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도 못 쉬는 비정규직

“병가 내면 그나마 박봉도 깎여…해고 당할까 두렵기도”

김지환 기자

하청 노동자 ‘유급제’ 드물고, 노조 있어도 정규직과 차별

사회 전체 생산성에 악영향

<b>양대 노총 ‘최저임금 1만원’ 촉구</b>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등 양대 노총과 조합원들이 4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최저임금 대폭인상 강력 촉구 및 최저임금노동자위원 중대결단 예고’ 기자회견을 열어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인상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양대 노총 ‘최저임금 1만원’ 촉구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등 양대 노총과 조합원들이 4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최저임금 대폭인상 강력 촉구 및 최저임금노동자위원 중대결단 예고’ 기자회견을 열어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인상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삼성전자서비스 수도권의 한 센터(하청업체)에서 일하는 간접고용 노동자 ㄱ씨는 일상생활 중 허리를 다쳐 자가용에 앉아 있는 것조차 불편하다.

그는 “병가를 내면 무급이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아픈 몸을 이끌고 오늘도 출근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서비스 하청 노동자들은 월 60건을 기준으로 기본급 130만원을 받고, 수리 건수가 60건을 넘어야 1건당 추가로 수수료를 받는다. 기본급에 고정 연장근로수당, 식대, 통신비 등을 합쳐봐야 150만여원인데 이 수준으로는 자녀들 학원 보내기도 어렵다. 무리를 해서라도 100건은 처리해야 250만원 내외를 벌 수 있다. 그는 “아이들 밥이라도 먹이려고 아픈 허리를 부여잡고 컴퓨터·사무기기 등을 수리하러 다녀야 하는 신세가 서럽다”고 말했다.

[아파도 못 쉬는 비정규직]“병가 내면 그나마 박봉도 깎여…해고 당할까 두렵기도”

4일 ‘국제직업환경건강 아카이브’ 온라인판에 지난달 25일 공개된 논문 ‘아플 때도 일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비정규직 고용과 병결 및 프레젠티즘과의 연관성 연구’를 보면 삼성전자서비스 하청업체 수리기사와 같은 하청 노동자는 원청 정규직에 비해 4~43%가량 병결 경험이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지 않아도 낮은 임금이 쉬게 되면 더 떨어질까봐 걱정하는 ㄱ씨 같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일터에 나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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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도 일을 해야 하는 비정규직의 처지는 제조업도 마찬가지다. 거제 삼성중공업 하청업체 노동자 ㄴ씨는 “누가 아픈 몸을 이끌고 잔업·특근까지 하고 싶겠느냐. 그런데 쉬면 생활이 안되니깐 꾹 참고 나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규직과 달리 비정규직은 취업규칙·단체협약 등에 유급병가 제도가 마련돼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노동조합이 조직돼 있으면 유급병가 제도가 있기도 하지만 정규직에 비하면 보장 일수가 상대적으로 짧다. ㄴ씨는 “만약 유급병가 제도가 있다 해도 잔업·특근을 못하면 임금이 확 떨어지기 때문에 알아서 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몸이 상하는 줄도 모르고 일하다 뒤늦게 커진 병을 발견하고 후회하는 하청 노동자가 적지 않다”고 한다.

현대자동차와 2013년 2월부터 지난해 1월까지 15차례에 걸쳐 쪼개기 계약을 맺고 일했던 박점환씨(26)는 2014년 일하던 중 어깨 탈골 증상이 왔지만 대체인력이 없다는 이유 때문에 쉬지 못했다. 박씨는 “작업반장에게 어깨 통증이 심하다고 했더니 사람이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고 말했다. “정규직은 아프면 유급병가를 쓰는데 왜 계약직은 차별하느냐”고 따져 물었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고용 불안정성도 비정규직이 아파도 쉬지 못하는 중요한 원인 중 하나다. 박씨는 “정규직 전환에 대한 희망고문 때문에 가급적 관리자 눈밖에 날 일을 만들지 않아야 하는 것이 비정규직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ㄱ씨는 “업체에서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아파서 결근을 자주 하면 ‘안 나와도 된다’는 무언의 압력을 가한다”며 “실제로 압력에 못 이겨 그만두는 동료도 있었다”고 전했다.

논문을 작성한 고려대 보건과학과 역학연구팀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아플 때도 쉬지 못하고 일하기 때문에 단기적으로 개별 기업은 생산성에 지장을 받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며 “하지만 이 상황이 지속되면 비정규직의 건강은 심각하게 악화되고 사회 전체 생산성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고 밝혔다.

■프레젠티즘

(presenteeism) = 아픈데도 출근해서 일하는 것을 의미한다. 아파서 쉬는 병결과 대비되는 것으로 최근 경영 및 직업보건 분야 연구자들로부터 주목받는 개념이다. 해외 연구에서는 병결뿐 아니라 프레젠티즘도 생산성 저하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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