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노조 자료로 학교서 ‘노동권’ 수업…영국 “시민권 발전 위해 필요”

김지환 기자

어떻게 가르쳐야 하나 - 해외 사례

독일노총(DGB)이 지난해 3월 하노버 인근에 위치한 소도시 파이네에 있는 직업학교를 방문해 ‘민주주의와 공동결정’을 주제로 특강을 열고 있다. 파이네 알게마이너 차이퉁 제공

독일노총(DGB)이 지난해 3월 하노버 인근에 위치한 소도시 파이네에 있는 직업학교를 방문해 ‘민주주의와 공동결정’을 주제로 특강을 열고 있다. 파이네 알게마이너 차이퉁 제공

“보통 30분이면 가능한 출근 시간이 두세 시간씩 걸리면 시간 허비와 불편으로 당연히 불만의 소리가 나오게 된다. 그런데 이 불평 사이에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꼭 있다. ‘우리 이용자가 불편을 겪는다고 지하철 노동자의 파업권을 제한하는 데 동의하면 언젠가 그 제한의 목소리가 바로 우리에게도 닥칠 것이다.’” 홍세화 장발장은행장이 1995년에 발간한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자>에서 지하철 파업에 대한 파리 시민들의 태도를 전하고 있는 대목이다. 프랑스·독일 등 유럽 국가들은 노동자들의 파업을 바라보는 관점이 한국 사회와 달리 ‘관대’하다. 노동권이 시민권의 핵심적 내용으로 꼽히면서 공교육 차원에서 노동인권교육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이 한국 사회에 비해 강한 사회적 발언권을 갖고 있다는 것도 하나의 요인이다.

■영국, “노동은 시민의 존재 방식이자 지위”

경기도교육연구원이 지난해 9월 펴낸 ‘노동인권교육 현황 및 발전 방안’ 보고서를 보면, 영국의 경우 교육 및 훈련기관뿐 아니라 노조를 포함한 다양한 시민사회단체가 노동인권교육에 개입해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이 전제돼 있다. 영국 교육·고용부장관실 향상교육진흥위원회가 2000년 내놓은 시민교육 보고서는 직장에서 실습을 하는 학생들을 위해 “고용주들이 시민성의 발전을 위한 교육과정에 노조를 참여”시켜야 한다고 적고 있다.

실습생뿐 아니라 전체 학생에게 시민교육 자료를 제공하는 시민교육협회(ACT)는 교사에게 제공하는 자료 중 노조에 의한 교육을 소개하는 내용도 포함시키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노동조합이 학교 안으로(unions into schools)’라는 사이트인데 영국 노동조합총연맹(TUC)뿐 아니라 교원노동조합, 공공연맹 등 다수 산별노조도 참여해 만들어졌다.

영국의 여러 노동조합이 공동으로 구축해 운영하는 사이트인 ‘노동조합이 학교 안으로(unions into schools)’.

영국의 여러 노동조합이 공동으로 구축해 운영하는 사이트인 ‘노동조합이 학교 안으로(unions into schools)’.

노동인권교육은 경제교육 과목에서도 중요하게 다뤄진다. 영국 비즈니스·혁신·기능부가 2010년 발간한 <출발: 일할 권리와 책임>이라는 책자는 일자리에서 발생할 수 있는 상황 20가지에 대한 시나리오를 제시하면서 노동자의 권리, 차별 관련 이슈, 건강과 안전, 직장에서의 따돌림 등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보고서는 “노동을 경제의 하위요소로서가 아니라, 시민의 다양한 존재 방식 내지 지위의 하나로서 다루고 있다”고 설명했다.

■독일 ‘모의 노사관계’ 교육

‘노동학’이라는 분과학문이 체계화돼 있을 정도로 노동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은 독일은 실업, 노동3권 등을 다루면서 교육 방법론으로 모의 노사관계를 결합시키고 있다.

향후 노동시장에 진출할 학생들이 직면할 문제를 피부로 느끼도록 해 교육 효과를 높이기 위한 것이다.

중등2과정(실업계) 사회과 교과서인 ‘함께 행동’은 총 340쪽 분량인데 이 중 93쪽(27.4%)을 노동교육에 할애하고 있다. 김나지움(인문계)에서 사용하는 교과서가 아니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상당한 비중인 셈이다.

[노동이 부끄러워요?] (3) 노조 자료로 학교서 ‘노동권’ 수업…영국 “시민권 발전 위해 필요”

모든 교과서들의 공통점은 노사관계를 ‘민주주의와 노사 공동결정’이라는 관점에서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국가는 (정치영역뿐 아니라) 다른 생활영역에서도 당사자들의 참여가 가능하도록 보장하고 있다. 학급에서는 반장을 선거로 정한다. 기업에서도 선거를 통해 직원평의회(독일의 노사 공동결정 제도에 따른 노동자 대의기구)를 구성한다”는 것이다.

■프랑스, 고교 3년간 교과 통해 가르쳐

프랑스의 경우는 일반계와 실업계 고교에서 공통으로 ‘시민-법률-사회교육’이라는 교과를 통해 3년간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노동인권교육이 이뤄지고 있다. 빈곤과 시민권, 파업의 정치·사회적 역할, 노조와 사회운동, 근로계약서, 임금, 노조 가입 노동자와 미가입 노동자 간 평등 등 폭넓은 주제를 다룬다.

■미국, 중학교 ‘시민론’ 교과서에 노사관계 포함

미국의 중학교용 ‘시민론’ 교과서에는 정부와 노동이라는 주제 아래 노조의 형성, 노사관계, 노조의 현주소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다. 다만 유럽에 비해 강력한 노동운동이 없었던 만큼 미래의 노동자인 학생들이 구체적으로 노동3권을 인식하는 교육이 이뤄지진 않고 있다. 미국 보스턴에서 초·중·고교를 다닌 임월산 공공운수노조 국제국장은 “간략하게 배우긴 했는데 노동자가 향후 노동시장에서 겪게 될 문제에 대해서는 충분하게 다루지 않는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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