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절 총장’ 앉히고, ‘부적절 이사’ 감싸고… 반대하는 교수 자르고, 학생들은 고소

정원식 기자

동국대에 무슨 일이

지난 15일 오후 3시쯤 서울시 종로구 조계사 앞 횡단보도에서 동국대 학생 10여명과 경찰들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조계종 규탄집회를 마친 학생 가운데 대표자 10여명이 조계종 집행부에 요구서한을 전달하기 위해 횡단보도를 건너려 하자 경찰이 가로막고 나섰다. 앞서 동국대 학생 100여명은 이날 오전 11시30분쯤 동국대를 출발해 조계사 맞은편 인도까지 행진한 다음 오후 1시부터 2시간가량 ‘동국대 총장 사태 해결’과 ‘대학 자치 보장’을 요구하는 집회를 벌였다. 학생 대표들은 옥신각신하던 끝에 횡단보도를 건넜으나 경내에는 진입하지 못했다. 학생들은 조계사 일주문 앞에서 조계종 호법팀장에게 요구서한을 전달하고 해산했다.

[커버스토리]‘표절 총장’ 앉히고, ‘부적절 이사’ 감싸고… 반대하는 교수 자르고, 학생들은 고소

■비판 교수 해임, 학생 대표들 고소

지난해 보광(한태식) 총장의 표절 문제와 조계종의 학사 운영 개입 논란으로 극심한 내홍을 겪은 후 이사회 이사 전원 사퇴로 간신히 봉합됐던 동국대 사태가 봄을 맞아 또다시 파열음을 내고 있다. 지난달 학교 측이 교수협의회 회장을 해임하고 총장이 학생들을 고소하면서다.

학교법인 동국대학교는 지난달 15일 교원징계위원회를 열어 한만수 교수협의회장(국어국문문예창작학부)을 17일자로 해임했다. 징계위원회는 ‘동료교수 상해 행위’, ‘합법적인 이사장과 총장선임 과정의 부정의견 확산’, ‘대학에 대한 직접적 비방’ 등 세 가지를 징계 사유로 내세웠다. 그러나 지난 14일 서울중앙지법은 한 교수가 낸 직위해제처분효력정지 등 가처분소송 선고공판에서 “직위해제처분 및 해임처분은 모두 징계사유가 존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루어진 것으로서 위법”이라며 “한만수 교수의 직위해제 처분, 해임 처분, 대학평의원 및 개방이사추천위원 직무정지 처분의 효력을 정지한다”고 판결했다. 동국대는 법원 판결 및 한만수 교수 해임 철회 여부와 관련해 아무런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다.

동국대는 학생들을 상대로 직접 소송전을 벌이고 있다. 동국대는 지난달 22일 이 학교 정외과 4학년 조윤기씨(미래를여는동국공동추진위원회 집행위원장), 강수현 경주캠퍼스 총학생회장, 안드레 서울캠퍼스 총학생회장, 신정욱 대학원 총학생회장 등 4명을 총장 명예훼손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다. 지난 3월17일 ‘미래를여는동국공동추진위원회’(미동추) 페이스북 계정에 올라온 패러디성 게시물이 문제가 됐다. 자승 조계종 총무원장, 일면 동국대 전 이사장, 보광 동국대 총장의 가상 카카오톡 대화 형식으로 된 이 게시물은 보광 스님이 총장이 되기 위해 돈을 썼다고 표현했다. 미동추는 해당 글을 삭제했으나 학생들은 경찰의 소환통보를 받은 상태다.

표절 총장 선임을 반대했다 해임된 한만수 동국대 교수.  이석우 기자

표절 총장 선임을 반대했다 해임된 한만수 동국대 교수. 이석우 기자

■“배려” “외압” 종단의 총장 선출 개입 논란

교수·학생의 저항을 불러온 동국대 사태의 문제점은 조계종단의 총장 선출 개입, 보광 총장의 자격 문제, 총장과 대학의 불통 행보 등으로 요약된다.

발단은 동국대가 18대 총장 선임을 진행하고 있던 2014년 1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앞서 동국대는 11월10일 총장후보추천위원회를 열어 김희옥 당시 총장, 보광 스님(불교학과 교수), 조의연 영문학과 교수 등 3명을 총장후보로 확정했다. 김희옥 총장이 11표, 보광 스님이 7표, 조의연 교수가 3표를 받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김 전 총장의 재임이 유력시되는 분위기였다. 김 전 총장은 재임 기간 동안 대학 외부 발전 기금이 크게 늘고 대학평가 순위에서도 역대 최고 성적을 얻었다. 교수신문 보도에 따르면, 2013년 헌법재판관 출신인 김 총장이 감사원장 후보로 거론되자 교무위원들이 긴급간담회를 열어 학교에 남아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한 달 뒤 분위기가 급변했다. 2014년 12월11일 점심 무렵, 김희옥 총장은 조계종단 연락을 받고 코리아나호텔의 한 식당으로 갔다. 이 자리에는 자승 총무원장, 정련 당시 동국대 이사장, 호계원장 일면, 교육원장 현응, 포교원장 지원, 종회의장 성문 등 조계종 최고위 인사들이 참석했다. 김 총장은 불과 몇 시간 후 “종단 내외의 의견을 받아들여 사퇴한다”는 입장을 발표하고 돌연 총장 후보직에서 물러났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자승 총무원장은 지난해 1월 출입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비보도를 전제로 “이사들을 만나 얘기를 들어보니 김 총장의 표가 2표도 안 나오겠더라. 표 대결 하면 1~2표밖에 얻지 못하는 상황이었다”며 “그래서 (코리아나호텔에서) 자리를 만들어 분위기를 전하고 명예롭게 퇴진할 수 있게 배려한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동국대 이사장 정련 스님과 김희옥 총장은 코리아나호텔 모임을 ‘조계종의 외압’으로 규정했다. 정련 스님은 지난해 2월11일 입장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난 12월11일 있었던 일은 어떤 말로도 비켜갈 수 없는 동국대학 총장 선출에 대한 외압이었습니다. 조계종단의 총무원장을 비롯한 주요 소임자 스님들이 이사장인 소납과 김희옥 총장에게 행한 태도와 언행은 보통의 상식을 훨씬 뛰어넘는 부당한 권력행사에 다름이 아니었습니다.”

김희옥 전 총장도 지난해 초 최대식 전 동국대 감사를 통해 이사회에 제출한 문건에서 “헌법과 교육 관련 법률은 대학의 자율성과 자치를 정하고 있는바, 총무원장 등 종단은 동국법인과는 달라서 동국대학교와 학교에 간여할 수 없다”며 “총장 선출 과정에서 총무원장, 종단이 개입하는 것은 사립학교법 등 교육 관련 법률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외압설이 불거지자 조의연 교수도 총장 후보에서 사퇴해 총장 후보로 보광 스님만 남았고, 결국 그가 총장이 됐다.

■이사장은 절도 의혹·이사는 모텔 운영

김 전 총장의 돌연한 후보 사퇴로 외압설이 흘러나올 무렵 보광 스님의 표절의혹이 불거졌다. 동국대살리기 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해 1월12일 기자회견을 열어 보광 스님의 논문 21편에서 표절이 발견됐다고 주장했다. 보광 스님이 2010년 <대각사상>에 게재한 논문 ‘인터넷 포교의 중요성에 관한 연구’가 2006년 이모씨의 동국대 박사학위 논문을 포함한 동일저자의 논문 5개와 70% 일치한다는 것이다. 두 건의 논문은 동국대 연구윤리진실성조사위원회에서 ‘타인표절’로 확정됐고, 다른 논문 16편은 자기표절로 판정돼 재심 대상이다. 재심 대상 논문인 ‘서산대사의 정토관’은 약 4쪽가량의 내용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관련 부분과 일부 토씨만 빼고 동일하다. 동국대 교수협의회와 총학생회는 총장 취임 반대 성명서를 발표하고 시위 및 단식으로 항의했으나 동국대 이사회는 지난해 5월 보광 스님을 총장으로 선출했다. 이사회는 이어 논문표절이 확정된 보광 스님에 대한 중징계 요구안도 기각했다.

보광 스님은 2010년 4월부터 지난 17일까지 6년 동안 국가인권위 비상임위원을 지냈다. 그는 2011년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의 고공 농성 당시 긴급구제 요청에 대해 반대 입장을 표명했고, 앞서 2010년에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의 야간 옥외 집회 금지 조항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인권위의 의견표명에도 반대했다. 교수들과 학생들의 분노가 촉발한 것은 총장의 표절 문제만이 아니다. 보광 스님이 총장으로 선출되기 전 정련 스님 후임으로 동국대 이사장이 된 일면 스님은 지난해 언론보도를 통해 흥국사 주지 시절 탱화를 절도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지난해 동국대 승려 이사였던 ㄱ스님은 강원도 지역에서 룸살롱이 딸린 모텔을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또다른 승려 이사 ㄴ스님은 동국대 이사 간통죄로 피소된 전력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종단 “동국대 문제 공식적 입장 없다”

동국대 문제의 근본에는 조계종단과의 역학관계가 자리 잡고 있다. 보광 스님이 총장이 된 것 자체가 2013년 자승 총무원장이 연임하는 과정에 기여한 이들에게 논공행상을 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광 스님은 2013년 총무원장 선거에서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보광 스님 논문 표절 문제를 처음으로 제기한 김영국 연경불교정책연구소장은 “선거를 도와준 보광을 총장에 앉혀야 하는데 총장추천위원회 투표 결과(김희옥 11표, 보광 7표, 조의연 3표)를 이사회에 그대로 올리면 보광이 총장이 되기 힘든 상황이 되자 김 전 총장을 호텔로 불러 사퇴를 압박한 것”이라고 말했다.

전 이사장 일면 스님도 총무원장의 측근으로 알려져 있다. 동국대 이사회는 지난해 2월 정련 스님의 후임 이사장으로 일면 스님을 선출했는데, 이사회 종료 선언 이후 총무원장 쪽 이사들이 긴급회동을 갖고 일면 스님을 이사장으로 선출해 합법성 논란이 벌어졌다. 학생들이 “조계종단이 동국대라는 학문 공동체이자 고등교육기관을 어떠한 원칙도 없이 권력 갈라먹기의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이유다.

동국대가 종단의 정치적 역학에 따라 흔들릴 수밖에 없는 것은 동국대 이사회 구성에서 승려 이사의 비중이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동국대 정관은 이사 13명 가운데 무려 9명을 ‘조계종 재적승려’로 채우도록 규정하고 있다. 반면 같은 종교계열 사학이라도 기독교 재단인 연세대는 전체 이사 12명 가운데 교계 추천 이사가 2명에 불과하다. 조계종단은 심지어 2013년에는 개방이사인 재가이사까지 조계종이 추천할 수 있도록 정관 개정을 시도했다 무산됐다.

종단의 자정 노력도 기대하기 어렵다. 조계종 여권 세력은 2014년 중앙종회(입법기관) 의원 선거에서 전체 79석 가운데 56석을 확보했다. 야권으로 분류되는 삼화도량 소속 승려들은 지난해 4월 일면 스님을 포함해 당시 도덕성 문제가 불거진 동국대 승려 이사 3명을 총무원 호법부에 고발했으나 별다른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 조계종 중앙종회는 같은해 11월 삼화도량 대표 영담 스님을 종회의원에서 제명했다. 현 종단 체제를 견제할 세력이 치명상을 입은 것이다. 영담 스님은 지난 19일 재심호계원에서 공권정지 10년과 법계 강등으로 징계가 경감됐다.

동국대 이사회는 학생들의 단식과 투신 예고 등 학내 저항이 거세지자 지난해 12월3일 이사 전원 사퇴를 발표했다. 일면 스님은 이사장직과 이사직을 내려놨다. 보광 스님은 이사직은 내려놨으나 총장직은 유지하고 있다. 조계종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조계종은 동국대 문제와 관련해 공식적인 입장이 없다”며 “동국대 이사 문제는 학교운영 정상화를 위해 단계적으로 이사들을 교체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실제로 기존 이사들이 교체되고 있으나 올해 새로 추천된 이사진에도 문제적 인물들이 섞여 있다. 지원 스님은 코리아나호텔 모임 5인방 중 한 명이다. 일관 스님은 일면 스님의 상좌다. 자광 스님은 비리 의혹 및 3선 시도로 1994년 멸빈(승적 박탈)된 서의현 전 총무원장의 승적을 회복시킨 판결로 호계원이 논란의 중심에 서자, 지난해 9월 호계원장을 사임한 인물이다. 그는 2013년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 당시 보광 총장과 함께 자승 총무원장의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바른불교재가모임 상임대표를 맡고 있는 우희종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는 “교수를 해임하고 학생을 고소한 것은 정상적인 교육기관에서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총장은 사퇴하고 조계종은 동국대의 자치를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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