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간두령’ 나온 부여 토광묘 90% 파괴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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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7월 태양광시설 불법공사… 기원전 2세기 묘 1기 파헤쳐
4m 떨어진 지점서 간두령 발견 등… 청동유물 대부분 제 위치 잃어
문화재청, 사고 25일뒤 현장조사

지난해 7월 태양광발전 시설 공사 과정에서 파괴된 충남 부여군 세도면 토광묘. 불법 굴착으로 ‘ㄱ’자의 토광 일부(위 사진 원 
안)만 남아 있다. 토광 아래로 청동투겁창이 보인다. 이곳에서는 국보급 유물인 ‘간두령’(아래) 한 점 등 33점의 유물이 
나왔다. 문화재청 제공
지난해 7월 태양광발전 시설 공사 과정에서 파괴된 충남 부여군 세도면 토광묘. 불법 굴착으로 ‘ㄱ’자의 토광 일부(위 사진 원 안)만 남아 있다. 토광 아래로 청동투겁창이 보인다. 이곳에서는 국보급 유물인 ‘간두령’(아래) 한 점 등 33점의 유물이 나왔다. 문화재청 제공
지난해 충남 부여군 세도면에서 발견된 기원전 2세기 토광묘(土壙墓·수직으로 구덩이를 파고 시체를 매장하는 무덤)가 불법 공사로 90%나 파괴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국보급 ‘간두령(竿頭鈴·청동방울)’을 비롯한 각종 유물들이 제 위치를 잃고 흩어져 출토된 것으로 조사됐다. 앞서 국가 사적인 경주 황룡사지(皇龍寺址)에서도 통일신라시대 유적이 굴착기에 잘려 나가는 등 중요 유적에 대한 파괴가 잇따르고 있다. 동아일보가 최근 입수한 ‘부여 세도면 청송리 35-42번지 긴급발굴조사 약보고서’에 따르면 태양광발전 시설 건설업체인 ㈜유엔알이 지난해 7월 3일 공사를 벌이면서 입회조사(문화재 조사 전문가의 참관 아래 굴착을 개시하는 것)를 거치지 않고 땅을 파다 기원전 2세기의 토광묘 1기를 파괴했다. 이 보고서는 지난해 9월 문화재청이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로부터 제출받은 것이다.

이 토광묘 일대는 반경 300m 안에서 고려, 조선시대 유물이 나온 적이 있어 2년 전 지표조사 때 입회조사가 필요하다는 판정을 받은 바 있다. 그러나 사업시행자는 입회관이 현장에 도착하기 전에 불법으로 땅을 팠다. 입회관이 도착했을 당시 이 무덤은 굴착기에 의해 훼손돼 길이 1.2m, 너비 0.6m, 높이 0.2m만 남아 있었다. 무덤 깊이가 최소 1.5m 이상으로 추정되는 점을 감안하면 불법 공사로 토광묘의 약 90%가 무너진 셈이다.

무덤에서는 간두령뿐 아니라 세형동검, 잔줄무늬거울(다뉴세문경·多紐細文鏡), 청동투겁창, 청동 꺾창(동과·銅戈), 청동도끼(동부·銅斧), 대롱옥(관옥·管玉), 돌화살촉 등 33점에 이르는 유물이 나왔다. 특히 학계는 청동기∼초기 철기시대 제사장이나 수장이 농경의례를 집전할 때 사용한 무구(巫具)인 간두령에 주목한다. 수량이 극히 드문 데다 삼한지역의 초기 철기문화를 파악하는 데 매우 귀중한 자료이기 때문이다. 앞서 충남 논산과 덕산에서 출토된 간두령 4점은 모두 국보로 지정됐다.

그러나 무단 굴착으로 토광묘에서 4m나 떨어진 지점에서 간두령이 발견되는 등 대부분의 유물이 제 위치를 잃은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간두령은 통상 2개가 한 쌍으로 나오지만 이곳에서는 한 개만 찾을 수 있었다.

정인성 영남대 교수(고고학)는 “유물은 원래대로 유구와 함께 발견돼야 출토 정황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며 “우리나라 고대사 해석에 중요한 단서가 될 자료들이 훼손돼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문화재청의 늦장 대응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보고서에 따르면 문화재청은 사건 발생 뒤 25일이나 지나 토광묘에 대한 현지조사를 실시했고, 다시 20여 일이 흐른 뒤 긴급 발굴조사에 착수했다. 현재는 원래대로 복토된 상태다.

최병현 숭실대 명예교수(고고학)는 “유적 파괴로 중요한 청동 유물이 여기저기 흩어진 상황에서 현장조사와 긴급 발굴조사에 오랜 시일이 걸린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 입법 미비로 시굴없이 공사 개시… ‘유물 훼손’ 사전 못 막아 ▼

잇단 유적 파괴 원인과 대책

올 4월 경북 경주시 황룡사지 역사문화관 불법 공사로 파괴된 통일신라시대 건물 유적. 굴착기로 구덩이를 파면서 적심석(원으로 표시된 곳)이 잘려나갔다. 동아일보DB
올 4월 경북 경주시 황룡사지 역사문화관 불법 공사로 파괴된 통일신라시대 건물 유적. 굴착기로 구덩이를 파면서 적심석(원으로 표시된 곳)이 잘려나갔다. 동아일보DB
최근 경북 경주시 황룡사지(皇龍寺址)에 이어 충남 부여군 세도면 토광묘(土壙墓)도 불법 공사에 의해 파괴된 사실이 드러나면서 잇단 유적 파괴의 원인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매장문화재보호법 등 관련 법규의 허점과 문화재청의 안일한 관리감독, 발굴법인 부실화 같은 고질적인 문제가 불거진 결과라고 지적한다.
○ 구멍 뚫린 문화재 보호 법제

지난해 7월 훼손된 충남 부여군 세도면 토광묘에서 발견된 잔줄무늬거울(多紐細文鏡). 동경 가운데 조각은 끝내 찾지 못했다. 문화재청 제공
지난해 7월 훼손된 충남 부여군 세도면 토광묘에서 발견된 잔줄무늬거울(多紐細文鏡). 동경 가운데 조각은 끝내 찾지 못했다. 문화재청 제공
지난해 7월 파괴된 이 토광묘는 태양광발전 시설 공사에 앞서 2014년 ‘문화재 지표조사’를 거쳤다. 매장문화재보호법에 따르면 사업 면적이 3만 m² 이상이면 유물이나 유적이 지표에 노출돼 있는지를 파악하는 지표조사를 받아야 한다. 지표조사 결과에 따라 입회조사 혹은 시굴, 발굴조사 여부가 결정된다. 문제는 지표조사로는 유물, 유적의 존재를 명확히 확인할 수 없다는 점이다.

특히 입회조사는 굴착을 전제로 한 것이어서 일단 공사가 중단되는 시굴이나 발굴조사에 비해 문화재 보호 조치가 훨씬 미흡할 수밖에 없다. 이번 토광묘의 경우 입회관이 현장에 도착하기 전에 불법으로 땅을 파긴 했지만, 만약 시굴 결정이 났다면 사고를 막을 수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조유전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은 “입회조사는 개발사업자의 편의를 위해 생긴 제도”라며 “문화재 보호 차원에서 일본처럼 입회조사 없이 시굴조사를 의무화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표조사나 입회조사는 시굴과 발굴 등 모든 문화재 조사 비용을 사업 시행자가 부담해야 하는 현행 제도에서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조사에 들어가는 비용뿐만 아니라 사업이 지연되는 데 따른 금융비용 등도 무시할 수 없다. 이에 따라 학계 일각에서는 일본처럼 시굴조사를 의무화하되 국가 예산을 일부 투입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 문화재청의 안일한 관리감독

잇단 유적 파괴에는 문화재 보호 주무 관청인 문화재청의 허술한 관리감독에도 원인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각 지방자치단체에 문화재 업무를 위임한 채 뒷짐만 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예컨대 황룡사지와 세도면 토광묘에서 불법을 저지른 사업시행자에 대해 문화재청은 직접 고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 대신 지자체에 고발 조치를 요청하는 공문만 보냈을 뿐이다.

문제는 황룡사지 내 역사문화관 건립 공사의 경우 경주시가 직접 추진한 사업이라는 점이다. 더구나 공사 과정에서 경주시가 시공업체를 압박해 준공을 서두른 정황까지 확인됐다. 결국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로 문화재청은 올 4월 경주시 책임 공무원들에 대한 징계를 시에 요구했지만, 아직까지도 처벌은 이뤄지지 않았다.
○ 넘치는 발굴법인 부실화

요즘 국내 유적 발굴은 대부분 발굴 전문 법인들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 그런데 최근 부동산 경기 악화로 발굴 수요가 줄고 있지만, 발굴법인 수는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발굴 전문 조사기관 수는 2009년 67개에서 지난해 160개로 2배 넘게 급증했다.

이에 따라 업체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이른바 ‘발굴 단가 후려치기’가 본격화되고 있는 형국이다. 실제로 2011∼2013년 표준품셈(정부가 고시하는 적정 발굴 비용) 대비 실제 발굴 비용은 공공시행 사업 79%, 민간시행 사업 58%로 조사됐다. 통상 발굴법인이 최소한의 이윤을 내려면 이 수치가 70∼80%는 돼야 한다. 민간 시행 사업의 경우 발굴법인이 밑지는 장사를 한 셈이다. 한 고고학계 관계자는 “발굴법인들이 손실을 내지 않기 위해 조사 인원이나 기간을 줄이면 발굴은 부실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간두령#토광묘#불법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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