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체제 붕괴’ 선언 이후

동북아 균형외교는 파탄 직면…국내 정치권엔 ‘북풍 블랙홀’

이용욱 기자

박 대통령 국회 연설이 ‘남긴 것’

박근혜 대통령의 지난 16일 국회 연설이 적지 않은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다. 북한 체제 붕괴까지 언급한 대북 강경책으로 한반도 안보위기감은 더 높아졌고, 초강경 압박정책을 천명한 박 대통령 의도를 둘러싼 정치권과 여론의 논쟁도 증폭되는 상황이다. 박 대통령이 헌법 등을 놓고 자의적인 잣대를 적용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왔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6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한반도 안보 위기에 대한 연설을 마친 뒤 청와대 관계자들과 함께 국회를 떠나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6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한반도 안보 위기에 대한 연설을 마친 뒤 청와대 관계자들과 함께 국회를 떠나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외교적 후유증은 심각하다. 역내 평화와 안보 증진을 목표로 했던 동북아 평화안보 체제 논의는 물 건너가고, ‘한·미·일 대 북·중·러’의 신냉전구도가 공고화하는 등 동북아 질서가 급변하고 있다. 특히 박 대통령이 북한 ‘레짐 체인지’(정권교체)를 공론화한 것은 중국·러시아가 한국과 멀어지고 북한과 가까워지도록 할 가능성이 높다. 비록 중·러가 핵과 미사일에 반대하더라도, 북한 붕괴가 자국 이익에 어긋난다고 여기는 만큼 정부 강공책에 제동을 걸 수밖에 없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자매지인 환구시보는 17일 사설에서 박 대통령의 국회 연설과 한반도 주변에 대한 미국의 군사 배치 강화 등을 언급하면서 중국이 동북지방에 대한 군사적 배치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환구시보는 특히 “중국인은 38선이 군사행동에 의해 깨지는 것을 원치 않으며 동북아의 현재 구조가 유지되는 것을 지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의 한반도 배치 논의 공식화까지 겹치면서 미·중 간 균형외교는 파탄지경이다. 개성공단 중단, 북한 체제 붕괴론 등으로 남북관계는 현 정부 임기 내 회복이 불가능하다.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를 감행한 김정은 정권의 폭주가 문제를 촉발했지만, 정부의 극단적 강공이 상황을 악화시키면서 국민들은 안보위기를 일상으로 느끼고 감내해야 할 상황에 내몰리게 됐다.

북풍 논란은 더 거세졌다. 박 대통령은 “각종 음모론이 제기되고 있는 것은 정말 가슴 아픈 현실” “북한이 바라는 일이 될 것”이라고 했지만 야권은 반발한다. 개성공단 중단 등 안보논쟁이 정국 ‘블랙홀’로 작용하는 상황에서 북한 붕괴론까지 공론화되면서 4월 총선까지 안보이슈 외에 경제심판론 등 다른 쟁점이 부상할 공간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는 “이전에도 크고 작은 북풍이 있었지만 이번처럼 심각한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헌법에 대한 자의적·이중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말도 나왔다. 박 대통령과 청와대는 국회 연설을 요청하면서 ‘헌법 81조’(대통령은 국회에 출석하여 발언하거나 서한으로 의견을 표시할 수 있다)를 근거로 제시했고, 청와대는 쟁점법안 국회 처리에 비협조적이라는 이유로 야당을 향해 “어려운 상황일수록 입법자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도 평화통일이 아닌 북한 붕괴론을 제기함으로써 ‘헌법 4조’(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와 ‘헌법 66조’(대통령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의무를 진다)를 위배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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