Buckethead는 하얀색 플라스틱 가면에 켄터키프라이드치킨(KFC)의 종이 용기를 뒤집어쓴 것이 특징이다. 용기 앞쪽에는 "장례식(Funeral)"이라고 적힌 스티커를 붙여 기이함도 드러낸다. 흰 가면은 영화 "핼러윈 4"에서 영감을 얻었고 KFC 바구니는 이 음식을 먹다가 갑자기 떠올랐다고. 그러나 본인을 닭의 후예라고 생각한다니 KFC 바구니를 쓰는 아이디어는 느닷없이 생각난 게 아닌 듯하다.

행동은 괴짜 같지만 음악은 무시할 수 없다. 헤비메탈, 익스페리먼틀 록, 앰비언트, 펑크(Funk) 록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며 테크닉도 화려하다. 창작열까지 대단해서 새천년에 들어와서는 정규 앨범을 1년에 서너 장씩 출품했다. 2013년부터는 단단히 미쳤는지 한 해에 서른 장 이상을 출시하고 있다.

Hide

이탈리아의 일렉트로닉 뮤지션 Sir Bob Cornelius Rifo를 주축으로 하는 The Bloody Beetroots는 스파이더맨, 정확하게는 스파이더맨과 대결하는 검은 스파이더맨 "베놈(Venom)" 모양의 가면을 쓴다. 이 때문에 이들의 음악은 무척 포악하고 공격적으로 들린다. "스파이더맨 3"에서 에디 브록이 베놈으로 변하는 순간에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포효하는 모습이 떠오른다고나 할까? 'Chronicles Of A Fallen Love', 'All The Girls (Around The World)'와 같은 부드러운 멜로디의 곡도 있지만 귀에 송곳처럼 박히는 짜릿한 전자음 루프는 The Bloody Beetroots의 강점이다.

복면달호 OST

우리나라의 원조 복면 가수. 록 스타를 꿈꿨지만 트로트 가수로 전업하는 봉달호를 연기한 "복면 달호"를 통해 차태현은 비공식 초대 복면가왕이 됐다.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하기 위해 썼던 레슬러 복면이 존재를 더 돋보이게 해 줬지만 튄다고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봉달호가 노래를 잘했고 그가 부른 '이차선 다리'가 맛깔스러웠기에 많은 이에게 사랑을 받았을 것이다.

어떤 영화에서든, 어떤 인물을 연기하든 차태현스러움을 유지하는 차태현의 편안한 연기가 영화의 인기에 한몫했지만 준수한 노래 실력도 성공적인 흥행에 한몫 단단히 했다. 두 장의 정규 음반을 통해 범상치 않은 가창력을 뽐냈으나 히트는 달성하지 못했던 아픈 기억을 "복면 달호"와 '이차선 다리'로 시원하게 씻었다.

Primary And The Messengers LP

프로듀서 프라이머리는 실제 얼굴 사진을 앨범에 담으면 나중에 세월이 흐르고 봤을 때 촌스럽게 느껴질 것 같아서 캐릭터 가면을 구상했다고 한다. 그런 깊은 뜻과는 달리 생각한 디자인은 소박하게도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비둘기. 하지만 배수구 뚜껑처럼 보이는 물체를 눈으로 박고 두꺼운 종이를 붙여 완성한 코만 덩그러니 있는 커다란 박스를 비둘기로 생각하는 이는 거의 없을 듯하다. 게다가 첨단기술은 고사하고 제대로 된 환기구 조차 없어서 쓰는 게 고역이라는 함정까지 손수 마련했다.

캐릭터 마스크는 보통 사람들의 상식과 떨어져 있지만 음악만큼은 대중의 정서와 가까웠다. 가요의 색을 억지로 입히지 않고 힙합, R&B 정통의 느낌을 고스란히 내면서도 가벼운 그루브와 잘 들리는 멜로디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연이은 표절 논란이 아쉽긴하지만, 흑인음악을 한층 친숙하게 한 공을 세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Part 3 It's Time To Captain

한국 최초의 가면 착용 뮤지션은 캡틴 퓨처였다. 우주선의 선장을 모티프로 한 싱어송라이터 송재준의 원 맨 밴드 캡틴 퓨처는 검은색 마스크와 망토로 신비롭고 공상과학적인 느낌을 부각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대중과 친숙해진 후 가면을 벗겠다"고 당당하게 말했지만 대중과 친숙해지지 못한 나머지 가면을 벗지 못한 채 은퇴하고 말았다. (방송에서는 가면 대신 선글라스를 착용하곤 했다) 1990년대 초반 그가 했던 음악은 당시에는 심히 대중적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단명한 그의 업적은 한국 최초의 비트박싱, 원 맨 아카펠라, 흔치 않았던 콘셉트 앨범 제작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국내 컴퓨터음악의 선구자로서 신해철의 솔로 앨범을 프로듀스했으며 이승철의 '소녀시대', 임재범의 '고해', 에스더의 '뭐를 잘못한 거니!' 등 다수의 히트곡을 작곡했다.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