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역 준장 민홍철 낙동강벨트 2전 전승비법? '소신과 원칙'

[the300][국회의원사용설명서 2.0]민홍철 더불어민주당 의원

임상연 기자 l 2016.07.01 05:40


‘보수성향이 강한 경상남도 태생이자 군 장성 출신 법조인’ 

19대 총선을 앞둔 2012년 초, 경남지역 정가는 ‘여당 같은 야당’ 후보의 출현에 술렁였다. 출신과 경력으로만 보면 여당 후보로 더 어울릴 법한 인물이 야당 후보로 여당의 ‘텃밭’ 경남 김해갑에 도전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당시에도 군 장성 출신이 대북정책 기조가 다른 야당 후보로 지역구에 출마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었다.

더욱이 경쟁 상대인 여당 후보는 현역 의원이자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사무총장까지 지낸 김정권 전 의원. “싸움이 되겠냐”는 관측이 우세했지만 ‘여당 같은 야당’ 후보는 군 출신 특유의 뒷심을 발휘하며 989표 차이의 신승을 연출했다. 19대 경남지역 유일의 야당 의원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군법무감(준장) 출신으로 19대에 이어 재선에 성공한 민홍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이야기다. 당시 민 의원은 야당에서 활동 중인 선배가 처음 출마를 권유했을 때 “내가 왜 야당 후보로 나가야 하냐”며 손사래쳤다고 한다.
그는 “사실 당시에는 정치에 큰 뜻이 없었고, 야당 후보로 나서는 것에 주변의 만류도 많았다”며 “선배의 계속된 권유에 고심 끝에 ‘지역주민을 위한 사다리가 되자’ 생각하고 출마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민홍철 의원의 고등군사법원 군판사 시절 모습.


[키워드1]1석2조의 선택 ‘군법무관’
1961년 5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난 민 의원이 ‘군법무관’의 길을 택한 건 가난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괴목을 다듬어 찻상 등을 만들어 팔았지만 5남매를 먹이고 입히는 것조차 힘겨워 어머니까지 행상을 하거나 일거리를 찾아 공장에 나가야 했다.

민 의원 역시 유년기부터 쓰레기 더미에서 주운 쇳조각이나 구리 등을 고물상에 팔아 생활비에 보탰다. 어려운 형편에 더 큰 위기가 찾아온 것은 고교 2학년 때. 일을 나갔다 온 어머니가 갑작스런 뇌출혈로 세상을 떠난 것. 장남의 어깨는 한층 무거워졌다.

이런 그에게 유일한 탈출구는 공부였다.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공부벌레가 됐고, 항상 전교 수위권에 들었다. 대학 입시를 앞두고 그는 서울의 명문대가 아닌 부산대 법대를 택했다. 장남으로서 동생들을 두고 멀리 떠나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빨리 변호사가 돼 집안을 책임져야 한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목표는 단 한 가지였다. 하지만 80년 암울한 시대는 그에게 여유를 주지 않았다. 민 의원은 “입학식 날 기억나는 것은 교문을 지키던 두 대의 탱크였다. 얼마 후 휴교령이 내려졌고 공부할 곳이 사라졌다”고 회상했다.

뒤늦게 사시에 도전했지만 번번이 낙방의 고배를 마셨던 그는 변호사가 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찾았다. 바로 10년 이상 복무하면 변호사 자격을 취득할 수 있는 군법무관이었다. “두 차례 사시에 실패하고 초조했죠. 군 입대를 앞두고 있었거든요. 그러다 병역문제를 해결하고 변호사도 될 수 있는 군법무관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죠. 10년 복무 조건이었는데 어쩌다보니 25년이나 있었네요.”

[키워드2]’칼주름’ 같은 소신과 원칙

오랜 군 생활이 만든 민 의원의 소신과 원칙은 제복의 ‘칼주름’을 닮았다. 평소 튀지 않고 차분한 성격이지만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정당과 이념을 떠나 밀어부치는 스타일이다.

지난 1월 정의화 전 국회의장의 국회선진화법 개정안에 더민주 의원 중 유일하게 공동발의자로 참여한 것이 대표적이다. 당시 더민주는 새누리당이 요구하는 '권성동 의원안'을 비롯해 '의장 중재안'도 반대해온 터라 민 의원의 참여는 사건(?)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는 당과 다른 입장을 보인데 대해 "당에 확인하지 않고 서명했다”며 "나도 법률가 출신이고 의장 중재안 정도되면 다수당과 소수당간에 협상을 재고할 수 있는 장치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2014년 8월에는 세월호 사태로 당이 국회 일정을 파행시키고 장외투쟁를 선언하자 동료 의원들과 이에 반대하는 연판장을 돌리고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국회의원은 국회의 민주적 절차 속에서 싸워야 한다’는 소신 때문이었다.


[키워드3]낙동강벨트의 파수꾼

민 의원은 20대 총선에서 나홀로 낙동강벨트를 지켜야 했다. 부산 사상구가 지역구인 문재인 전 대표의 불출마 선언과 사하구을이 지역구인 조경태 의원의 새누리 이적으로 낙동강벨트에선 민 의원이 유일한 야당 의원으로 남게 됐기 때문이다. 

특히 조 의원의 이적 후 민 의원까지 새누리의 러브콜에 흔들리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한바탕 소란도 벌어졌다. 민 의원마저 떠날 경우 낙동강벨트는 여당 일색으로 변하게 돼 선거판세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급기야 민 의원이 직접 나서 부인하면서 새누리 입당설은 헤프닝으로 일단락됐다. 당시 그는 “당이 어렵다고 당적을 바꿀 순 없다. 군 장성 출신으로 바른 길을 가야 한다는 게 제 소중한 가치”라며 낙동강벨트의 파수꾼으로 남을 것을 밝혔다.

탈당설에 휘말렸던 민 의원은 역으로 20대 총선과 함께 진행된 김해시장 선거를 위해 새누리 출신 인재를 영입, 김해시를 더민주 소속으로 만들었다. 더민주가 예상을 깨고 낙동강벨트에서 대승을 거둔 데는 민 의원의 파수꾼 역할이 주요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키워드4]마음은 언제나 국방위
민 의원은 19대 국회 입성 후 국토교통위원회 위원으로 4년간 활동했다. 경력을 감안하면 국방위원회가 더 어울리지만 총선 공약으로 내걸었던 지역 현안들을 해결을 위해 스스로 국토위를 선택했다. 같은 이유로 20대에서도 국방위가 아닌 국토위를 희망, 간사까지 맡게 됐다.

하지만 인생의 절반을 보낸 군은 그에게 뗄래야 뗄 수 없는 존재다. 국토위에서 활동하면서도 국회 군혁신특별위원회 등에 참여해 국방·안보분야까지 알뜰히 챙겼다. 실제 민 의원이 19대에서 대표발의한 첫 법안도 ‘군인사법 개정안’이었다. 이 법안을 비롯해 군사법원법등 3개의 법안과 1개의 결의안을 대표발의했고 이중 3개를(대안반영 및 수정가결)을 통과시켰다.
민 의원은 20대에서도 국방·안보분야 제도개선에 적극 나설 방침이다. 특히 병영생활 개선 등 군 인권을 위한 입법활동에 관심이 높다. 그는 “군인은 제복을 입은 시민들로 국민의 기본권을 누릴 권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민 의원은 야당의 안보불안 이미지를 바꾸는데도 앞장섰다. 2014년 당 지도부가 새해 첫 행선지로 연평도를 방문하면서 안보정당 이미지를 부각시킨 것이 대표적이다. 당시 당 지도부가 짙은 안개로 헬기이용이 불가능해지자 공기부양정을 띄워 연평도 상륙작전을 감행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키워드5]찬란한 ‘김해가야’ 꿈꾸는 능참봉

최근 민 의원에겐 ‘능참봉’이란 별칭이 붙었다. 20대 총선에서 그의 지역구인 김해갑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소가 있는 봉하마을이 편입돼서다. 자연스레 노 전 대통령의 사저와 묘소를 관리하는 역할을 맡게 됐다.

총선 승리 후 경남지역 당선인들과 함께 노 전 대통령의 묘소로 달려간 그는 방명록에 이렇게 적었다. '대통령님의 뜻을 받들어 사람이 희망인 도시, 사람 사는 김해를 만들고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대한민국을 만들어 가겠습니다.'

민 의원은 “사람과 정의를 강조한 노 전 대통령의 가치는 존중돼야 하고 꼭 이루어야 할가치”라고 했다. 군 장성 출신이자 중도우파에 가까운 그가 더민주를 선택한 이유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다만 그는 당내 주류인 친노와는 거리를 두는 모습이다.

‘사람이 희망인 도시, 사람 사는 김해’를 만들겠다고 약속한 민 의원이 20대 국회에서 반드시 처리하고 싶은 법안은 지난 16일 그를 비롯해 여야3당 의원들이 공동 발의한 ‘가야문화권 개발법’이다. 19대에 이어 20대에 다시 들고 나온 이 법안은 김해를 중심으로 융성했던 가야문화를 체계적으로 정비해 임나일본부설등 왜곡된 역사를 바로 세우고 관광문화로 육성하는 게 골자다. 민 의원은 “가야문화는 실존했던 우리의 소중한 역사”라며 “신라·백제문화처럼 가야문화도 정비해 후세가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문화 콘텐츠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야문화권 개발과 함께 △김해경전철 MRG(최수운영수입보장) 문제 △김해신공항 소음피해 방지 △안동공단 재개발 △구도심 리모델링등 지역현안 해결에도 분주하다. 특히 막대한 예산을 갉아먹으면서 김해시 발전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김해경전철 MRG 문제는 그에게 가장 큰 숙제다. 민 의원은 “정부당국이 MRG 문제 해결에 나설 수 있도록 19대 때 도시철도법을 개정했다”며 “사업재구조화나 지자체 직접 운영 등 여러 방안을 검토해 꼭 해결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의 사람들]정종섭·주호영
민 의원은 중도성향 정치인답게 여야를 막론하고 두루두루 친하다. 그 중 새누리 정종섭, 주호영 의원(사시 24회)은 군법무관 임관(14기) 동기로 ‘짬밥’을 같이 먹은 막역한 사이다. 정 의원은 동기생이자 ‘스승’이기도 하다. 민 의원이 서울대 법대 최고지도자과정(ALP) 수강 당시 정 의원이 주임교수였다. 주 의원과는 19대에서 여야 의원 151명으로 구성된 ‘개헌추진 국회의원 모임’에서 같이 활동하기도 했다. 두 사람 모두 ‘개헌파’로 최근 정세균 국회의장의 개헌 필요성 제기에 적극 찬성한다. 민 의원은 “87년 헌법은 임시방편적이고 과도기적인 체제였다”며 “미래지향적 국가로 나아가기 위해선 권력집중형 단임제를 버려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대표법안]무늬만 회사차 방지법
2013년 3월 대표발의한 소득세법 개정안은 업무용 승용자동차의 유지비용에 대한 필요경비 산입기준을 마련하고, 연간 800만원 범위에서 감가상각비를 필요경비에 산입하도록 명시하는 이른바 ‘무늬만 회사차 방지법’이다. 2014년 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함에 따라 회사 명의로 고가의 자동차를 리스해 업무 이외의 용도로 사용하고 이를 필요경비로 처리하는 탈세행위를 제도적으로 막게 됐다. 민 의원은 이 법안으로 머니투데이 더300(the300)의 ‘제3회 대한민국 최우수법률상을 수상했다.

[좌우명]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답설야중거 불수호란행)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어지러이 가지 말라'는 뜻으로 한발 한발 신중한 정치를 하겠다는 민 의원의 다짐이다. 백범 김구의 애송시로 알려진 야설(野雪)의 한 구절이다. 이 시는 임진왜란 당시 승병장으로 활약한 서산대사가 지은 것으로 알려져 왔지만 최근에는 조선후기 문신인 이양연(李亮淵)의 시라는 설도 제기되고 있다.

[요주의]“어~너무 오른쪽인데”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이 오히려 약점으로 꼽힌다. 원내부대표를 지냈음에도 당내에서 존재감이 부족하다는 평이 나오는 이유다. 아직까지 정치적 자양분이 될 스토리가 많지 않다는 점도 단점이다. 중도우파에 가까운 정치성향으로 소신 행보가 '일탈'로 오해를 사기도 한다.

[프로필]
△1961년 경남 김해출생 △김해고·부산대 법학과·부산대 대학원 △제6기 군법무관 △고등군사법원 군판사 △육군본부 법무감 △제4대 고등군사법원 법원장 △혁신과통합 추진위원 △19대 국회의원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부대표 △20대 국회의원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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