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성남시장, 워싱턴 전문가들과 ‘햇볕정책’ 정당성 논쟁

워싱턴|손제민 특파원
이재명 성남시장(맨 오른쪽)이 워싱턴의 맨스필드재단에서 한반도 평화와 북핵문제를 놓고 워싱턴 전문가들과 토론하고 있다. 워싱턴/손제민 특파원

이재명 성남시장(맨 오른쪽)이 워싱턴의 맨스필드재단에서 한반도 평화와 북핵문제를 놓고 워싱턴 전문가들과 토론하고 있다. 워싱턴/손제민 특파원

이재명 성남시장이 미국 워싱턴의 전문가들과 간담회에서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한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그는 지난 7~8년간 이뤄진 한국 정부의 대북 강경책과 미국 정부의 전략적 인내 정책이 결국 북한 핵 능력의 강화를 막는데 실패했다며 제재·압박보다 대화와 협상을 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이 시장은 21일 워싱턴의 맨스필드재단 초청 간담회에서 북한 핵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의 세계 전략에도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지금까지는 주로 채찍에 의존해왔다면 이제 그 한계를 인정하고 당근을 사용할 때”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취할 수 있는 최강경의 제재 정책을 한다고 해봐야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중국이라는 뒷문을 통해 제재 효과가 물 새듯이 새버린다”면서 이 같이 말했다.

이 시장은 순차통역을 통해 이뤄진 이날 간담회에서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제안한 비핵화 협상과 평화체제 협상의 병행 논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미국도 이를 검토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 시장의 이 같은 발언은 미국 전문가들 사이에는 햇볕정책으로 회귀해야 한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미 의회조사국(CRS)의 아시아 담당 연구국장인 마크 매닌은 “미 의회는 북한에 대해 많은 우려를 갖고 있다. 민주, 공화 양당이 다른 모든 일에는 이견을 보여도 거의 유일하게 합의하는 부분은 북한에 더욱 강력한 압력과 제재를 가해야 한다는 점”이라며 “(당신이 돌아가자고 하는) 햇볕정책은 10년간, 또는 최소한 2005~2009년 사이에 채택해봤지만 먹히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햇볕정책과 더불어 더욱 강력한 압박과 제재가 필요하다고 보지 않느냐”고 물었다.

이 시장은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이 효과가 없었다고 하지만 그 정책을 펼 당시에는 북한의 핵 개발이 거의 진전되지 않았다. 하지만 후임 정부들이 강경책을 쓰면서 악화됐다”고 반박했다. 그는 시기가 거의 겹치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 정책과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대북 강경책이 결과적으로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강화를 막지 못했다는 점에서 실패를 인정하고 북한과 협상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북한은 세계 질서를 위협하는 가장 강력한 적이라기보다 살아남기 위해 들고 있는 칼을 마구 휘두르는 상태”라며 “그들이 (체제 유지의) 불안감을 느끼지 않도록 북한을 좀더 개방시키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말했다. 그는 “근본적으로 북한 핵문제는 냉전의 산물”이라며 “상대를 자꾸 가두고 압박하면 할수록 살아남기 위해 무기개발에 더 집착하게 된다. 그것이 현실이다. 기분 나쁘더라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에 간담회를 주재한 프랭크 자누지 맨스필드재단 대표는 “북한을 다룰 때 어려운 점은 우리가 대화로 접근하면 오히려 김정은이 체제 생존에 위협을 느껴 뒤로 물러서는 경우도 있었다”면서 “개방이 곧 새로운 사상에 대한 통제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두려워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전미북한위원회(NCNK)의 대니얼 워츠 국장은 이 시장에게 남북관계의 미래, 특히 개성공단 가동 재개가 가능할 것인지 물었다. 이 시장은 “개성공단을 생각하면 한숨만 나온다”며 “햇볕정책의 상징이자, 남북간 충돌을 막는 안전장치 하나가 없어져버렸다. 개성공단 철수는 하지 않는 것이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존 메릴 전 국무부 정보조사국(INR) 동북아담당 국장은 “개성공단 폐쇄로 남북관계가 매우 좋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과 미국은 더 강력한 제재를 추진하는 것 같다”면서 “지금 상황은 김정은이 스스로 자제해주기만 기대고 있는 매우 이상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 내 분위기는 북한에 강경한 것이 이해되지만, 왜 정작 이 문제가 가장 중요한 한국 국민들은 제재와 압력 강화만 따라간다고 보느냐”고 물었다.

이 시장은 “남북한이 대치 상황이어서 국민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표출하는데 압력을 많이 느낀다”며 “남북관계 문제에 대해 정치적으로 공격 당하기 때문에 회피하는 측면도 있다. 분명한 것은 군사적 긴장의 측면이 격화될 수록 한국 민주주의는 퇴조하게 돼 있다. 이것은 순수한 남북관계의 문제가 아니라 양쪽 모두 국내정치와 긴밀하게 연관되기 때문에 쉽게 풀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그렇기 때문에 이 문제에서 한국 국민들의 입장도 중요하지만 제3자적 입장을 가진 미국과 중국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이 문제를 감정적으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이성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옆집의 나쁜 친구가 살고 있으면 두드려 패기만 하면 더 빗나가게 된다. 좀 자존심이 상하더라도 내 가족들의 안전을 지키려면 그 친구와도 잘 지내고 먹을 것도 주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 시장은 한국 진보진영의 반미주의에 대한 견해와 한·미 동맹에 대한 관점을 묻는 질문에 “한국의 진보진영이 미국에 반미적 입장을 취하는 것은 극히 일부이다. 미국을 반대하고 도대체 어디 가서 살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라며 “(한·미 관계는) 군사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정치적으로든 아주 밀접한 관계로 되고 있기 때문에 이것을 부인하는 것 자체가 무책임하고 현실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한·미 동맹의 바람직한 방향은 “서로 돕는 우호적인 관계의 바탕 위에서 서로 얼마나 발전하고 얻어갈 것인지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시장은 통일을 왜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우선 안전하게 살 수 있어야 한다. 전쟁의 위험을 없애는 유일하고 근본적인 방법이 통일이다. 둘째, 경제적 손실을 막기 위해서다. 남북이 군사적으로 대치하는 상황이 되면 국가 부도지수가 뛰어서 외채에 대한 이자를 많이 지불해야 하고 주가가 폭락하는 손실이 있다”고 답했다.

이어 “좀더 긍정적 관점에서 보자면 북한은 싸고 우수한 노동력과 엄청난 자원을 가지고 있는 새로운 잠재적 시장이다. 인도적 측면에서 보면 남북 분단으로 갈라진 가족이라든지 이런 고통이 엄청나게 크다. 끝으로 세계질서라는 측면을 보면 위험한 화약고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화약고를 없애는 것도 우리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말했다.

이 시장은 “미국 입장에서는 한반도 핵문제, 통일 문제가 세계질서라는 장기판 안에 장기말을 놓는 일처럼 여겨질 수 있다”며 “그러나 장기판 위에 있는 말의 입장인 한반도는 7000만 명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소중한 공간이다. 좀 더 한반도의 7000만 사람들의 삶에 대해서도 깊은 배려를 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맨스필드 재단은 미국과 아시아 국가들의 지도자, 전문가들과의 교류를 통해 사이의 인맥을 구축하고 공공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단체다. 20일부터 워싱턴을 방문한 이 시장은 22일 워싱턴 한국전쟁 기념비에 헌화하고 보스턴으로 이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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