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정책 새판 짜야 한다

(4) 수출 의존형 성장 ‘휘청’…대기업 낙수효과 집착, 이젠 벗어나자

이주영 기자

내수·서비스 중심 전환 필요

현대자동차의 올 1분기 영업이익은 1조3424억원으로 지난해 4분기보다 11.4%, 1년 전에 비해 15.5% 감소했다. 5년여 만에 최저치다. 신흥시장 경기 침체에 따른 판매 감소가 주요인이다. 1분기 국내 판매량은 신차 출시와 개별소비세 인하 등으로 지난해 1분기보다 3.7% 많았다. 하지만 수출 물량은 신흥국 및 중동 시장 경기 침체로 7.9% 줄어들었다. 수출은 그간 한국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해왔다. 조선·철강 등 중공업과 반도체·디스플레이·자동차 등 제조업에 기반을 둔 대기업들의 수출로 우리 경제는 성장세를 유지했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교역량이 크게 줄면서 수출은 더 이상 경제 성장에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수출 부진이 성장률을 깎아먹는 상황이 됐다. 대기업 위주의 수출 주도 성장 방식에서 탈피하지 않고는 미래가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 수출 주도 성장 경로가 흔들리다

글로벌 금융위기 기간을 제외하면 2011년까지 두 자릿수 증가세가 당연시되던 수출은 2012년 이후 지지부진해지며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달 수출액(통관 기준)은 410억달러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11.2% 줄었다. 수출액은 지난해 1월부터 계속 감소하며 통계 집계 이후 최장기간인 16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석유제품과 석유화학은 저유가 여파로, 반도체와 평판디스플레이 등은 공급 과잉에 따른 단가 하락이 지속되면서 감소세가 이어졌다. 자동차와 차 부품, 가전, 섬유류 등의 수출도 줄었다.

한국은행은 최근 내놓은 ‘통화 신용 정책 보고서’에서 “수출은 장기·구조적 요인으로 2012년 이후 증가세가 크게 둔화된 데다 세계경기 둔화, 유가 하락 및 글로벌 공급 과잉 등에 따른 수출단가 하락세 지속 등 단기·경기적 요인이 가세하면서 빠른 시일 내에 회복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한국은행의 분석을 보면 올 1분기 수출의 성장기여도는 마이너스 0.8%였다. 수출이 경제성장률을 0.8%포인트 낮췄다는 의미다.

수출 감소는 세계교역 둔화라는 구조적 요인이 크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세계교역(물량 기준) 증가율은 연 9%에 달했으나 지금은 3% 안팎에 그친다. 한국 수출의 4분의 1 이상을 차지하는 중국 시장은 고속성장 시대를 마감하고 연 6%대의 중속성장에 접어들었고, 기존 교역·투자 중심에서 내수 중심으로 성장 전략을 바꾸면서 수입을 줄이고 있다.

수출 대기업의 가격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정부가 원화가치를 인위적으로 떨어뜨리는 고환율 정책을 쓰기도 했지만 이제는 이 또한 힘들어졌다. 최근 미국 재무부가 한국을 환율 조작과 관련한 ‘관찰 대상국’으로 지정하면서 이젠 원화가치가 급등하더라도 외환당국이 시장개입하기가 어려워진 상황이다. 아울러 대기업 위주의 수출 주도 성장책은 금융·인력 등 모든 자원 배분이 대기업에 편중되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격차를 벌리는 문제를 낳고 있다. 상대적으로 취약한 내수 기반은 세계경제 불안 등 대외 변수에 크게 휘둘리는 요인이 되고 있다.

■ 내수·서비스 중심으로 전환 필요

수출 환경이 악화되면서 내수 중심으로 성장 전략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바이오·보건의료·관광·유통 등 내수 육성을 위한 서비스업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수출중심국=고성장, 내수중심국=저성장’이라는 공식도 금융위기 이후 깨졌다. 유엔에 따르면 1970년대부터 2007년까지는 수출중심국의 경제성장률이 내수중심국보다 지속적으로 높았지만 2008~2012년 수출중심국의 평균 성장률은 2.6%로 내수중심국(3.4%)보다 낮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해 12월 한국 정부에 전달한 ‘더 나은 한국을 위한 정책 보고서’에서 대기업 위주의 수출 정책과 이를 통한 낙수효과가 이제 한계에 도달했다고 지적하면서, 대기업이 주도하는 수출이 내수 확대와 고용 증대에 미치는 효과가 예전만 못하다고 분석했다. OECD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중소기업 및 스타트업(Start-up·창업) 기업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고 서비스산업을 선진화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박승 전 한은 총재도 지난달 28일 한국경제학회가 개최한 심포지엄에서 투자와 수출의 한계를 극복하는 전략적 부문으로 소비를 꼽고 제조업의 빈자리를 서비스업으로 채울 것을 제안했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부족한 내수기반을 확대함으로써 생산과 고용이 늘어나고 다시 소득이 늘어나는 선순환을 만들어낸다면 내수가 주도하는 경제성장이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시리즈 끝>


Today`s HOT
UCLA 캠퍼스 쓰레기 치우는 인부들 호주 시드니 대학교 이-팔 맞불 시위 갱단 무법천지 아이티, 집 떠나는 주민들 폭우로 주민 대피령 내려진 텍사스주
불타는 해리포터 성 해리슨 튤립 축제
체감 50도, 필리핀 덮친 폭염 올림픽 앞둔 프랑스 노동절 시위
인도 카사라, 마른땅 위 우물 마드리드에서 열린 국제 노동자의 날 집회 경찰과 충돌한 이스탄불 노동절 집회 시위대 케냐 유명 사파리 관광지 폭우로 침수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