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충성 세력’ 장악 실패
막장 공천 책임론 부각돼
청와대는 13일 지상파 방송3사의 4·13 총선 출구조사에서 새누리당의 과반 의석 확보가 어려운 것으로 예측되자 당혹스러워했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이 밀어붙였던 노동 5법 등 주요 국정과제가 주춤거리는 등 국정운영 동력이 상실될 것을 우려했다. 선거 참패 주요 원인이 박 대통령과 친박계의 막장 공천으로 지목되는 등 ‘청와대 책임론’이 부각되면서 레임덕(임기말 권력누수 현상)이 가속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선거의 여왕’ 박 대통령으로선 처음 맛보는 참패인 셈이다.
청와대는 말을 잃었다. 공식적인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충성 세력’으로 채워진 새누리당의 과반수 확보를 근거 삼아 후반기 국정을 수월하게 운영하겠다는 구상이 어그러졌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남은 임기 동안 국가와 국민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낼 것”이라며 끝까지 국정 주도권을 쥐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현실은 정반대가 됐다.
불과 1년10개월 남은 임기를 감안하면 국정동력 상실은 불 보듯 뻔하다. 한 관계자는 “분위기가 어둡다”고 했고, 다른 관계자는 “(공천 파동을 주도한) 이한구 의원(공천관리위원장)이 사실상 야당 선대위원장 노릇 한 거 아니냐”고 반문했다. 당장 청와대가 밀어붙였던 노동 5법, 사이버테러방지법 등 쟁점법안들의 미래는 불투명해졌다. 청와대와 친박들은 공·사석에서 “20대 국회에서 ‘국회선진화법’을 제일 먼저 손보겠다”고 밝혀왔지만, 이 역시 공염불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여소야대’가 되면 외려 여권이 국회선진화법에 매달리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
더 큰 문제는 ‘선거의 여왕’ 박 대통령의 권위 추락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말부터 꾸준히 야권 심판론을 제기하고, 최근까지 격전지에 위치한 창조경제혁신센터를 방문하는 등 선거개입을 해온 터다. 전날 국무회의에선 “민생 안정과 경제활성화에 매진하는 새로운 국회가 탄생해야만 한다”고도 했다. 이날도 새누리당을 상징하는 붉은색 재킷을 입고 한 표를 행사했다. 그런 만큼 예상 밖 참패는 박 대통령에 대한 심판으로 각인되는 분위기다.
우선 청와대에 눌려 있던 새누리당이 독자 행보를 펼칠 가능성이 농후해졌다. 김무성 대표와 무소속으로 당선된 유승민 의원 등 비주류 대선주자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공간이 넓어질 수 있다. 김무성계인 김영우·김성태·김학용 의원, 유승민계인 이혜훈 의원 등 당선자들도 부담스러운 존재다. 일부 진박들이 살아 돌아왔지만, 초선인 이들의 정치적 역량은 비주류들에 비해 미약하다.
박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 대구가 흔들리고, 부산·경남에 구멍이 뚫린 것도 부담거리다. 대구 진박들은 청와대 지원을 받고서도 선거 내내 무소속 후보들과 어려운 싸움을 벌였다. 부산·경남에선 더불어민주당이 사상 유례없이 약진했다.
<이용욱 기자 wood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