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사드로 악화되는 한·중 관계, 이게 박 대통령이 원한 것인가

정부가 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를 한반도에 배치하겠다고 발표한 후 국내외에서 후폭풍이 거세게 일고 있다. 중국은 왕이 외교부장이 나서 “사드 배치는 한반도의 방어 수요를 훨씬 초월하는 것으로, 그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러시아는 사드 기지를 사정권 안에 두는 미사일을 극동에 배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제 북한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 실험도 사드 배치 결정에 대한 대응 성격이 짙다. 안보를 고려하지 않은 무분별한 사드 배치 결정이 오히려 안보 불안을 조장하고 있다.

사드 배치론자들의 주장처럼 중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사드 위협을 과장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당분간 사드를 둘러싸고 갈등이 있을 수 있겠지만 한·중 간 항구적 관계 손상은 없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그렇지만 그동안 중국이 보인 강경 태도나 외교 방식을 감안하면 중국의 위협은 단순히 빈말의 협박에만 그치지 않을 수 있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경제 분야 보복조치다. 사드 배치가 발표된 지난 8일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의 한국 몫이었던 부총재 자리가 홍기택 전 부총재가 물러나면서 없어졌다. 한국에 대한 제재의 일환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대중국 경제의존도를 고려할 때 경제보복이 현실화되면 한국 경제는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지난 8일 하루에만 화장품, 카지노 등 중국 소비 관련주에서 최소 3조원이 넘는 시가총액이 사라졌다.

중국 내 여론은 더욱 심각하다. 인민일보 자매지 환구시보는 한국의 정부기관과 기업, 정치인을 제재하라고 당국에 촉구했다. 이 신문은 “사드 배치를 적극적으로 추진한 한국 정계인사의 중국 입국을 제한하고 그들 가족의 기업을 제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을 제재해야 한다고 보느냐’는 설문조사까지 하며 한·중 갈등을 노골적으로 조장하고 있다. 한국 기업들은 피해를 우려하며 초긴장하고 있다.

정부가 북한 핵과 미사일에 대응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군사적 효용성만을 위해 사드를 도입하겠다고 한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국제정치에서 사드는 핵강대국들 간 힘의 균형을 깰 수 있는 전략자산으로 통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드를 배치한다니 박근혜 정부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 외교를 포기한 것 아니냐는 의심이 나올 법하다. 미·일의 대중국 포위망에 한국이 편입되면 한반도가 신냉전의 최전선이 될 것이라는 우려는 현실화될 수 있다. 사드 배치를 둘러싼 국내 정치권의 논란과 부지선정 과정의 혼란 등 사회경제적 비용도 매우 걱정스러운 부분이다.

사드 배치 결정 후 정부의 조치를 보면 뾰족한 대책이 없는 것 같다. 사드 배치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비한 방어 조치라고 설명하는 것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말 정부 대책회의에서도 북핵 제재를 위한 국제공조가 약화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는, 실효성 없는 원칙론만 확인했다. 대중 관계 악화와 그에 따른 피해를 막을 구체적인 방안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중국과의 관계 악화가 일시적일 것이라는 안이한 판단은 버려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인민해방군 전승절 참석으로 한·중관계가 획기적으로 발전했다고 한 지 1년이 채 안됐다. 이런 대중국 외교의 혼란상, 박 대통령이 원했던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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