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장 속 복지’ 고민한 스위스 국민…월 300만원 기본소득 ‘부결’

정환보 기자

77% 대 23%로 ‘반대’ 압도적…경제위기 속 ‘대안 모델’ 의미

스위스 기본소득 국민투표가 부결된 5일(현지시간),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시민들이 바젤에 모여 찬성 득표율 23%를 기념하는 현수막을 만들고 있다.  바젤|EPA연합뉴스

스위스 기본소득 국민투표가 부결된 5일(현지시간),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시민들이 바젤에 모여 찬성 득표율 23%를 기념하는 현수막을 만들고 있다. 바젤|EPA연합뉴스

스위스의 기본소득 국민투표가 77%의 반대로 부결됐다. ‘유토피아 실험’은 훗날을 기약하게 됐지만, 투표 자체만으로도 적지 않은 의미를 남겼다. 반대표를 던진 이들이 걱정한 내용들은 재정난과 국가경쟁력 문제, 이주민에 대한 두려움 등 모든 국가가 떠안고 있는 고민들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임금 인상으로 해결되지 않는 ‘일자리 없는 저성장 시대’의 복지가 어떤 길로 가야 하는지는 숙제로 던져졌다.

5일(현지시간) 국민투표에서 기본소득 안건은 유권자 76.9%의 반대로 부결됐다. 찬성은 23%, 투표율은 46%로 잠정 집계됐다. 26개 주 전체에서 찬성 의견이 더 많은 주는 한 곳도 없었다. 반대가 찬성보다 3배 이상 많았던 데에는 정부와 의회의 반대 입장이 큰 역할을 했다. 기본소득 국민투표는 2013년 13만명이 국민제안에 참여하면서 투표 요건(10만명 이상)을 넘긴 이후 2년 넘게 정부와 의회의 검토를 거쳤다. 상원은 검토 보고서에서 “노동과 개인의 책무에 가치를 부여하는 스위스에는 위험한 실험”이라고 비판했고, 하원인 국가위원회도 “관대하지만 유토피아적인 안”이라며 부정적인 의견을 첨부했다.

노동 의욕이 줄어들 것으로 보는 우파는 “마르크스주의 같다” “스위스의 경쟁력이 떨어진다”며 반대했다. 저소득층 복지가 줄어들까 걱정하는 좌파도 반대했다. 기본소득 운동 단체들이 설계한 안은 저소득층의 모자란 벌이를 메워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부유층에게도 무조건 매달 2500스위스프랑(약 300만원)을 주자는 것이었다. 재정을 메우려고 세금을 늘려 실질임금이 줄어들면 오히려 저소득층에게는 역차별이 될 수 있다고 좌파는 반대했다. 이미 잘 짜여진 사회보장체계를 뒤집어 엎을 필요가 있느냐는 회의론도 힘을 받았다.

유럽에 퍼지는 이민자 공포도 컸다. 5년 이상 합법적으로 거주한 외국인들에게도 기본소득을 준다는 내용이 들어있어, 이민자들이 몰려와 사회를 흔들 수 있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하지만 성과는 있었다. 복지체계가 아무리 잘 갖춰진 스위스라 하더라도 선별적·차등적으로 시행되는 한 복지는 결국 ‘국가가 베푼다’는 개념에 속한다. 기본소득 구상은 복지를 기본권 차원의 논의로 전환시켰다. 세계의 성장률이 떨어지고 실업이 늘고, 그나마 있는 일자리도 저임금 비정규직인 현실에서 기본소득 구상은 각국이 고민해볼 대안으로 떠올랐다.

뉴욕타임스는 표본 집단 1만명을 대상으로 기본소득 실험에 들어가는 핀란드, 위트레흐트 등 지역 단위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네덜란드 등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의미있는 기본소득 도입 움직임을 소개했다.

스위스의 국민투표 캠페인 측도 결과에 낙담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기본소득유럽네트워크(BIEN)의 체 바그너 대변인은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것은 시작일 뿐이다. 4명 중 1명이 찬성표를 던졌다는 것은 정말이지 위대하다”며 “특히 청년들이 기본소득에 관한 토론을 계속하길 원한다는 점이 고무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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