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일의 정치 깊이보기]'상임위 청문회법'이 재의에 부쳐진다면

[the300]

이상일 아젠다센터 대표 l 2016.06.01 05:59

편집자주 the300이 여론에 나타난 민심 흐름을 분석하고, 이를 통해 우리 정치 현상들을 한단계 더 깊이 들여다보는 '이상일의 정치 깊이보기'를 연재합니다. 필자인 이상일 아젠다센터 대표는 여론조사 분석 전문가로 TNS코리아 이사, 청와대 행정관 등을 지냈습니다.


20대 국회가 5.30일 개원했다. ‘協治 국회’ 출발을 다짐하던 여야였지만, 19대 국회 임기종료 직전 박근혜 대통령이 던진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이 20대 국회의 출발선과 맞물려 순탄한 시작은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다. 19대 국회 임기종료 직전 단행된 국회법 재의요구는 법리적 논쟁을 유발하며 19대 국회와 20대 국회를 잇는 징검다리가 되었다.

19대 국회의 안건을 20대 국회로 넘길 수 없으므로 법률안이 자동 폐기된다는 여당의 주장과, 17대~18대 국회로 넘어올 때 17대 통과된 법안을 18대에서 공포한 전례가 있으므로 재의 표결도 20대에서 가능하다는 야당의 주장이 맞선다. 명확한 법률 규정이 없어 결국 20대 국회가 재의 표결을 하느냐 마느냐 문제를 결론내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법리적 판단은 별개로 놓고, ‘20대 국회가 국회법 개정안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면’ 개원 시점부터 상당한 정치적 갈등이 전개될 수밖에 없다. 표결에 붙여질 경우 결론은 국회법이 다시 통과되거나 부결되는 둘 중 하나뿐이다. 그러나 어떤 결론에 이르든 새누리당은 국회법 거부권 정국의 수렁에 깊이 파묻히는 운명에 처할 것 같다. 어떤 이슈와 파장들이 내재되어 있을까.




개정안이 20대 국회로 넘어가더라도 현재 의석분포상 국회법 개정안의 운명은 폐기될 가능성이 높다. 국회법이 폐기되는 경우를 세분화 해 보면,
① 새누리당 20대 소속 의원 전원 반대표에 무소속 여당 탈당파도 동조하는 경우,
② 새누리당 의원들만 반대하고 무소속 탈당파는 국회법 찬성표로 갈리는 경우,
③ 새누리당 이탈표가 상당했으나 반대 투표가 100표를 넘어 가까스로 국회법 개정안을 무력화시키는 경우로 나뉠 수 있다.

국회법이 효력을 상실하더라도 위 세 가지 경우에 따라 다시 미세한 차이들이 나타나게 된다. 첫 번째 경우라면 당청관계가 확고해지고 무소속 의원들의 복당 문제도 청신호가 켜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총선 후 변화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고 결국 청와대에 종속된 관계로 20대 국회를 시작하게 된다는 의미가 된다. 당은 결집에 성공했지만 야당과 여론의 비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유승민 등 탈당파들도 새로운 가치나 비전을 내세우는 행보에 제동이 걸릴 것이다.

두 번째 경우도 당청관계 등 큰 틀에서는 별 차이 없는 결과를 내겠지만, ‘유승민’으로 대표되는 무소속 새누리 탈당파들의 복당 문제가 꼬이게 될 것이다. 친박계가 당권을 장악하는 한 복당은 불가능한 기류가 유지될 것이다.

당장의 문제는 아니더라도 당 바깥에 보수의 혁신을 주장한 TK 그룹이 존재하는 구도는 대선으로 가는 국면에서 새누리당 내부에 원심력을 확대시키는 불씨가 될 수 있다. ‘친박당’으로 원점회귀한 새누리당에 대한 실망감이 확산되거나 당 지지율이 계속 하락한다면 정의화 전 국회의장이 추진하는 장외 세력과 탈당파가 결합하는 등 여권 분열을 촉발하는 촉매제가 될 가능성도 상당하다.

세 번째 경우는 국회법을 막는 데는 성공하지만 표결 직후부터 여당 내부에 다시 갈등을 촉발시키게 된다. 이십여 표 가까운 당내 이탈표가 확인될 경우 새누리당 내부는 당청관계 및 당의 진로를 놓고 내홍에 휩싸일 수밖에 없고 주류 친박계의 비주류 견제는 더 심해질 것이다. 전당대회에서 결국 친박계가 승리를 거둘 경우 탈당파 등장 등 보수세력 분화의 속도는 더 빨라질 가능성이 높다.

국회법 개정안이 다시 국회를 통과한다면

국회법이 다시 통과된다는 뜻은 새누리당 소속 의원 및 여당 탈당파 당선자 중 30여명 이상이 대통령의 뜻과 반대쪽에 표를 던졌다는 뜻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2차 거부권 정국에서 치명상을 입게 되고, 새누리당은 당청관계가 심각하게 손상된 상황에서 극심한 당권 투쟁 기류로 접어들 것이다.

이 경우에는 전당대회 결과에 따라 새누리당이 반분되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친박이 당권을 잡는다면 비박계의 대거 이탈이 현실화 될 것이고, 반대의 경우라면 친박계가 박근혜 대통령과 새로운 정치판을 모색하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새누리당의 딜레마

국회법 개정안이 재의 표결로 갈 경우, 야권에서 이탈표가 나올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국회법이 살아나느냐 폐기되느냐는 전적으로 새누리당 의원들의 선택에 달린 문제다. 무소속 탈당파의 선택도 보조적인 것일 뿐 법안의 운명은 새누리당 의원들이 결정하게 되고, 그 결정은 당의 운명과도 직결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어떤 결과를 도출해 내든 새누리당으로서는 국회법 정국에서 플러스가 되는 상황을 찾아볼 수 없다는 데 있다. 국회법을 대통령의 뜻에 따라 폐기시킨다? 당이 청와대에 종속돼 있다는 저간의 평가를 재확인시키고, 비대위원장 체제에서 논의한다는 혁신안은 아무 의미를 갖지 못하게 된다. 당청관계 변화를 기치로 내 건 신임 원내지도부도 기대감-존재감 없는 원내 실무처리 그룹으로 전락할 것이다.

조금 더 확장해서 본다면 현재 친박계가 오매불망 기대감을 표출하고 있는 반기문 대망론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가능성이 상당하다. 친박당이라는 굴레에 갇혀 국민으로부터 멀어지는 여당호에 과연 반기문 총장이 친박계의 지지를 받는 대권후보로 레이스에 뛰어들까. 예단하긴 어렵지만, 확률은 확실히 낮아질 것이다.

반대로 국회법 재의 요구가 무산되고 결국 법안이 통과된다? 법안이 다시 한 번 국회를 통과하는 상황은 새누리당 내부의 반란표가 예상을 넘는 수준으로 발생하는 경우 뿐이다. 대통령의 리더십은 손상되고, 친박계도 상당한 내상을 입게 된다. 당내 분란은 즉각적이고 현실적 내전 상황으로 치닫게 될 것이다.

쇄신 노력은커녕 위기감을 느낀 친박계와 세력화 가능성을 엿본 비박계의 전면전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즉각 계파간 당권을 향한 갈등형 전당대회 구도로 돌입할 것이고 어느 쪽이 승리하든 진 쪽은 결국 굴복하거나 이탈하거나의 양자택일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다.

가뜩이나 정의화, 손학규 등 장외 세력화를 준비하는 쪽과 유승민을 비롯한 외부 구심점이 그대로 유지된 상황에서 새누리당의 분열은 다시 정계개편을 촉발시키는 상황을 만들어 낼 가능성이 높다.

새누리당은 지난 한 주, 반기문 대망론에 들떠 쇄신도 국회법 문제도 별로 관심이 없어 보였다. 반기문 총장은 국내 일정을 마치고 돌아갔다. 남은 임기 6개월간 국내 정치권과 여론도 반총장에 대한 관심과 평가를 계속하며 기대와 견제를 하겠지만, 대권 도전 의지를 분명히 남기고 간 반 총장도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인가를 놓고 국내 정치권을 유심히 살펴볼 것이다.

새누리당이 지금 맞닥뜨린 국회법 정국은 15년 1차 거부권 당시와는 수준이 다른 심대한 파장을 낳을 수 있다. 어떤 선택을 하든 새누리당 앞에 놓인 길은 가시밭길밖엔 보이지 않는다. 새누리당은 어떻게 국회법 거부권 정국을 뚫고 ‘당이 사는 길’을 찾아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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