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아세안 향한 탈중국 프로젝트 감소와 한-아세안 협력

2023-06-02 10:39:28 게재

미·중·EU의 '자국 중심 공급망 재편 전략' … 한-아세안 협력 강화로 새로운 기회 발굴해야

곽성일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경제안보전략실장

전통적으로 중국은 생산기지로, 미국은 소비시장으로 기능했다. 반면에 아세안 지역은 중국에서 원자재와 중간재를 수입 및 가공하여 미국으로 수출하는 교역구조를 지니고 있었다. 이런 까닭에 미국은 아세안 지역을 중국의 우회 수출 기지로 인식했고 통상 압력을 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아세안 지역의 지정학적 위치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요성을 인정받으면서 미·중 패권 경쟁의 가장 큰 수혜 지역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최근 아세안 지역으로의 공급망 재편 추세에 변화가 목격되고 있다. 객관적 자료를 토대로 미·중 패권 경쟁이 본격화된 2017년 이후 탈중국 프로젝트가 우리가 기대하고 있듯이 아세안 지역으로 집중적으로 이전하고 있는지를 다시 조명해 보았다.

◆중국, 수출주도에서 내수주도 성장전략으로 전환 = 최근 미국과 중국의 대립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자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이다. 중국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 주요국이 수출 통제와 투자심사 강화 등으로 중국의 혁신역량을 견제하려고 하자 '제14차 5개년 규획'과 '2035 중장기 목표'를 통해 첨단기술의 국산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중국을 신뢰할 수 없는 경쟁자로 인식한 서구사회도 첨단기술 및 전략 산업 분야에서 정부 주도의 산업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의 반도체 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과 인플레이션 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을 대표적 예로 들 수 있다.

또한 EU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나 핵심 원자재법(CRMA), 탄소중립 산업법(Net-Zero Industry Act)을 도입하여 역내 청정에너지 관련 핵심 광물 원자재 공급망을 확보하고자 한다. 미·중 패권경쟁으로 인한 진영화에서 이제는 EU까지 가세한 3극 체제가 형성된 것이다.

한편 미국이 주도하는 인도태평양경제프라엠워크(IPEF)도 공정하고 탄력적인 무역, 공급망 회복력, 인프라 및 청정에너지, 조세 및 부패 방지 등 4대 필러를 중심으로 협상을 진행 중이다. 현재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를 제외한 아세안 7개 회원국이 IPEF 협상에 참여하고 있다. 이들 아세안 7개국이 IPEF 협상에 참여한 이유는 미·중 패권 경쟁이 자신들에 유리하지만은 않다는 점을 인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다행히 현재 대부분 국가가 공급망 회복력 필러에 참여하고 있어 협상 시한으로 상정한 2023년 11월 APEC 정상회의 전에 공급망 관련 합의가 도출될 것으로 기대된다.


중국도 자국 중심의 공급망을 확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01년 WTO에 143번째로 가입한 이후 세계의 공장으로 기능했던 중국은 2020년 전세계 중간재의 16.1%(홍콩 포함 20%)를 수입할 만큼 글로벌 생산 분업체계에서 독보적 입지를 나타냈다.

또한 중국은 '혁신주도 성장(산업 육성)정책'에서 '경제안보형 산업정책'으로 전환했고, 자국 내에 자기 완결적 산업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이를 통해 중국 수출 산업의 중간재 자급률은 빠르게 상승했다.

2007년 50%대에 머물던 가공무역 비중은 2020년에는 30% 이하로 낮아졌고, 수출에 자국 부가가치를 활용하는 비중은 2007년 19%에서 2020년 85%로 급성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변화는 중국의 중간재 자급률 상승과 함께 중국이 수출주도형 성장전략에서 내수 주도형 성장전략으로 전환했음을 의미한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중국의 수출 증가율이 내수 증가율보다 높았지만, 2010년대 후반 이후부터는 내수 증가율이 수출 증가율보다 높아지면서 GDP 변화가 자국 수요의 변화와 동행하는 모습을 보인다.

◆아세안의 중국 의존도 증가와 대중 무역적자 증가 = 중국의 내수 중심의 성장전략 변화는 장기적으로 아세안 지역에 고민으로 다가올 것이다. 왜냐하면 아세안의 지역별 수출 비중을 보면 중국이 2020년 총수출 가운데 15.7%를 차지해 가장 높았고, 그 뒤를 미국이 15.2%, EU가 9.4%, 아세안 역내 수출이 21.3%를 차지했다. 수입도 아세안은 총수입 가운데 23.5%를 중국에서 수입했고, EU 7.7%, 한국 7,7%, 일본 7.8%, 아세안 역내가 21.2%를 차지했다.

지난 5월 11일 인도네시아 동부 텡가라주 라부안 바조에서 열린 제42차 아세안 정상회의에 앞서 사진을 찍기 위해 손을 잡고 있다. AP=연합뉴스


즉 아세안은 수출과 수입 모두에서 중국에 대해 높은 경제적 의존도를 나타내고 있다. 또한 아세안 회원국들은 중국에 2011년 1400억 달러를 수출했지만 2020년에는 2180억 달러를 수출하여 지난 10년 사이 780억 달러의 수출 증가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에 중국 경제는 7조 5천억 달러에서 14조 7천억 달러로 약 7조 2천억 달러가 성장한 점을 고려할 때, 중국 경제 100달러 성장은 단지 아세안으로부터 1달러의 수출 증가를 가져온 것으로 이해된다.

반면에, 2011년에 아세안 회원국들은 중국으로부터 1550억 달러를 수입했지만, 2020년에는 3000억 달러를 수입하여 지난 10년 동안 1450억 달러가 증가했다.

같은 기간에 아세안 회원국들의 GDP 합계가 7000억 달러 증가한 점을 고려할 때, 아세안 GDP 100달러 증가는 중국으로부터의 수입 20달러 증가를 가져온 것으로 이해된다. 아세안의 중국으로부터의 한계 수입성향이 중국의 아세안으로부터의 한계수입성향보다 20배가 크다.

이러한 비대칭은 중국에 대한 아세안의 무역적자 확대를 초래했다.

◆아세안 향한 탈중국 프로젝트의 감소 = 중국의 성장전략 전환과 함께 미·중 패권 경쟁은 탈 중국 프로젝트의 증가를 가져왔다는 관찰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탈중국 프로젝트가 아세안 지역을 중심으로 이전했는지에 관한 객관적 평가가 필요하다.

2017년 미·중 패권경쟁이 촉발된 이후인 2018년 탈중국 프로젝트 건수가 급증했지만 2019년 그 수는 2016년 수준으로 낮아졌으며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인 2020년부터 오히려 예년보다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탈중국 프로젝트 건수의 변화를 고려할 때 증가된 탈중국 프로젝트가 아세안 지역에 혜택을 주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건수로만 보면 탈중국 프로젝트 가운데 미국을 향한 비중이 최근에는 오히려 아세안을 향한 건수를 넘어서고 있다.

또한 투자액을 고려할 때도 유사한 현상을 목격할 수 있다. 2020년 이후 탈중국 프로젝트의 아세안을 향한 투자액은 급격히 줄어드는 반면에, 미국을 향한 투자액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물론 비중 면에서는 아세안향 투자가 여전히 미국향 투자보다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2022년이 되면 그 추세도 역전된다.

2022년 탈중국 프로젝트 총액 중 아세안으로의 투자 비중은 13.5%(54억 달러)로 급격히 낮아졌지만, 미국으로의 투자는 2021년보다 2.6배 증가하여 70억 달러를 기록했다.

탈중국 프로젝트의 총규모가 2017년에 오히려 2016년보다 줄었다는 점과 2018년 비록 증가했지만 2019년 다시 감소하기 시작해 2022년까지 그 추세가 이어지고 있고, 탈중국 프로젝트 총규모 대비 아세안향의 투자 규모가 2020년부터 하락했지만, 미국향 투자는 증가했다는 점에서 미·중 패권 경쟁이 아세안에 도움이 되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아세안은 경제협력의 다각화와 함께 아세안 역내 교역 확대가 필요하다. 아세안 역내에 신뢰할 수 있는 공급망을 구축한다면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출 수 있고, 한국은 아세안과 협력을 통해 역내 공급망 구축에서 새로운 기회를 발굴할 수 있다. 한국도 중국에 대해 높은 의존도를 나타내고 있으므로 아세안 역내 공급망 구축을 다변화 계기로 활용할 수 있다. 또한 아세안을 통해 중국 시장을 공략하는 것도 새로운 시장 개척 방법이 될 수 있다.

한편 선진국 주도의 공급망 재편에 아세안이 대응하기 위해서는 아세안도 변화가 필요하다.

한국은 이러한 변화를 아세안과 함께할 수 있는 경험을 보유하고 있다. 투명성, 민주주의, 인권 등 비경제적 요소와 함께 지식재산권을 포함한 첨단기술 보호 제도 관련 역량 강화에 아세안과 한국이 함께 협력할 수 있다.

특히 2024년 한-아세안 대화 관계 수립 35주년을 기념하여 양자 관계를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로 격상할 때 비경제적 부문의 협력은 더욱 중요한 가치를 지닐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