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인 찍으면 숨는다…코로나의 교훈, 원숭이두창에도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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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2.06.26. 오후 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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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두창 ‘동성애 낙인’ 우려
특정 전파 경로만 부각돼 논란
방역·조기 진단 막는 역효과
밀접 신체접촉시 누구든 감염 가능
“낙인찍기는 ‘숨은 감염’ 만들어”
세계적으로 확산하며 글로벌 보건 위기 우려를 낳고 있는 감염병 원숭이두창의 확진자가 국내에서도 발생한 가운데 지난 23일 영종도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 모니터에 ‘원숭이두창 감염병 주의’ 안내문이 표시되고 있다. 연합뉴스


국내에서도 원숭이두창의 지역사회 전파 차단이 당면 과제로 떠오른 가운데, 확진자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 방역을 저해한다는 ‘코로나19의 교훈’을 되새길 때라는 지적이 나온다. 남성 성소수자를 감염원으로 몰아가는 그릇된 분위기 탓에 감염 의심자들이 조기 진단과 치료를 꺼릴 경우, 방역에도 큰 지장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26일 현재 질병관리청이 확인한 국내 원숭이두창 환자는 지난 21일 독일에서 입국한 내국인 1명 뿐이다. 하지만 코로나19 입국자 방역 조처가 완화되면서 원숭이두창의 지역사회 전파 가능성도 증가하고 있다. 원숭이두창은 전파력이 낮아 코로나19처럼 ‘팬데믹’이 될 가능성은 적지만, 최장 21일에 이르는 잠복기를 감안하면 ‘조용한 확산’이 지속될 수 있다. 특히 고열 등 쉽게 식별되는 증상이 없고 발진 부위마저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감염 의심자의 자발적인 신고와 검사가 확산을 막는 데 필수적인 요건이다.

24일 기준 전 세계 원숭이두창 확진자. 아워월드인데이터


지난 5월7일 영국에서 첫 발견돼 유럽과 미국 등지로 확산중인 원숭이두창은, 이전에 알려진 원숭이두창 풍토병과 일부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원숭이두창은 원래 발열 이후에 얼굴·손·발에 발진이 생긴다고 알려져 있는데, 최근엔 발열 같은 사전 증상이 없거나, 생식기 등 보이지 않는 곳에 발진이 생기기도 한다. 또 기존엔 바이러스에 감염된 동물이나 사람, 바이러스가 묻은 물질 등과 접촉했을 때 감염됐는데, 최근에는 주로 사람간 접촉에 의한 지역사회 감염 형태로 발생하고 있다.

국내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원숭이두창 확진자 중 남성 성소수자가 많다는 정보를 공유하며 혐오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현재까지 원숭이두창 감염자의 대다수가 남성이고, 초기 집단 발병에서 남성 간 성관계라는 특정 경로가 부각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계보건기구는 지난달 안내문을 통해 “원숭이두창은 남성과 성관계를 갖는 남성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며 “감염자와 밀접한 접촉을 한 누구든지 감염의 위험이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전문가들 역시 사람 간 원숭이두창 감염 경로가 성 접촉이라는 증거는 아직 없고, 감염 초기 공교롭게도 남성 성소수자 커뮤니티에서 확산이 이뤄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최원석 고려대 안산병원 교수(감염내과)는 “실제로 성 접촉이 어느 정도 위험도를 높이는지는 역학조사가 필요한 부분”이라며 “성 접촉이라는 상황 자체가 밀접한 접촉이어서, 남성이나 여성이나 감염 위험이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보건기구(WHO) 홈페이지에 게시된 안내문. 원숭이두창은 감염자와 밀접한 접촉을 할 경우 누구든지 감염의 위험이 있다고 안내하고 있다.


현재 분명한 건 원숭이두창 바이러스의 사람 간 전파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 이를 차단하기 위해 증상이 나타났을 때 즉시 방역당국에 알리는 적극적인 방역 참여와 조기 진단 및 치료가 필요하다는 사실 뿐이다. 실제로 국내 첫 확진자와 감염 의심자 역시 모두 자진 신고를 통해 검사로 이어졌다.

더욱이 한국의 경우 2020년 5월 이태원 클럽 코로나19 확진자 발생 때 사회적 낙인이 감염병 차단에 큰 방해물이 된다는 교훈을 얻었다. 당시 이태원 특정 클럽이 ‘게이 클럽’이라고 부각되며 방역과 무관한 확진자의 성적 지향이 도마에 올랐다. ‘성소수자’라는 낙인이 두려웠던 클럽 방문자들이 초기 검사와 조사에 응하지 않아 방역에도 차질을 빚었다. 장영욱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질병은 전파를 막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질병을 특정 정체성과 연결시킬 경우 숨은 감염, 숨은 전파가 많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방역당국도 불필요한 개인정보 유출을 경계하고 있다. 22일 국내 첫 원숭이두창 확진자 발생 브리핑에서 질병관리청은 “확진 환자 개인정보 중 성별과 연령은 공개 대상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백경란 질병청장 역시 지난 9일 간담회에서 “(감염자들이) ‘내 정보가 흘러나가지 않을까’ 염려하지 않도록 세심하게 잘 정비하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한편, 국제 통계 사이트인 아워월드인데이터를 보면 24일(현지시각) 기준 전 세계 원숭이두창 환자는 47개국 4147명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23일 원숭이두창 확산 상황을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PHEIC)로 지정할지 여부를 논의하는 긴급위원회 회의를 개최했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세계보건기구 사무총장은 25일 “공중보건 비상사태는 지정하지 않기로 했다”고 전하면서도 “긴급위원회 회의를 소집했다는 것 자체가 원숭이두창의 국제적 확산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상황을 반영한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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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 노동 담당을 거쳐 한겨레 법조팀에 있습니다. 잘 듣겠습니다. 열심히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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