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대선 운명 쥔 이정현 새누리당 신임 대표는
전라남도 곡성 ‘촌놈’이 1990년대 초반 여당인 민주자유당(현 새누리당)에 발을 들일 때 직책은 당 사무처 말단 ‘간사병(丙)’이었다. 그는 20여년 세월 동안 ‘영남당’ 내 호남 출신으로 무시당하면서도 한 발짝씩 전진해 결국 마지막 한 자리 ‘당 대표’까지 올랐다. 그가 오른 계단은 모두 ‘17계단’이었다.
스스로를 ‘흙수저’ ‘무(無)수저’이며 ‘새누리당 소외계층’이라고 칭해온 이정현 의원(58·3선)의 보수정당 정복기다.
이 신임 대표는 1958년 전남 곡성에서 태어났다. 광주 살레시오고와 동국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4학년 때 12대 국회 민정당 구용상 의원 비서로 정치권에 입문한다. 이 대표는 자서전에 “(구 의원) 선거 홍보물을 보고 정치 좀 똑바로 하라고 (구 의원에게) 편지를 쓴 것이 인연이 됐다”고 회고했다.
“호남 지역에서 한나라당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목표를 세운 이 대표는 23년 동안 호남에서 각종 선거에 출마했다. 당에선 정세분석팀장, 대선 전략기획단장, 상근부대변인 등을 거쳤다. 이후 비례대표·지역구 의원, 최고위원 등도 맡았다.
이 대표는 ‘박근혜의 복심(腹心)’으로 통했다. 두 사람의 인연은 박 대통령이 2004년 이 대표를 수석부대변인으로 발탁하면서 시작됐다. 이 대표는 2008년 비례대표로 18대 국회에 입성했다. 당시 박 대통령이 친이계의 공천 학살에도 직접 그의 비례대표 공천을 챙겼을 정도로 각별하다. 2012년 대선에서 박 대통령 캠프 공보단장, 청와대 정무수석·홍보수석을 지내며 박 대통령의 ‘정치적 경호실장’을 자처했다.
이번 전당대회 경선 과정에서도 “마지막까지 박근혜 정권을 지켜줄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최후 친박’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전당대회 정견발표에서도 “모두가 근본 없는 놈이라고 뒤에서 손가락질할 때 저 같은 사람을 발탁해 준 박 대통령께 저는 감사함을 갖고 있다”고 했다.
이 대표는 돌연 청와대에서 나와 2014년 7·30 재·보궐선거와 지난 4·13 총선 때 전남 순천에서 당선돼 ‘호남 3선’ 의원이 됐다. 하지만 청와대 홍보수석 당시 KBS 세월호 보도 개입 논란 녹취록이 공개되기도 했다. 이 논란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전대 막판에는 ‘청와대의 이정현 지원설’이 불거졌다.
이 대표는 수락 연설에서 “이 순간부터 친박·비박 등 계파가 없음을 선언한다”고 밝혔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 박 대통령과 청와대에 ‘제 목소리’를 내는 여당 대표 역할을 할지도 미지수다. 다음은 대표 선출 후 기자들과의 일문일답.
- 친박 ‘오더 투표’ 지적이 있다.
“그런 식의 접근 자체가 또 앞으로 계파·파벌 문제로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보다는 새누리당 행태와 관행을 바꾸는 데 매달리겠다.”
- 수락 연설에서 “정부에 할 말 하겠다”고 했다.
“당·청관계는 지금까지와는 확연히 다를 것이다. 청와대와 정부가 민심과 괴리나 차이가 있으면 횟수에 관계없이 누구보다 신속하고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이다.”
- 첫 당직 인사의 기준과 원칙은.
“당원이 당의 주인이 되도록 하고, 원외 인사들의 참여율을 높이겠다. 계파·파벌 나눠먹기 인사는 제 원칙과 철학에 안 맞는다.”
- 당 대표 취임 후 최우선 과제는 무엇인가.
“‘국회 70년 총정리 국민위원회’를 구성, 국회 개혁에 착수하겠다. 상시공천도 바로 검토하겠다. 대선 후보 영입도 개방해 치열하게 경쟁할 수 있는 시스템 준비 작업도 시작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