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주경철]영국과 폴란드 의회, 그리고 국회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6월 10일 03시 00분


코멘트

변방에서 강대국 도약한 영국… 의회 통해 국력 모은 결과
한때 잘나간 폴란드의 추락… ‘민주적 의회’가 거부권 행사해
국정을 마비시켰기 때문… 근대국가의 흥망성쇠는
국회 특성에 따라 좌우된다

주경철 객원논설위원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주경철 객원논설위원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중세만 해도 영국은 양을 쳐서 양모를 수출하는 유럽의 변방 국가였다. 그랬던 나라가 근대 들어 일취월장으로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 19∼20세기에는 초강대국으로 성장하고 세계의 패권을 차지했다. 그렇게 된 요인이 무엇일까.

무엇보다 효율적이고도 공평한 방식으로 국력을 모을 수 있는 국제(國制)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 핵심은 의회에서 찾을 수 있다. 명예혁명(1688년)으로 공동 국왕에 추대된 윌리엄과 메리에게 의회는 권리선언을 제시하고 비준을 요구했다. 여기에 서명한 국왕은 자신들의 권리를 제한하는 데 동의한 것이다.

국가 운영에 필요한 경비는 매년 의회의 의결을 거쳐야 하며, 군인들의 봉급 역시 연봉 방식으로 결정한다는 것이다. 그 내용은 결코 추상적이지 않고 매우 구체적이다. 적어도 3년에 한 번은 반드시 의회를 열어야 한다는 규정을 통해 국왕의 독재를 방지하고, 한 번 열린 의회는 3년 이상 지속할 수 없다는 규정을 통해 의회의 독재를 방지했다. 이처럼 국민의 자유는 거창한 원칙을 천명하기보다 현실적 장치를 마련해 보장했다.

그 결과가 어떠했는지 한 가지 사례를 보자. 17세기 중반만 해도 영국 해군이 네덜란드 해군에 대패할 정도였다. 그러나 100년이 지난 후 최초의 세계대전이라 일컫는 7년전쟁(1756∼1763)에서는 영국이 압승을 거두어 거의 전 세계의 식민지 패권을 차지했다.

근대 세계에서 전쟁은 결국 돈 문제로 귀결된다. 영국 정부는 17세기에 고작 250만 파운드의 세액을 운용하는 데 그친 반면, 18세기에는 2000만 파운드의 조세 외에도 1억3000만 파운드의 국채를 운용했다. 정부가 이런 거액을 이용할 수 있게 된 데는 의회가 자금의 용처와 액수를 명확하게 규정하고 매년 예산 사용을 감사함으로써 국민의 신뢰를 확고히 했기 때문이다.

폴란드는 정반대의 사례라 할 만하다. 동유럽에서 가장 강력하고 문화적으로 발전했던 이 나라는 17∼18세기 국력이 크게 기울더니 급기야 러시아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등 주변 강대국들에 유린당하다 못해 세 차례에 걸쳐 분할돼 아예 지도에서 지워져 버렸다. 이 나라가 주변 국가들의 먹잇감으로 전락한 요인은 무엇일까. 스스로 망국(亡國)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국제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도 의회(sejm)가 핵심이다.

1572년 폴란드 국왕 지그문트 2세 아우구스트가 후계자 없이 사망했을 때 귀족들은 의회에서 자유선거로 국왕을 선출하기로 결정했다. 귀족이 왕을 추대했으니, 국왕이 귀족들의 권한을 억압하지 못하도록 조치를 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국왕은 자신의 행동과 권한을 제한하는 계약에 서명해야 했다.

국왕의 수족을 묶어둔 다음 의회가 국왕 대신 국정을 잘 운영했는가? 그렇지 않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귀족 의원들은 의회에서 ‘거부권(liberum veto)’을 행사할 수 있었다. 어느 한 의원이라도 거부권을 행사하면 안건이 부결되니 실제로는 만장일치여야 안건이 가결되었다.

처음에는 누군가가 거부권을 행사하면 해당 안건만 부결되었는데, 갈수록 사태가 악화되어 급기야 한 번 거부권이 행사되면 그때까지 가결되었던 모든 안건이 전부 자동 부결되기에 이르렀다. 결국 의회가 아무 일도 못하는 지경이 되었다. 주변 강대국들이 자국에 불리한 결정을 못하도록 만들려면 폴란드 의원 몇 명만 구워삶아 거부권을 행사하도록 하면 충분했다.

1573년부터 1763년까지 약 150번의 의회 회기 중 3분의 1 정도는 단 한 건의 안건도 가결되지 않고 끝났다. 국왕도, 의회도 아무런 일을 못하니 국정이 마비되는 것이야 당연한 일이다. 의회에서 국왕을 선출하고 각 지역 대표인 의원들의 의견을 철저히 보장해 준다고 하니 마치 ‘민주적’인 제도로 보일 수 있지만 사실은 귀족들의 이기적 행태를 보장한 ‘봉건적’ 성격의 제도에 불과하다. 역사가들은 선출왕제도와 거부권이 폴란드 망국의 중요 원인이라는 데에 동의한다.

말 많고 탈 많던 대한민국 19대 국회가 끝났다. 후대 역사가가 19대 국회를 어떻게 판단할지 모르겠지만 느낌으로는 역대 최악의 국회였던 것 같다. 새로 개원하는 20대 국회는 국민을 편안하게 모시고 국가의 재도약을 위해 헌신하는 훌륭한 국회가 되기를 바란다. 근대국가의 흥망성쇠는 대체로 국회의 성격에 많이 좌우된다.

주경철 객원논설위원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영국#의회#영국 정부#폴란드#20대 국회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