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더민주 오너 문재인, “당 정체성 바꿀 생각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26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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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4·13총선 공천이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전면에 나서 “요즘 우리 당 정체성 논쟁은 관념적이고 부질없다”는 말로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를 겨냥했다. 김 대표가 제기한 정체성 시비를 문제 삼은 것이다. 김 대표는 전날 비례대표 공천 파동 이후 당 복귀 기자회견에서 “일부 세력의 정체성 논쟁을 해결하지 않으면 수권 정당으로 가는 길은 요원하다”며 무려 6번이나 정체성을 거론했다. 당의 정체성에 대한 실세와 임시 대표의 큰 인식 차는 계기만 되면 정면충돌할 소지가 크다.

문 전 대표는 운동권 세력을 배제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한쪽 면만 본 것”이라고 선을 긋고 “선거에서 이기려면 중도와 합리적 보수로 더 확장해야 한다”고 했다. 김 대표의 영입은 당의 체질을 바꾸는 것과는 거리가 먼, 단순한 보완임을 밝힌 것이다. 문 전 대표는 오히려 지난 총선 때의 ‘묻지 마 야권연대’를 통해 기존 당의 체질을 더 강화하고 있다. 그는 정의당은 물론이고 위헌 정당으로 해산된 통합진보당 출신의 무소속 윤종오 후보와의 연대도 적극 지지했다. 문 전 대표가 실세로 있는 한 더민주당의 정체성은 변하기 힘들다는 사실이 다시 확인됐다.

“미국 민주당처럼 진보 보수까지 껴안는 대단히 스펙트럼이 넓은 정당을 모델로 삼아야 한다”는 문 전 대표의 말을 보면 자신은 집토끼(기존 진보층)를 붙잡고, 김 대표는 산토끼(보수층)를 껴안게 하는 양동 전략인 듯하다. 하지만 당의 정체성에서 괴리가 큰 쌍두마차가 잘 굴러갈지 의문이다. 말이 역할 분담이지 문 전 대표의 전면 등장은 김 대표를 견제하고 친노·운동권이 주도권을 다시 잡기 위한 사전 포석이다.

김 대표는 어제 “누가 운동권을 배제한다고 그랬느냐”며 “기본적으로 국민이 바라는 정체성 쪽으로 당이 흘러가야 한다”고 톤을 낮췄다. 5선 비례대표를 받아 노욕을 채우는 대신 더민주당의 중도 구색 맞추기에 충실할 모양이다. 문 전 대표는 원하는 대로 됐다고 좋아할지 모르겠으나 멀리 보면 그런 정체성을 가진 정당으로는 다수당도, 내년 12월 이후 집권당도 되기 쉽지 않을 것이다.
#더불어민주당#문재인#4·13총선#김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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