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절벽 20년, 일본의 교훈

“고용 불안하면 아이 낳기 어려워…양질 일자리 늘려야”

박병률 기자

안주영 일본 도코하대 교수

안주영 일본 도코하대 교수(사진)는 19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일본은 1990년대부터 인구감소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정책을 펴왔지만 큰 효과가 없었다”며 “복지를 미루더라도 경제활성화를 통해 고용을 늘리면 저출산이 저절로 해결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환상”이라고 말했다. 안 교수는 또 “일본은 버블 붕괴가 같이 오다보니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투자를 늘렸다”며 “하지만 인구가 감소되면 경기침체가 심해져 경제활성화가 어려워진다는 것을 간과했다”고 말했다.

[인구절벽 20년, 일본의 교훈]“고용 불안하면 아이 낳기 어려워…양질 일자리 늘려야”

비교정치학을 전공한 안 교수는 고용과 복지분야 전문가로 이 분야 비정부기구(NGO)인 복지국가소사이어티에서 정책자문을 하고 있다. 안 교수는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선 고용과 복지가 같이 강화돼야 한다”며 “일본은 저복지 고용중심 정책을 폈는데, 비정규직만 늘어나면서 저출산 탈출에 실패했다”고 말했다.

종신고용 시절 일본은 비정규직을 정규직 보조 역할로 간주했다. 남성 가장은 정규직, 주부나 학생은 용돈벌이를 위해 비정규직 아르바이트를 했다. 하지만 남성 비정규직이 늘어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비정규직을 ‘보조직업’으로 간주해온 만큼 정규직과의 임금격차가 컸다. 그는 “일본의 비정규직 비중이 2000년 이후 2배 이상 늘어났다”며 “복지가 부족한 대신 고용으로 사회안전망을 구축한 사회에서 고용이 불안해지니 아이를 더 낳을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일본은 1990년대 중반부터 뒤늦게 보육 지원을 강화했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비정규직 증가로 평균소득이 줄어들자 아이 낳기를 더 꺼렸기 때문이다. 2014년 일본 근로자 1인당 연봉은 361만4000엔으로 1990년(376만1000엔)보다 적다. 안 교수는 “아무리 무상보육을 해도 부모 소득이 적고, 부모의 직장이 5년 뒤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아이를 낳기 어렵다”고 말했다. 최근 일본의 취업률 상승이 출산율을 끌어올릴 가능성에 대해서도 안 교수는 낮게 봤다. 그는 “취업률이 조금 올라가더라도 양질의 일자리가 아니면 출산·육아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경우도 지난해 세종시의 합계출산율이 1.9명으로 타 시·도에 비해 월등히 높다. 세종시민은 대부분 중앙부처 공무원들과 국책연구기관 연구원 등 양질의 일자리를 가지고 있다.

문제는 일본보다 한국의 상황이 더 나쁘다는 점이다. 그는 “일본보다 복지 수준이 더 낮은 한국에서는 아이를 더 낳으라고 하기가 쉽지 않다”며 “한국의 합계출산율이 일본보다 더 낮아진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부모들이 안정적으로 아이를 키울 수 있는 근본적인 여건 마련을 정부가 고민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돈은 많이 들고 효과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는 일자리를 늘리는 데 도움이 되지만 임금 하락과 고용불안이 불가피해 사회보장 없이 밀어붙이면 부작용이 더 많을 것”이라며 “아이 키우기는 20년 장기 프로젝트인 만큼 부모들의 미래 불안감을 줄여주는 정책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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