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랜트 건조 현장선 ‘이러다 망한다’는 얘기 예전에 돌아”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6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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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구조조정]은퇴한 베테랑들이 말하는 조선업 현장 위기 원인과 해법

김진현 전 삼성중공업 지역장(맨위쪽 사진)과 노동열 전 현대중공업 상무보(맨아래쪽 사진)는 “노사가 함께 고통을 분담해야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사진은 모두 재직 당시 모습. 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 제공
김진현 전 삼성중공업 지역장(맨위쪽 사진)과 노동열 전 현대중공업 상무보(맨아래쪽 사진)는 “노사가 함께 고통을 분담해야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사진은 모두 재직 당시 모습. 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 제공
“현재 조선업 위기는 경영진이 해양플랜트 사업의 뿌리와 줄기는 보지 않고 무성한 잎만 보고 달려든 탓이 가장 큽니다.”(김진현 전 삼성중공업 지역장)

국내 조선업체들은 해양플랜트를 설계할 기술이 없었고, 해외 설계사와 원활한 협력 관계도 구축하지 못했다. 계약 형태도 공사 지연으로 인한 손실을 조선사들이 떠맡는 구조였다. 그러나 조선사들은 계약 한 건에 수조 원씩 나가는 매출(잎)만 보고 일단 저가로 수주했다. 수주 후 인도까지 5년 이상 걸리는 공정상 부실은 누적돼 한꺼번에 터졌다.

최근 국내 조선업체의 ‘베테랑 생산직’ 퇴직자를 잇달아 만나 조선업계 위기의 원인과 해법을 들어봤다. 2014년 현대중공업에서 최초로 생산직 임원에 오른 노동열 전 상무보(60)와 2013년 국내 조선업계에서 최초로 안전관리 분야 대한민국 명장으로 선정된 김진현 전 삼성중공업 지역장(58·기원급)이다. 노 전 상무보는 42년을 재직하다 올해 4월에, 김 전 지역장은 29년 재직 후 지난해 10월에 퇴직했다.

김 전 지역장은 “첫 번째 해양플랜트를 건조할 때 현장에선 적자를 직감했다”고 말했다. 설계가 제때 안 오고, 받아온 설계는 현장과 맞지 않았다. 고객사의 요구 수준은 높아 다음 공정을 진행할 수가 없었다. 두 번째 프로젝트에서도 비슷하게 흘러가자 일부 직원은 ‘이러다 회사 망하겠다’고도 했다. 그는 “그간 들인 ‘수업료’를 바탕으로 설계 기술을 확보하고 핵심 기술자들을 양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두 사람은 현재 위기는 노사 간 불신도 영향을 미쳤다고 봤다. 노 전 상무보는 “경영진이 회사가 어렵다고 할 때마다 현장에서는 임금과 성과급을 적게 주려고 연례행사처럼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했다”며 “경영진은 근로자와 소통하고 노조는 회사를 믿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김 전 지역장은 “상시 구조조정과 감사가 이어지면서 직원들 사기는 떨어지고 보신주의가 만연해 있다”며 “경영진도 연봉 일부를 반납하고 복지 혜택도 스스로 줄이는 등 고통 분담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두 사람은 설비와 인력 슬림화는 불가피하다고 했다. 노 전 상무보는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빅3’ 체제가 유지된다면 시황이 좋아졌을 때 또 저가 수주가 벌어질 것”이라며 “‘빅2’ 체제로 전환하고 예를 들어 한 회사는 선박, 다른 한 회사는 해양플랜트와 군함 등 특수선식으로 선종별로 특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무조건적인 인력 구조조정은 고숙련자가 대거 이탈하는 부작용을 낳는다”며 “임금피크제 확대와 근로시간 단축 등을 통한 해법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전 지역장은 “해양플랜트 블록을 만들기 위해 마련한 플로팅 독(부유식 선박건조대)은 대형 프로젝트가 끝나면 처분을 하거나 폐쇄해 효율성이 높은 독으로 선택과 집중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고숙련자들이 관리직으로 옮기면서 현장에 비숙련자들이 주로 배치된 만큼 인력의 효율적 조정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근로자들의 주인의식도 강조했다. 노 전 상무보는 “어떤 해외 감독관들은 ‘일부 작업자가 현장에서 스마트폰을 쓰면서 딴짓을 하거나 행동이 굼뜨다’며 ‘중국보다 못하다’고도 말한다”며 “내가 사장이라는 생각으로 일하면 새 볼트, 너트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다가 쓰레기통으로 들어가는 일을 막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노 전 상무보는 기강을 다잡기 위해 제조업에 파견 근로를 금지하는 현행법(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야 한다고도 지적했다. “원청회사가 도급업체에 직접 작업 지시를 내릴 수 없다 보니 전체 근로자의 90%에 달하는 협력사 직원들이 근무시간에 딴짓을 하더라도 제재하거나 업무를 독촉할 방법이 없다”고 주장했다.

강유현 기자 yhkang@donga.com
#기업#구조조정#삼성중공업#조선업#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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