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민동용]김종인의 ‘역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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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동용 정치부 차장
민동용 정치부 차장
2012년 19대 총선 당시 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인 민주통합당의 공천 조건 1번은 정체성이었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당 대표로 선출되고 친노(친노무현) 진영이 당권을 장악하면서 나온 결과였다. 정체성의 내용이 무엇인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그러나 중도를 지향하던 경제통인 김진표, 강봉균 의원은 후보자 공천을 위한 경선 기회도 못 잡을 뻔했고, 김덕규 전 국회부의장은 경선에서 아예 배제됐다. 지역구와 비례대표 공천 명단을 보고 나니 정체성이란 이른바 민주화운동 경력과 ‘싸가지 없는 진보’를 뜻하는 것으로 대략 파악이 됐다. 민주통합당은 19대 총선과 그해 18대 대선에서 ‘민주 대 반(反)민주’ 구도를 여전히 버리지 못했다. 그리고 패했다.

더민주당이 올해 4·13 총선 공천 과정에서 정체성을 최우선 조건으로 내세우지 못하리라는 점은 분명하다. 김종인 전 의원을 선거대책위원장으로 ‘모셔오는’ 순간, 정체성과는 결별한 셈이다. 1980년 5월,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내란음모 혐의로 구속되고 광주에서 참극이 벌어지고 있을 때 서강대 교수였던 김 위원장은 신군부의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직을 수락했다. 그리고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안의 국회 통과를 방조했던 새천년민주당 비례대표로 2004년 국회에 또 들어왔다.

김 위원장의 행적에 옳고 그름의 잣대를 들이대려는 건 아니다. 다만 더민주당이 4년 전의 ‘정체성’을 고수하고 있다면 그가 선대위원장직을 수락한 지 2주가 다 돼 가는 지금까지 온전히 자리를 지켰을지 의문이다. 운동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이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 지정곡이 돼야 한다며 3년간 피를 토했던 광주의 모 의원은 아무 말이 없다. 재작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 경력의 이상돈 명예교수를 당 비상대책위원장으로 ‘모시고자’ 했을 때 결사반대를 외치며 연판장까지 돌렸던 친노·운동권 의원 54명도 조용하다.

그들을 질책하려는 게 아니다. 그들의 ‘눈치 행보’가 오히려 야권의 미래, 아니 한국정치의 미래를 위해서는 올바른 행동이라고 칭찬하고 싶다. 다시 강조하면 이번 총선에서 더민주당의 케케묵은 민주 대 반민주 구도는 용도 폐기될 수밖에 없다. 자신들의 기존 잣대로는 ‘반민주’ 인사임에 틀림없는 ‘당 대표’를 모시고 그런 전략을 내세운다면 정신분열에 가까운 자기부정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정책 대결만이 남았다. 물론 야권통합 또는 선거연대라는 변수가 있긴 하다. 하지만 그것은 총선 직전에나 성사될 확률이 높다. 그동안이라도 써먹을 수 있는 총선 전략은 좋은 정책을 많이 내놓는 것이 유일하다. 여기에 양당 독점체제 타파를 내세운 국민의당이 정책 위주로 국회에서 캐스팅보트를 쥐겠다고 천명하기까지 했다. 더민주당이 정책 개발을 외면할 수 없는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김 위원장이 선장이 되고, 선원들은 미필적 고의로 이를 묵인하는 묘한 상황이 야권 정치를 업그레이드시킬지 모른다. 김종인의 역설이다.

민동용 정치부 차장 mindy@donga.com
#김종인#더민주당#국민의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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