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균의 휴먼정치]‘노무현 도그마’ 깨야 문재인이 산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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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균 논설위원
박제균 논설위원
얼핏 복잡해 보이는 대통령 선거의 방정식도 들여다보면 의외로 단순한 데가 있다. 내 나름대로 정리해본 ‘대선 공식’ 하나를 소개하자면 ‘이번 대선의 강자는 거의 이전 대선 2위다’.

민주화 이후를 들여다보면 1992년 대선의 김영삼, 97년의 김대중, 2002년의 이회창은 모두 이전 대선에서 2위였다. 2012년의 박근혜는 이전 대선의 2위나 마찬가지다. 이명박 대통령이 승리한 2007년 대선 레이스는 박근혜 후보가 2위를 한 한나라당 경선에서 사실상 끝났다. 유일한 예외가 2002년 대선에서 승리한 노무현 대통령 정도다. 당시에도 ‘노무현이 이긴 선거가 아니라 이회창이 진 선거’라는 말이 돌았다.

이전 대선 2위가 강자

대선에 나가 준우승을 한다는 건 그만큼 엄청난 정치적 자산이다. 문재인은 지난 대선에서 박 대통령(51.6%)과 호각의 득표율(48.0%)을 얻었다. 그럼에도 그가 이번 대선의 강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 드물다. 답은 간단하다. 자기 실력으로 치른 선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자신을 ‘문재인의 친구’라고 소개하기도 했던 생전의 노무현 대통령은 그를 향해 “저 사람은 정치할 사람이 아예 아니야. 전혀 (정치와) 안 맞아”라고 평가하곤 했다. 그런 문재인을 ‘폐족(廢族·벼슬을 할 수 없게 된 일족)’이던 친노가 노무현의 비운(悲運)으로 기사회생하자 ‘고용 사장’으로 내세워 치른 게 지난 대선이었다.

하지만 요즘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달라졌다고 한다. 벌써부터 ‘이번 총선의 진정한 승자는 문재인’이란 얘기가 나온다. 김종인이란 칼을 빌려 이해찬류의 ‘올드 친노’를 쳐내고 친문(친문재인) 세력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친노 브레인인 ‘3철(이호철, 전해철, 양정철)에 휘둘린다’는 얘기도 쏙 들어갔다. 무엇보다 좋게 말하면 권력의지, 나쁘게 말하면 대권욕이 강하게 느껴진다. 김종인 더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지난 대선에서 받은 1460만 표의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일갈했지만 아무나 그런 성취를 경험할 수는 없다. 대선 당시 운집한 군중의 엄청난 연호가 ‘정치할 수 없는 사람’ 문재인을 변하게 한 기폭제라고 나는 본다.

문 전 대표는 지난달 30일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때문에 야당 단일화에 제동이 걸리고 있다”며 “도대체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 묻고 싶다”고 압박했다. 지난 대선 직전 자신과 ‘이념적 차이를 느꼈다’는 안철수의 자택을 찾아가 문전박대를 당했을 때와는 180도 처지가 바뀌었다. 본보 창간 여론조사에 따르면 문재인의 대선주자 지지율(16.8%)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18.9%)과 함께 2강 구도를 구축했다.

‘고용 사장’ 이미지 벗어야

총선이 끝나면 문재인은 당에 돌아올 것이고 대선 체제를 착착 구축해 나갈 것이다. 그럼에도 ‘친노의 고용 사장’이라는 태생적 이미지를 걷어내지 못하면 미래는 없다. 지난 대선 때도 ‘문재인은 괜찮은데 친노가 무섭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던가. 그러려면 무엇보다 노무현을 넘어서야 한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해 불편한 얘기라면 입도 뻥긋 못 하게 하는, 친노의 종교적이라고 느껴지리만치 무서운 ‘노무현 도그마’를 깨야 한다. 대선 가도에서 적당한 시점이 되면 문재인이 먼저 노 전 대통령의 공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 많은 국민도 그를 고용 사장이 아닌 ‘오너’로 보고 안정감을 느낄 것이다.

박제균 논설위원 phark@donga.com
#노무현#문재인#대선#친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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