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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6.25전쟁때 맥아더장군의 인천상륙작전이 실패했다면??
정보가 없는 사용자 조회수 11,469 작성일2005.10.12

만약, 6.25전쟁때 맥아더장군의 인천상륙작전이 실패했다면 어떻게 될까요?

북한이 남한을 이길수도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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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us****
중수
세계사, 한국사, 대학 입시, 진학 분야에서 활동

...

 

인천 상륙 작전은 특별한 작전이 아닙니다.. 성공하고 자시고 할것도 없죠..

 

소련의 지원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장비면에서 압도적으로 열세에 있는데..

 

인천을 선택한 이유는 동해안은 해안선이 밋밋하기 때문에 정박하기가 불가능하죠

 

그리고 남해안을 선택해서 정면승부를 하는것은 전력 낭비고..

 

가장 만만한 곳을 선택한 것이 인천항입니다..

 

북한의 경우 후방 유린을 예상했을 지라도.. 후방에 완비를 해둘만큼

 

전력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죠..  때문에 인천 상륙 작전의 실패는 절대 불가능해요..

 

중공군이 초기 개입을 했다던가.. 소련이 개입을 했다던가..

 

물론 이런 상황이였다면.. 미군이 지원을 더욱 확대해서 소련, 미국간의 정면대결로

 

바뀌면서 전쟁의 승패를 가늠할수는 없었겠지요...

 

제가 말씀 드리고 싶은 점은

 

북한 단독으로 인천 상륙 작전을 막을 방법은 전혀 없었다라고 할수 있습니다.

2005.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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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문자⋅지식인이 채택한 답변입니다.

3번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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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ng****
달신
세계사 17위, 사회학 30위, 경제 동향, 이론 24위 분야에서 활동

육상에 전선을 확보한 상태에서 또 다른 전선을 만드는 상륙작전을 고려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 형성된 전선에 투입될 전력보다 많은 전력을 확보한 경우입니다.

 

고로 형성된 전선의 길이에 비해서 막강한 예비전력을 확보한 연합군으로서는 제 2차 상륙작전을 시도할 공산이 더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한국 전쟁 당시 북의 해군 전력은 고려할 값어치도 없기 때문에 상륙작전이 실패했다고 해도 손실되는 것은 상륙교두보 확보를 위한 소규모 병력일 것이 분명함으로,(연합국 해군을 상대할 전력이 없음으로 상륙작전이 실패해도 함대는 무사할 것이 분명) 오히려 더 많은 병력이 여러 곳에서 분산 상륙을 시도할 가능성이 농후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대구 경산 전선까지 기습으로 밀고 들어와서 몇 개월 동안이라도 그 전선을 유지한 북한군의 선전이 오히려 대단하다고 할 정도죠.

 

뭐 상륙작전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1950년 9월 즈음에는 북한군도 예비전력까지 거의 소모해버린 상태였습니다.

그러므로 정면돌파도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될 수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실제적으로 평양 수복 이후 김일성이 중국으로 도주한 시점에는 북한군은 겨우 3개 사단의 전력뿐이 남지 않았습니다.(이것도 병력 태반을 소모한 부대 껍데기나 다름없었지만)

 

 

또한 많은 분들이 인해전술이라고 한다면 그냥 머릿수로 밀어붙이는 전술이라고 생각하시는데, 중국의 장군들도 그렇게 아무 생각없는 사람들은 아닙니다.

 

항미원조전쟁(중국에는 한국전쟁을 이렇게 부릅니다.) 당시 북조선 파견군 사령인 린바우또한 명장이라는 말씀입니다.

 

평양 수복 이후 북한군이 깡통을 찾다는 것을 알게된 연합군은 그야말로 묻지마 진격을 시도하고 있었습니다.

그 유명한 크리스마스 대공세(크리스마스 이전에 전쟁을 끝내고 크리스마스는 가족과 함께 보내겠다는 아주 가정적인 작전^^)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러한 분위기에 동조된 한국군은 아예 전초조차 세우지 않고, 누가 더 빨리 조중국경에 도달하는가 하는 경주에 가까운 진격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연합군을 동태를 파악한 중국 인민 해방군은 중국 국공내전의 경험을 십분 살려 야간에만 산악의 7부 능선을 따라 이동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실핏줄 같이 퍼져있는 한반도 북부 산악지대를 거의 장악한 중국군이 모습을 드러냈을 때는 연합군 선두부대는 북한의 거대한 산맥 포위망에 갇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죠.

 

이게 순간 일패도지 하여 서울을 내주게 된 원인입니다.

 

산악지대를 포위하여 평야지대, 특히 도로를 따라 이동하는 연합군을 포위 공격한 것이 바로 인해전술입니다.

 

만약 많은 분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평지에서 병력 다드러내놓고 함성지르며 돌격해왔다면, 중국군은 대공무기의 열세로 인해 참패를 면치 못했을 것입니다.

사실 백마고지 전투사 따위를 보면 주간에는 연합군이 야간이 중국군이 장악했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이유는 바로 중국군에게는 대공전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주간에 항공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연합군이 유리했던 것을 의미합니다.

 

당시에는 항공기가 현재의 렌턴과 같은 장비를 갖추지 못했기에 야간 폭격능력이 없었던 탓이죠.

물론 중국군은 독소전쟁이후 공산권 교리의 모티브가 된 방어전에서는 견인 화력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것을 몰라도 화포 전력에서는 연합군을 압도하고 있었습니다.(현재 북한군도 이러한 교리에 따라 상당히 엄청난 포병 전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전 세계 군대에 찾아볼 수 없는 포병만으로 구성된 강동 포병 군단을 편성, 운영하고 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전쟁이란 종결까지 보유전력을 계속 소모하는 싸움입니다.

생산과 동시에 전력을 확충하는 것은 장기전이라고 할지라도 소모량을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이러한 전력의 소모의 법칙이 깨진 단 한 차례의 경우는 2차 대전 당시 미군이다. 미군은 1939년 당시 총 10만의 전력 뿐이 없었으나, 대전 말에는 수백만의 전력으로 확대되었다. 특히나 일본과 독일이  하루 해상에서 10대의 함선을 격파하면 12척을 만들어내는 생산력은 경이적인 것이었다. -별첨: 당시 이러한 미국의 조립식 함선 건조방법인 리버티쉽 건조법은 현재까지도 대형 함선의 건조에 널리쓰이고 있다.)

 

결론적으로 50년 9월 보유전력의 소모량을 감당할 수 없게된 북한군으로서는 제 2 전선의 확보가 아니었어도 무너질 수 밖에 없는 상태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실제적으로 연합군이 인천 상륙전 전에 예비작전으로 인천 근해의 섬들을 점령하는 것을 알고도 북한군은 상륙 방어진을 구축할 예비전력도 남아있지 않았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상입니다.

 

 

2005.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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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문자가 채택한 답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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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수

3년전 질문이긴 하지만 그래도 정확한 정보를 위해서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인천상륙작전의 계획은 당시 수많은 반대에 부딪혔습니다. 북한군이 열세였다고는 하지만

연합군의 총 전력으로 허리를 자르다가 실패하면 포위를 당하는 위험한 상황이였습니다.

또한 인천 앞바다는 조수간만의 차가 심해서 연합군의 대형 군함들이 상륙작전을 시도하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맥아더 장군이 이 계획을 밀고 나갈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맥아더 장군이였기 때문이였습니다. 맥아더 장군은 당시 미국에서도 전쟁영웅으로

트루먼 대통령보다도 더 많은 인기를 얻고있었습니다. 이런 맥아더 장군을 무시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던 것이죠.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으로 이끌기 위해 연합군은 모든 전력을 동원하여 상륙지를 몇일간에 걸쳐

포격과 폭격을 하였습니다. 상륙당시 북한군이 힘을 쓰지 못한 이유중 하나가 바로 포격과 폭격이였습니다.

이하 중론은 생략하고 인천 상륙작전은 성공하였습니다. 그리고 전세를 뒤집었습니다.

그리고 맥아더 장군의 위상은 더욱 높아졌습니다. 이에 위협을 느낀 트루먼 대통령은

맥아더 장군을 퇴역 시키죠... 이때 나온말이 '노병은 죽지 않는다. 영원히 사라질뿐...' 입니다.

 

몇년전 기간만료에 의해 비밀해제된 미국의 문서를 보면

<인천상륙작전이 실패할 경우 대한민국정부를 제주도로 옮겨 대한민국정부 수립을 선포한다.>

라는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실패했다면 대한민국은 제주도라는 섬나라가 됐을 것입니다.

그만큼 인천상륙작전은 위험부담이 큰 매우 중요하고도 역사적으로 남을 상륙작전이였죠.

 

우리는 우리나라의 역사를 결코 잊어서는 안됩니다. 6월 호국 보훈의 달을 맞이하여

한번쯤은 뼈아픈 역사를 되돌아 봐야 할 것입니다^^

2008.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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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hkd****
시민

그랬을 겁니다. 6.25전쟁 중에서 인천상륙작전이 남한에 힘을 불어주는 활력소였으니까요,

아시겠지만 인천상륙작전이 끝나고 남한이 승승장부하며 북으로 올라가다가-_   -

중국의 인해전술로 인해 다시 남한의 사기가 저하되었습니다.

그나마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해서 사기를 돋울수 있었기에 인해전술의 피해으 ㅣ 데미지를 조금 받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솔직히 6.25전쟁에선 누가이겼다고 할 수가 없죠.

만약 이겼다면 무력으로 통일을 할 수 있었을테지만,말 그대로 휴전상태죠.

요즈음 북한과 남한의 교류가 활발하니 통일을 기대해보는거죠~

※인해전술:말 그대로 사람이 바다같다. 머릿수로 밀어부치는 전술입니다.

무기나,전략은 필요가 없죠-_  -만약 우리나라가 대량살상무기가 있었다면 이놈들 다 죽었을텐데 으구~

2005.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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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 사용자 답변

끔찍하저 우리나라는 ㄷㄷㄷ

2번 다른나라의 식민지가 되는거저

2008.0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