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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충주시에 대해서 물어봅니다
정보가 없는 사용자 조회수 36,934 작성일2011.08.21

내일 개학입니다ㅜ;

그동안 하나도 하지 않았어요<방학숙제를..

그래서 충주시조사가 막막하기만 합니다.후,,

 

바로 질문 들어갈게요!

 

1)충주가 어떻게 시가 되었는지 써주세요.(자세히)

 

2)2010,2011년 충주시 인구수 써주세요.

 

3)충주시 특산물 써주세요.

 

4)위에 빼고 충주시에 대해 더 중요한 것이 있다면 자세히 써주세요.(이게 제일 중요함ㅜ)

 

 

 

내공 50들어갑니다!

그리고 누군가가 개념없게 '내공냠냠''내공팍팍''저주글''욕'등을 써주시면 전 기꺼이 신고버튼은 웃으면서 눌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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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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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충주가 어떻게 시가 되었는지 써주세요.(자세히)

 

1956년 충주읍이 시로 승격됨에 따라 충주군이 중원군으로 개편되었다.


1995년 도농통합에 따라 중원군이 충주시에 통합되어 새로운 충주시가 되었다.

 

2)2010,2011년 충주시 인구수 써주세요.

 

충주시의 인구 (2010년 12월 31일 현재)

 

 

 

충주시의 인구(2011년 5월 31일 현재)

 

 

 

3)충주시 특산물 써주세요.

 

1.충주사과

 

재배환경

 

연평균 기온이 7∼14℃, 생육기간동안(4∼10월)의 평균도 13∼21℃, 여름철(6∼8월) 26℃를 넘지 않고, 4∼10월에 걸친 생육기 1,300mm이하의 강수량이 적당함. 강수량이 너무 많으면 배수 불량한 곳에서는 습해가 발생하고 가지가 도장하여 꽃눈수가 감소하고, 병충해가 많고, 과실품질이 저하된다.

햇빛은 과수의 생장, 꽃눈형성, 착과 및 과일발육에 큰 영향을 주게 된다.

 

햇빛이 부족하면 동화물질의 축적이 적어져서 꽃눈형성과 결실이 불량해지고 과일의 비대는 나빠지게 된다.
 
충주는 일교차가 크고 일조량이 많아 전국 제일의 사과고장 입니다.    
 
약 300여년전 중국에서 사과가 들어오면서 시작된 우리 사과 재배의 역사 가운데 충주 사과는1912년 효시가 되어 현재 도내에서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며 재배되어 있으며 다른 생산지에 비해 일교차가 크고, 일조량이 풍부하여 빛깔, 당도, 향기에서 으뜸을 차지하고 있으며, 수려한 자연환경과 어울려 충주시민의 인내와 진실함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특산물임.

 

충주사과의 효능
 
- 과당, 포도당이 있어 흡수가 뛰어나 공복감을 해소
- 사과산, 주석산, 구연산의 성분으로 피로회복에 도움
- 비타민 함량이 풍부하여 흡연자, 만성치은염 보유자에게 효과
- 장운동, 정장작용에 뛰어난 효과와 유독물질 흡수에 방지
- 지방산, 콜레스테롤 성분이 없어 심장이 약한 분들에게 효과
- 펙틴물질이 혈액 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어 동맥경화나 고혈압 환자에게 효과
- 인슐린의 억제를 통한 당뇨증세의 환자에게 유리
- 설사나 변비환자에게 효과 
 


2.밤

 

밤의 영양

 

밤에는 전분,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무기성분, 비타민, 리파제가 함유되어 있고, 당질로는 서당과 전분이 많이 함유되어 있으며 단백질은 쌀에 비해서는 적게 들어 있습니다.

 

비타민류, 무기염류도 비교적 많이 들어 있고, 특히 비타민B1은 쌀에 비해 4배나 더 들어 있습니다. 비타민C도 과일나무를 제외한 나무열매 중에서는 가장 많이 함유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밤은 모든 영양소가 골고루 균형 있게 들어있는 좋은 식품입니다.
 
 
3.복숭아

 

복숭아의 한방효과
  

중국의 한무제는 불로장생에 대한 집착이 매우 강한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다각도로 장수할 방법을 찾던 그는 우연한 기회에 하늘로부터 복숭아 30개를 받는다.

 

이 중에는 한개만 먹어도 1천년을 살 수 있는 반도 복숭아 3개가 있었다. 반도는 천년에 한번씩 꽃이 피고, 삼천년에 한번 열매를 맺는다는 전설의 복숭아이다.

 

그러나 이를 미리 알고 있던 그의 신하 동방삭이 복숭아가 무제에게 가기 전에 반도 세 개를 모두 훔쳐 먹는다.나머지 복숭아 27개를 먹은 무제는 70세까지 살다 죽고, 동방삭은 삼천년을 살았다고 한다. 원숭이인 손오공이 그토록 오래 살 수 있었던 것도 반도 복숭아를 훔쳐 먹은 때문이란다. 
 
복숭아의 효능

 

복숭아는 미인과 연관이 크다. 달밤에 복숭아를 먹으면 미인이 되고, 복숭아잎 목욕은 피부를 곱게 해 준다는 말은 널리 알려져 있다. 복숭아를 굳이 달밤에 먹으라는 것은 사물이 보이기는 보이되 잘 보이지 않는 때를 택하라는 뜻이다.

 

요즘에는 먹는 것이든 입는 것이든 최고급품만 찾기 때문에 과일에 벌레가 있거나 상품에 흠이 있는 것은 값을 쳐주지 않는다. 그런데 복숭아는 과일 중 유난히 벌레가 많다. 잘 보이지 않는 때 복숭아를 먹으면 벌레도 같이 먹게 된다. 결국 복숭아 벌레도 같이 먹어야 미인이 된다는 뜻을 강하게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복숭아의 가공

 

복숭아잎 목욕은 복숭아잎을 달여서 욕탕에 넣고 하는 목욕이다. 여기에 목욕을 하면 땀띠 습진 등에 좋다. 농약이 묻지 않은 복숭아 잎을 그대로 목욕물에 넣어도 비슷한 효과를 볼 수 있다.

 

한방에서는 복숭아 씨를 도인이라 하여 가래를 삭일 때나 생리불순 생리통 등을 다스릴 때 쓴다. 혈액을 맑게 하고 위장기능을 개선하는 작용을 한다.

 

요즘 들어서는 복숭아가 담배의 독을 중화시키고 오존으로 인한 기관지 점막손상을 막는 효과도 있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과육에 들어있는 유기산이 니코틴의 독성을 없애 준다고 본다.

 

돼지고기를 먹고 체하면 새우젓을 먹듯, 다랑어 등 생선을 먹고 식중독에 걸렸을 때 복숭아를 껍질 째 먹으면 증세가 가라앉는다. 그러나 장어나 자라와는 음식궁합이 맞지 않다. 장어를 먹은 뒤 복숭아를 먹으면 설사를 한다.
 
 

4.고구마

 

충주 고구마 
   
- 전국 제일의 고구마묘 생산지
- 전열온상을 이용하여 조기 밤고구마 건묘육성으로 호당 20,000천원의 농가소득
- 가을철에는 다량의 무기질 함량으로 소비자의 기호를 충족시키는  밤고구마 생산으로 농가소득증대 

 

5.애플마

 

애플마의 특징 

 

예부터 마는 한약재료로 사용되었으며 충주의 좋은 자연환경 조건에서 재배, 생산된 둥근마는 영양이 풍부하고 웰빙(Well-Bing)에 걸맞는 최고의 자연건강식품입니다.
  
  
6.담배

 

연 혁
  

1910년을 전후하여 연초제조업이 크게 일어나 담배 연료인 황색종 잎담배의 수요가 급증하자 조선총독부 전매국에서는 황색종 재배를 계획하고 1910년 12월부터 산지조사를 실시했다.

 

결과 충주지역이 황색종 주산지인 북미의 버지니아주와 위도가 같고 여건이 비슷한데다 교통이 편리하고 수원이 풍부하여 연초 경작의 적지였기 때문에 황색종 재배 대상지로 선정되었다.

 

그리하여 1912년에는 충주에 사세국 출장소를 개설하고 251명의 경작인에게 황색종 14.7ha를 무료로 공급하고 대금을 지급하여 촌락경작을 시킨 것이 우리나라 황색종 재배의 시초가 되었다.
 
산지여건

 

충주는 충청북도의 북부에 위치하여 소백산맥의 영봉인 계명산, 남산, 대림산이 병풍모양으로 둘러싼 오동잎 모양의 분지를 이루고 있으며 오대산에서 발원하는 남한강과 속리산을 분수령으로 하는 달천강이 남북으로 관류하여 풍부한 수원을 이루고 유역의 평야는 곡창 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1912년 황색종 산지 선정 당시의 조사에서도 충주는 미국의 황색종 산지인 버지니아주와 위도가 같고 농작물에 큰 피해를 미치는 기후변동이 없었고 교통도 편리한데다 상당한 면적의 대평야는 지형과 배수가 양호하며 그 위에 연초경작에서 가장 꺼리는 철분이 없어서 황색종 산지로는 가장 적합한 지역으로 기록되고 있다
 
황색엽연초 주산단지

 

우리나라 담배는 17세기 초에 도입된 것으로 추정되며 중부권 지역에서 주로 재배되는 황색종은 1906년도에 도입되어 1911년 출장소를 개설, 담배경작을 권장하여 충주(구 중원군)를 중심으로 괴산, 청원군 일대가 담배 주산지 형성, 1959년 충주연초재건조장 설립, 1979년 현 충주담배원료공장설립, 그 동안 강원, 경기, 충남북 일대의 잎담배 수매·가공 등 중추기능 담당.
 


7.송이버섯

 

월악산송이의 특징
  

소나무 기운 빌려서 난 자연산 최고의 버섯! 산속의 황금소고기 자연송이에 대한 미식가들의 평가는 단연 최우수!

 

그러나 물과 공기, 토양의 풍수까지 삼양칠음이 맞아야 난다는 자연송이는 버섯의 귀족이라 불리울 만큼 신비로움과 가을철에만 돋아나는 특성 때문에 항상 미식가들의 아쉬움을 사고 있습니다. 특히 월악산송이는 다른 지역 송이에 비해 향이 좋기로 유명합니다.
 
송이버섯의 효능

 

송이 버섯은 성질이 서늘하고 열량이 적으면서도 맛이 좋아 몸에 열이 많거나 비만인 사람에게 권할 만합니다. 뿐만 아니라 피 속의 콜레스테롤 수치를 떨어뜨리고 혈액순환을 좋게 하므로 나이가 들면서 운동량과 기초대사량이 떨어져서 나타나는 동맥경화, 심장병, 당뇨병, 고지혈증 등에 좋은 식품입니다.

 

특히 송이버섯은 위와 장의 기능을 도와 주고 기운의 순환을 촉진해서 손발이 저리고 힘이 없거나 허리와 무릎이 시릴 때 좋습니다. 송이버섯에 있는 다당체는 항암작용을 하며 송이버섯의 부드러운 향은 동물 실험 결과 상종양성이 있음이 밝혀졌습니다. 또한 송이버섯은 당뇨병 뿐만 아니라 소화기 장애에도 좋고 병에 대한 저항력도 길러 주어 누구에게나 좋은 건강식품입니다.  
 
송이버섯의 성분

 

송이버섯은 버섯 중에서 수분함량이 89.9%로써 적은 편이다. 단백질 2.0%, 지방 0.5%, 탄수화물 6.7%, 섬유 0.8% 그밖에 비타민과 무기질이 들어 있습니다. 송이버섯에는 탄수화물, 섬유질, 비타민B2와 니아신이 비교적 많이 포함되어 있으며 다른 버섯류와 같이 에르고스테롤도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송이버섯은 무기질과 비타민이 풍부하여 종양억제 물질이 많이 함유되어 있다고 합니다.
 


8.게르마늄 추정쌀

 

풍부한 일조량과 토양이 기름진 충주지역에서 게르마늄성분이 함유된 유기농법으로 재배한 벼를 철저한 품질관리를 통해 선별, 가공하여 생산한 고품질 쌀입니다.

 
 

9.청명주

 

청명주는 1년 24절기의 하나인 청명일에 사용하기 위해 빚어진 민속주로 충북 충주시 가금면 창동 김해 김씨 문중기록인 항전록에 기록되어 있으며, 남한강 유역바닥 지하의 수살매기물에 의해 순찹쌀과 재래종 통밀로 제조한 누룩만을 사용, 인삼, 구기자, 갈근, 더덕, 탱자 등을 가미 하여 저온에서 약 100일 동안 발효, 숙성시켜 빚어지므로 알코올 농도가 높고 색, 향, 맛이 뛰어나다 했습니다. 
 
조선조시대에 한강 상류의 범선 집결지인 충주지방 일대에 오가는 가객들이 즐겨 마시기 시작하여 옛 사대부들을 위한 손님 접대용은 물론 명절과 기일에 제주로 애용하던 명주로 궁중에 진 상되기도 했습니다. 
 
전해 내려오고 있는 일화는 조선시대 때 과거길에 이곳에서 청명주 한잔을 마시고 길을 떠나면 문경새재 마루턱에 이르러 그 취기가 깨었다고 합니다.

 

현재 그 본래의 양조 비법이 이어져 내려와 김영기옹께서 1993년 6월 4일 청명주 제조기능 보유자 및 충청북도 무형문화재 제2호로 지정받아 그 고유의 맛을 재현시켜 맥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10.사과주

 

충주는 지역특성상 천혜의 자연조건을 가지고 있으며, 사과 생산지로 적합하며 사과의 명품화 및 맛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지역입니다.

 

특히 우리 중원양조는 충주댐의 사과 생산지를 중심으로 원료를 공급받아 사과를 100%로 원료로 하여 발효 및 숙성과정을 거쳐 생산되는 순수 사과주 입니다.

 

또한 숙성과정을 거쳐서 제조된 사과주는 부드럽고 향기로운 향을 통해 신선한 맛으로 호평 받고 있으며, 꾸준한 판매고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애플트리(12%) 사과주는 사과 그 자체의 발효주이며,청춘(20%)사과주는 알코올을 강화하여 소비자의 기호에 맞게 생산하는 고품격 사과주 입니다.

 

 

4)위에 빼고 충주시에 대해 더 중요한 것이 있다면 자세히 써주세요.(이게 제일 중요함ㅜ)

 

(충주의 문화재)

 

1.충주 탑평리 칠층석탑

 

종 목 국보 제6호  

지 정 일 1962.12.20

소 재 지 충북 충주시 가금면 탑평리 11

시 대 통일신라

 

남한강의 아름다운 경관과 잘 어우러져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으로, 당시에 세워진 석탑 중 가장 규모가 크다. 우리나라의 중앙부에 위치한다고 해서 중앙탑(中央塔)이라고도 부르는 이 탑은 2단의 기단 위에 7층의 탑신을 올린 모습이다.

 

높은 탑신을 받치기 위해 넓게 시작되는 기단은 각 면마다 여러 개의 기둥 모양을 새겨 놓았고, 탑신부의 각 층 몸돌 역시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의 조각을 두었다. 몸돌을 덮고 있는 지붕돌은 네 귀퉁이 끝이 경쾌하게 치켜올려 있어 자칫 무겁게 보일 수 있는 탑에 활기를 주고 있으며, 밑면에는 5단씩의 받침을 새겨 놓았다. 탑 정상의 머리장식은 보통 하나의 받침돌 위에 머리장식이 얹어지는 신라 석탑의 전형적인 양식에서 벗어나, 이중으로 포개어진 똑같은 모양의 받침돌이 머리장식을 받쳐주고 있다.

 

기단에서의 기둥조각 배치, 탑신의 몸돌과 지붕돌의 짜임수법으로 보아 통일신라 후기인 8세기 후반에 세웠을 것으로 추측된다. 전체적으로 규모가 커서 웅장하기는 하나 너비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듯 하여 안정감은 덜하며, 세부수법이 약화되고 섬약해져 있어 당시의 경향이 그대로 나타나 있다.

 

1917년 탑을 보수할 때 6층 몸돌과 기단 밑에서 사리장치와 유물이 발견되었는데, 특히 6층 몸돌에서 발견된 거울이 고려시대의 것으로 밝혀져 탑 조성 이후 고려시대에 와서 2차 봉안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2.청룡사 보각국사 정혜원륭탑

 

종 목  국보  제197호 
지 정 일 1979.05.22
소 재 지 충북 충주시  소태면 오량리 산32-2 
시 대 조선시대


청계산 중턱의 청룡사에 자리한 부도로, 보각국사의 사리를 모셔놓았다. 보각국사(1320∼1392)는 고려 후기의 승려로, 12세에 어머니의 권유로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으며, 이후 불교의 경전을 두루 연구하여 높은 명성을 떨치었다. 특히 계율을 굳게 지키고 도를 지킴에 조심하였으며, 문장과 글씨에도 능하였다. 조선 태조 원년(1392)에 73세의 나이로 목숨을 다하자, 왕은 '보각'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탑이름을 ‘정혜원륭’이라 내리어 탑을 세우도록 하였다.

 

탑은 전체가 8각으로 조성되었는데, 바닥돌 위에 아래·가운데·윗받침돌을 얹어 기단을 마련하고 그 위로 탑몸돌과 지붕돌을 올려 탑신을 완성하였다. 기단은 모서리를 둥글게 처리한 8각으로, 아래받침돌에는 엎어놓은 연꽃무늬를, 윗받침돌에는 솟은 연꽃무늬를 새겼다. 가운데돌에는 사자상과 구름에 휩싸인 용의 모습을 교대로 새겼다. 탑신의 몸돌은 각 면마다 무기를 들고 서 있는 신장상을 정교하게 새겨 놓았으며, 그 사이마다 새겨진 기둥에는 위로 날아오르는 이무기의 모습을 역동적으로 표현하였다. 지붕돌은 여덟 귀퉁이에서 높이 들려있는데 마치 목조건축의 아름다운 지붕 곡선이 살아난 듯하다.

 

태조 3년(1394)에 완성을 보게 된 이 부도는 양식상 종모양이 주류를 이루던 시기에 8각의 평면을 이루는 형식으로 건립된 몇 안되는 부도 가운데 하나로, 조선시대 전기 조형미술의 표본이 되는 귀중한 유물이다. 또한 탑 가득히 새겨진 조각과 둥글게 부풀린 외형이 어우러져 화려함을 더해주고 있다. 탑신의 기둥과 지붕의 곡선, 그리고 지붕 귀퉁이의 용머리조각 등에서 목조건축의 양식을 엿볼 수 있어 당시의 건축과 비교하여 감상할 만하다.

 

3.충주 고구려비

 

종 목 국보 제205호

지 정 일 1981.03.18

소 재 지 충북 충주시 가금면 용전리 입석부락 280-11

시 대 고구려

 

국내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고구려 석비로, 장수왕이 남한강 유역의 여러 성을 공략하여 개척한 후 세운 기념비로 추정된다. 1979년 입석마을 입구에서 발견되었는데, 오랜 세월이 흐르기도 했지만 비의 중요성을 몰랐던 동네 주민들이 우물가의 빨래판으로 사용하기도 하여 발견된 당시 비문이 심하게 훼손되어 있었다.

 

석비는 돌기둥 모양의 자연석을 이용하여 4면에 모두 글을 새겼는데, 그 형태가 만주에 있는 광개토대왕비와 비슷하다. 비문은 심하게 닳아 앞면과 왼쪽 측면 일부만 읽을 수 있는 상태로, 내용 중 처음에 ‘고려대왕’이라는 글자가 보이는데 여기에서 고려는 고구려를 뜻한다. ‘전부대사자’·‘제위’·‘사자’ 등 고구려 관직 이름과 광개토대왕 비문에서와 같이 ‘고모루성’등의 글자가 보이고, ‘모인삼백’·‘신라토내’ 등 고구려가 신라를 불렀던 말들이 쓰여 있어 고구려비임을 확인하게 되었다.

 

고구려 영토의 경계를 표시하는 비로, 백제의 수도인 한성을 함락하고 한반도의 중부지역까지 장악하여 그 영토가 충주지역에까지 확장되었음을 말해준다. 또한 역사적으로 고구려와 신라, 백제 3국의 관계를 밝혀주는 귀중한 자료로서,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유일한 고구려비라는 점에서 커다란 역사적 가치를 지닌다.

 

4.억정사 대지국사 비


종 목  보물  제16호  
지 정 일 1963.01.21
소 재 지 충북 충주시  엄정면 괴동리 360-1 
시 대 조선시대


억정사에 전해오는 비로, 고려의 승려인 대지국사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직사각형의 비받침 위에, 비문을 새긴 몸돌이 올려진 단순한 형태로, 몸돌 윗쪽의 양 끝을 사선으로 잘라냈을 뿐 다른 꾸밈은 없다. 비몸돌의 네 면에는 해서체로 비문이 새겨져 있다.

 

비문에는 대지국사가 고려 충숙왕 15년(1328)에 태어나 14세에 출가하고 공양왕 2년(1390) 입적할 때까지의 행적을 기록하고, 대사의 인품과 학력을 기리는 내용이 실려 있다. 비문은 박의중이 짓고, 승려인 선진이 글씨를 썼으며, 혜공이 새겼다. 힘차고 굳센 필체로 짜임도 우수하다.

 

4년에 걸쳐 만들어진 이 비는 고려말에서 조선초에 걸친 과도기적 작품으로, 조형상 별다른 특색이 없는 간략한 형식이다. 

 

5.정토사 법경대사 자등탑비

 

종 목  보물  제17호 
지 정 일 1963.01.21
소 재 지 충북 충주시  동량면 하천리 177-6 
시 대 고려시대


정토사터에 전하고 있는 비로, 신라말·고려초의 승려 법경대사를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정토사는 신라말에서 고려초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며, 법경대사가 이 절의 주지가 되어 많은 제자들을 양성하다가 태조 24년(941)에 입적하자, 그의 뒤를 이어 홍법대사가 후학들을 지도하였다.

 

비는 전체적으로 보존이 잘 되어 있으며, 당시의 양식을 잘 따르고 있어, 비받침에 새겨진 거북조각이나 머릿돌의 용조각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머릿돌 앞면의 중앙에는 ‘법경대사’라는 비의 명칭이 새겨져 있고, 비의 몸돌에는 대사의 행적이 자세히 새겨져 있다.

 

법경대사는 통일신라 헌강왕 5년(879)에 태어나 어려서부터 불교의 법을 배워 20세에 불가에 입문하였다. 906년에 당나라에 들어가 도건대사에게 가르침을 받고, 924년에 귀국하였다. 경애왕은 그를 국사로 대우하여 정토사의 주지로 임명하였고, 고려 태조 24년(941)에 63세로 입적하자 태조는 시호를 ‘법경’, 탑이름을 ‘자등’이라 내렸다.

 

태조 26년(943)에 그의 공덕을 칭송하기 위해 이 비를 세웠고, 비문은 당시의 문장가 최언위가 지었으며, 유명한 서예가였던 구족달이 글씨를 썼다. 함께 서 있었을 사리탑은 일본으로 반출되어 이곳에 남아 있지 않다.

 

6.괴산 미륵리 오층석탑

 

종 목  보물  제95호  
지 정 일 1963.01.21
소 재 지 충북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 56 
시 대 고려시대


이 곳에는 고려시대의 석불과 석굴이 만들어졌던 흔적이 남아 있고, 그 앞쪽에 석등과 더불어 이 석탑이 남아 있다.

 

석탑은 기단부의 아래부분이 땅 속에 파묻혀 있어서, 그 구조가 어떤지를 정확히 확인할 수 없다. 드러난 부분은 자연석에 가까운 네모난 돌로 특별하게 장식을 하지 않았으며, 그 위로 기단의 맨윗돌이 올려져있다. 탑신은 1층 지붕돌이 2장일 뿐 몸돌이나 다른 지붕돌은 모두 1장의 돌로 되어 있다. 각 층의 몸돌에는 몸돌의 넓이에 비하여 좁은 기둥을 모서리에 새겼다. 지붕돌은 급격하게 좁아져 석탑 전체의 균형과 미관을 손상시키고 있다. 지붕 밑면의 받침은 5단이지만 추녀가 짧아서 6단인 것처럼 보인다. 처마는 수평이고 지붕돌의 경사는 매우 급한데 귀퉁이의 치켜올림은 거의 없는 편이다.

 

탑의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으로 노반(머리장식받침)과 복발(엎어놓은 그릇모양의 장식)이 남아 있는데, 노반은 6층 지붕돌로 보일 만큼 큼직하고, 복발은 반원 모양이다. 정상에는 머리장식의 중심을 지탱하기 위해 세운 긴 쇠꼬챙이모양의 찰간이 남아있다.

 

5단의 지붕돌 밑면받침과 직선의 처마는 신라시대 석탑의 양식을 따른 것인데, 지붕돌의 급경사와 형식적인 기둥새김 등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세워진 탑으로 보인다.

 

7.괴산 미륵리 석불입상

 

종 목  보물  제96호 
지 정 일 1963.01.21
소 재 지 충북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 58 
시 대 고려시대


고려 초기 이 부근에서 많이 만들어진 일련의 커다란 불상들과 양식적 특징을 같이하는 석불입상이다.

 

전설에 따르면 신라말 마의태자가 나라의 멸망을 비통하게 여기며 이곳까지 와서 불상을 만들고 개골산으로 들어갔으며, 그 여동생은 덕주사마애불(보물 제406호)을 만들었다고 한다.

 

모두 5개의 돌을 이용하여 불상을 만들고 1개의 얇은 돌로써 갓을 삼았다. 둥근 얼굴에 활모양의 눈썹, 긴 살구씨 모양의 눈, 넓적한 코, 두터운 입술 등은 고려 초기 커다란 불상의 지방화된 양식을 잘 반영하고 있다. 신체는 단순한 옷주름의 표현이라든가 구슬같은 것을 잡고 있는 손의 묘사 등에서 얼굴과는 대조적으로 간략함을 느낄 수 있다.

 

이 불상의 대담하고 거대한 모습으로 보아 새로 일어난 국력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것임에 틀림없을 것 같다.

 

8.충주 철조여래좌상

 

종 목  보물  제98호 

지 정 일 1963.01.21
소 재 지 충북 충주시  지현동 269 대원사 
시 대 고려시대


높이 0.98m의 철로 만든 불상으로 단호사 철불좌상(보물 제512호)과 같은 양식이며 더욱 엄격미가 강조된 점이 특징이다.

 

머리에는 날카롭고 뾰족한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정수리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있다. 삼각형에 가까운 얼굴, 길고 넓은 눈, 꽉 다문 입가로 내려오는 팔자형의 주름 등에서 근엄한 인상을 보여주고 있다. 당당한 상체와 무릎을 넓게하고 앉은 자세 등 몸의 균형이 비교적 잘 잡혔지만, 팽팽하면서도 과장된 표현을 하고 있다. 양 어깨에 걸쳐 입은 옷은 좌우대칭을 지키면서 기하학적 옷주름선을 규칙적으로 표현하였으며 엄격성을 강조하고 있다.

 

통일신라 후기부터 고려 초기에 걸쳐 유행하던 철로 만들어진 불상 가운데 하나로 도식화된 표현으로 볼 때 고려 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9.단호사 철불좌상

 

종 목  보물  제512호 
지 정 일 1969.07.18
소 재 지 충북 충주시  단월동 455 단호사 
시 대 고려시대


단호사 대웅전에 모셔져 있는 철불좌상이다. 단호사는 창건연대를 알 수 없으나 조선 숙종 때 중건하여 약사라 하였고, 1954년에 단호사로 이름을 바꾸어 사용하고 있다.

 

머리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큼직하게 자리잡고 있으며, 머리 가운데에는 고려시대 불상에서 자주 보이는 반달 모양을 표현하였다. 긴 타원형의 얼굴에는 눈·코·입이 단아하게 묘사되었으며 두 귀는 길게 표현되고 목에는 3개의 주름이 분명하게 표현되었다. 양 어깨에 걸쳐 입은 옷은 다소 두꺼운 편이고 옷주름은 간략한 몇 개의 선으로 표현하고 있다. 특히 가슴에 묘사된 띠매듭은 고려말 조선초부터 나타나는 수평적인 처리에 근접하고 있다. 좁고 둥근 어깨와 평평한 가슴의 상체는 4각형의 각진 모습이다. 하체는 양 발을 무릎 위에 얹어 발바닥이 하늘을 향하고 있는 모습이며 무릎에 표현된 평행한 주름은 상당히 형식적이다.

 

얼굴부분의 세부 표현기법과 머리에 나타난 반달 모양 등은 고려시대 불상의 특징을 반영하고 있으며, 여기에 도식적이고 특이한 옷주름 처리, 각진 상체 표현 등 지방색이 더해진 작품이다.   

 

10.청룡사 보각국사 정혜원륭탑 전 사자석등


종 목  보물  제656호 
지 정 일 1979.05.22
소 재 지 충북 충주시  소태면 오량리 산32-2 
시 대 조선시대


청룡사는 언제 창건되었는지 뚜렷하게 알 수 없고, 현재 절의 옛모습을 짐작해 볼 방법이 없다. 옛터에는 석등과 함께 보각국사의 사리탑과 탑비만이 서 있을 뿐이며, 현재의 청룡사는 옛터의 북쪽에 자리잡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석등은 보각국사의 명복을 빌어 주기 위해 그의 사리탑 앞에 세워진 것으로,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을 중심으로 아래에는 이를 받쳐주는 3단의 받침을 두고, 위로는 지붕돌과 머리장식을 얹었다.

 

3단의 받침 가운데 아래받침돌은 앞을 향해 엎드려 있는 사자를 조각하였는데, 이 때문에 사자석등이라 부른다. 사자의 등에 얹어진 가운데받침은 기둥모양으로 4각의 낮은 돌을 두었다. 화사석은 4각으로, 네 모서리를 둥근기둥처럼 조각하였고, 앞뒤로 2개의 창을 내었다. 지붕돌은 네 귀퉁이마다 자그마한 꽃을 돌출되게 조각해 놓았으며, 낙수면의 경사가 급하고 네 모서리선이 두터워 고려시대의 지붕돌 양식을 잘 보여준다.

 

절터에서 석등을 사리탑, 탑비와 나란히 세운 것은 조선시대의 배치방식이다. 탑비에 새겨진 기록으로 미루어 이 석등은 조선 전기인 태조 1년(1392)부터 그 이듬해인 1393년에 걸쳐 세워진 것으로 추측된다. 

 

11.청룡사 보각국사 정혜원륭탑비

 

종 목  보물  제658호 
지 정 일 1979.05.22
소 재 지 충북 충주시  소태면 오량리 산32-2 
시 대 조선시대


청룡사 옛터에 남아 있는 비로,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활약한 승려인 보각국사를 기리기 위해 세웠다.

 

보각국사 혼수(1320∼1392)는 도를 지킴에 조심하고, 특히 계율을 따를 것을 강조하였으며, 문장과 글씨에도 능하였다. 12세에 출가하여 22세 때에는 승과에 급제하였으며, 29세 때에는 금강산으로 들어갔다가 이후 청룡사로 옮겨가 머물렀다. 여러 명산을 두루 돌아다니며 수도하다가 조선 태조 1년(1392) 청룡사로 돌아와 73세에 입적하니, 태조는 시호를 내려 ‘보각국사’라 하고, 탑이름을 ‘정혜원융’이라 하였으며, 청룡사에 대사찰을 조성하도록 하였다.

 

비는 1장의 돌로 된 네모난 받침돌 위에 비몸돌이 서 있는데, 위로 머릿돌을 따로 얹지 않고, 몸돌 양 귀퉁이를 접듯이 깎아 마무리해 놓았다.

 

조선 태조 3년(1394) 문인선사 희달이 왕의 명을 받아 세운 것으로, 권근이 비문을 짓고, 승려 천택이 글씨를 썼다. 글씨에서는 힘이 느껴지고, 예스러운 순박함과 신비스러움이 함께 어우러져 있어 중국의 어느 명품에도 뒤지지 않을 만큼 품격을 지니고 있다. 이는 이후 조선시대를 통하여 이에 대적할 만한 것이 없을 만큼 돋보이는 면이라 할 수 있다. 

 

12.봉황리 마애불상군

 

종 목  보물  제1401호 
지 정 일 2004.03.03
소 재 지 충북 충주시  가금면 봉황리 산27 
시 대 삼국시대


산비탈 두 곳의 커다란 암벽에 시기를 약간 달리하여 부조(浮彫)로 조각되어 있는 9구의 불·보살상이다.

 

상부에는 높이 3.5m, 폭 8m의 바위면에 불좌상 1구가 양각되어 있고, 하부에는 불좌상 1구와 공양상·반가상을 중심으로 5구의 보살상 등 모두 8구가 새겨져 있다.

 

비바람에 의한 마멸로 부분에 걸쳐 윤곽이 뚜렷하지 않지만, 마애불상 중 비교적 초기의 예로 한강유역과 낙동강유역을 연결하는 중간지역이라는 특수한 역사적·지정학적 배경을 바탕으로 조성되었다. 이 마애불상군은 신라시대 불상조각의 흐름은 물론 고구려 불상의 경향까지도 함께 보여주는 매우 귀한 자료로 그 학술적 가치가 높다.

 

13.충주 백운암 철조여래좌상

 

종 목  보물  제1527호 
지 정 일 2007.10.24
소 재 지 충북 충주시  엄정면 괴동리 223-2 
시 대 통일신라


충주시에 소재한 백운암은 1886년 무당의 신분으로 진령군이라는 작호를 받아 여자 대감이 된 윤씨에 의하여 창건된 사찰로 전해진다. 이 사찰에서 주존불로 봉안하고 있는 이 철불은 원래 이곳에서 전하던 불상은 아닌데, 인근에 고려시대 대규모 사지인 억정사지가 있어서 아마도 이곳에서 옮겨온 것이 아닌가 추정되고 있다. 충주는 철의 산지로 백운암의 철조여래좌상 이외에도 대원사의 충주 철불좌상(보물 제 98호)과 단호사의 철불좌상(보물 제 512호)이 전하고 있어서, 이 세 구의 철불은 충주 지방의 3대 철불로 알려져 있다.

 

백운암의 철조여래좌상은 통일신라 8세기 석굴암 본존상 이래로 유행한 편단우견의 항마촉지인 여래 좌상으로, 규모는 높이 87㎝정도의 크지 않은 상이다. 얼굴은 몸 전체에 비해 작은 편이나 이목구비의 표현이 뚜렷하고 근엄한 표정이 잘 표현되어 있다. 목에는 삼도가 보이고 어깨가 넓으며 가슴이 융기되었고, 결가부좌한 다리의 폭이 넓어서 당당한 자세를 보인다. 몸의 표현이 전체적으로 양감있게 조각되었고 대의 자락에서 부분적으로 번파식 옷주름을 볼 수 있어서 이 불상이 통일신라 8세기 양식을 반영하고 있는 상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양감이 8세기 불상만큼 풍부한 것은 아니며 항마촉지인의 수인도 전형적인 형식이 아니어서 8세기보다는 시대가 내려가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조성 시기는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 정도로 추정된다.

 

이 철조여래좌상은 비교적 통일신라 불상 양식의 특징을 많이 간직하고 있어 충주 지역 철불 중에서는 가장 연대가 올라가는 상으로 추정된다. 또한 상호도 원만하며 전체적으로 크게 손상된 부분이 없고 조각 양식도 좋은 편으로, 통일신라시대 이래 철불 연구에 매우 중요한 상이다. 

 

14.임충민공 충렬사

 

종 목 사적 제189호

지 정 일 1969.11.21

소 재 지 충북 충주시 단월동 385-1

시 대 조선시대

 

 충민공 임경업(1594∼1646)장군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숙종 23년(1679)에 사당을 세웠고, 1706년에 장군에게 충민이라는 이름을 내렸다. 영조 3년(1727)에는 사당 이름을 충렬사라 했다.

 

임경업 장군은 선조 27년(1594) 충주에서 태어나 인조 2년(1624) 이괄의 난 때 큰 공을 세웠다. 특히 병자호란 때 백마산성과 의주성을 다시 쌓아 국방을 강화하는 등 나라에 이바지한 바가 컸다. 명나라를 숭상하던 장군은 인조 30년(1642) 명나라가 청나라에게 위협을 받게되자 명군과 협력해 청에 대항하고자 했으나 계획이 탄로나 청군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청나라는 장군에게 여러 제의를 하면서 포섭하려 했으나 끝까지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 후 1646년 국내의 ‘심기원의 모반 사건’에 억울하게 연관되어 감옥에서 혹독한 고문을 받고 피살되었다.

 

현재 충렬사에는 장군이 사용했던 유품을 전시하고 있으며, 사당 앞 왼쪽에는 장군 부인의 곧은 절개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정부인완산이씨 정렬비’가 있다.

 

15.중원 미륵리사지


종 목  사적  제317호 
지 정 일 1987.07.18
소 재 지 충북 충주시  상모면 미륵리 58 
시 대 통일신라


고지대에 위치한 미륵리사지는 석불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석굴사원터이다.

 

거대한 돌을 이용해 석굴을 쌓은 후 불상을 모셨으며, 위에 목조건물이 있었던 자취가 있으나 지금은 남아있지 않다. 조사결과 ‘미륵당초’라고 새겨진 기와가 나와 연대를 통일신라 후기에서 고려 전기로 추정한다. 석불입상(보물 제96호)·5층석탑(보물 제95호)·석등·당간지주 등 중요한 문화재들이 남아있다.

 

전설에 의하면 신라 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가 나라가 망함을 슬퍼해 금강산으로 갔는데, 도중에 누이인 덕주공주는 월악산에 덕주사를 지어 남쪽을 바라보도록 돌에 마애불을 만들었고, 태자는 이곳에서 석굴을 지어 북쪽을 향해 덕주사를 바라보게 하였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북쪽을 바라보는 특이한 구조를 가진 절터이며, 석굴사원으로서 방식은 다르지만 석굴암을 모방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16.충주 장미산성

 

종 목  사적  제400호 
지 정 일 1997.11.11
소 재 지 충북 충주시  가금면 장천리 산77-1외 
시 대 고구려


충주시 가금면에 있는 장미산의 능선을 따라 둘러 쌓은 둘레 약 2.9㎞의 삼국시대 산성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14권에 보면 ‘하천 서쪽 28리에 옛 석성이 있다’라는 기록과 『대동지지』에 ‘장미산의 옛 성의 터가 남아 있다’라는 기록이 있다. 1992년 조사결과 성 안에서 발견된 토기 조각과 기와 조각들을 통해 백제·고구려·신라가 차례로 이 성을 점령, 경영하였음을 짐작하게 해준다.

 

북쪽에 있는 절인 봉학사 지역 일부를 빼고는 성벽이 원래 모습대로 남아 있다. 성벽은 돌을 대강 다듬어 직사각형으로 쌓았는데, 서쪽과 서남쪽에서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북쪽 정상부분의 성벽을 따라 있는 좁고 긴 군사용 참호는 주변 성벽의 재료를 이용해 만든 것으로 보인다.

 

남쪽의 대림산성과 강 건너편 탄금대의 토성, 충주산성과 서로를 보호하며 도왔을 것으로 보인다.

 

파주의 오두산성(사적 제351호)과 지형조건이 비슷해 성을 쌓은 시대나 배경 등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유적이다.

 

17.충주 숭선사지

 

종 목  사적  제445호  
지 정 일 2003.04.25
소 재 지 충북 충주시  신니면 문숭리 862-2외 
시 대 고려시대


숭선사는 고려 광종 5년(954)에 광종이 어머니인 신명순성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세운 절이다. 절터 부근에서 발견된 '숭선사'라고 씌여진 기와를 토대로 이곳이 '숭선사'였음을 알 수 있다.

 

충북대학교 박물관의 3차(2000∼2002)에 걸친 발굴조사 결과, 금당 외 탑지, 회랑지 등의 유구가 확인되었다. 초창 이후 3차례에 걸쳐 중수된 것으로 추정된다.

 

사원배치는 전형적인 고려시대의 양식으로 남문지·탑지·금당지·영당지·회랑지·동문지 등의 건물지가 확연하며, 건물의 세부적인 유구는 건물 기단부의 화강암 석축기단·주초석·적심석·석축배수로·전돌포장, 답도, 탑의 적심, 우물, 온돌 등이 원래의 모습으로 보존되고 있어 고려시대의 건축유적으로서의 보존이 필요하며 한국건축사사료로서 매우 큰 가치를 지니고 있다.

 

18.누암리 고분군


종 목  사적  제463호 
지 정 일 2005.03.25
소 재 지 충북 충주시  가금면 누암리 산41 외 일원 
시 대 신라


신라말기에 조성된 이 고분군은 신라 진흥왕이 충주지방까지 그 영역을 확대한 후 중원소경을 설치하고자 귀척들을 이주시켜 한강유적을 경영하고자 하였던 사실을 증명하는 유적으로서, 누암리 일대에만 230여기의 고분이 위치하고 있다.

 

발굴된 26기의 고분 가운데 주류를 이루는 것은 굴식돌방무덤이고 앞트기식돌덧널무덤 2기, 소형의 구덩식돌덧널무덤 3기를 제외한 나머지는 외방무덤임이 확인되었다.

 

출토된 유물로는 짧은굽다리접시, 바리, 합, 항아리 등의 후기신라양식 토기류와 쇠손칼, 덩이쇠 등의 철기루, 청동제띠끝장식, 금동제귀고리 등의 장신구류, 가락바퀴 등의 토제품이 있다.

 

19.탄금대


종 목  명승  제42호 
지 정 일 2008.07.09
소 재 지 충북 충주시  칠금동 산1-1번지 등 
시 대 삼국시대


충주 탄금대는 우리나라 3대 악성 중 하나인 우륵이 가야금을 연주하던 곳이라 하여 탄금대란 명칭이 붙은 곳이며 임진왜란 때 신립장군이 소서행장과 맞서 싸우다 패전하자 투신한 곳으로 역사적 가치가 큰 명소이다.

 

남한강이 절벽을 따라 휘감아 돌고 울창한 송림이 우거져 있어 경관이 아름답고, 대에서 조망되는 남한강과 계명산, 남산 및 충주 시가지와 넓은 평야지대가 그림같이 펼쳐져 절경을 자아내고 있는 곳이다. 

 

20.충주 계립령로 하늘재


종 목  명승  제49호 
지 정 일 2008.12.26
소 재 지 충북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 산 8번지 등 
시 대  삼국시대

 
계립령은 『삼국사기』에 신라 아달라왕 3년(156년)에 길이 열렸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고구려와 백제의 영토 분쟁 역사가 전해오는 오랜 역사의 옛길로, ‘하늘재’는 계립령 중 미륵리 절터에서 문경으로 넘어가는 고개의 이름이다.

 

옛길을 따라 형성되어 있는 작은 계곡과 주변에 펼쳐지는 월악산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이 옛길의 정취를 더해주는 역사적, 경관적 가치가 큰 명승지이다.

 

21.중원 윤민걸 가옥


종 목  중요민속문화재  제135호 
지 정 일 1984.01.14
소 재 지 충북 충주시  엄정면 미내리 133 
시 대 조선시대

 

앞으로는 개울이 흐르고 뒤로는 낮은 동산을 두르고 있는 곳에 자리잡은 집이다. 원래는 대문을 들어서면 행랑채에 나 있던 중문을 통해 사랑채로 출입하였는데, 행랑채와 중간 담이 모두 무너져 현재는 대문을 들어서면 바로 사랑채이다.

 

사랑채는 별당처럼 구성되었는데 앞·뒤 모두 툇마루가 있으며, 마루방과 툇마루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구들을 설비한 방이다. 안채는 사랑채의 왼쪽으로 자리하였다. 부엌·안방·대청·건넌방이 배열된 안채는 건넌방의 앞쪽으로 작은 부엌을 만들어 불을 지피게 한 'ㄱ'자형 구조이다. 안마당을 가운데에 두고 안채의 왼쪽에 아래채가 있는데, 뜰아랫방과 곳간으로 되어있다. 안채 뒤쪽으로는 담장과 문이 없어진 상태의 사당이 자리한다. 방·부엌·광으로 이루어진 광채는 안채의 오른쪽에 있으며, 광채와 사랑채 사이에는 쪽문이 있어 사랑후원과 뒤뜰을 연결하고 있다.

 

이 집에는 다양한 외부공간이 구성되어 짜임새 있는 공간을 형성하고 있다. 대략 19세기 중엽에 세워진 집으로 추정되며, 충주댐 건설로 인근의 중요한 집들이 옮겨져 다시 지어지거나 없어져서 이제는 이만한 집조차 볼 수 없게 되어 지정·보존하게 되었다. 같은 중부지방의 집이나, 서해안 일대의 집들과는 다른 성격을 보이고 있어 학술적인 가치가 있다.
 

 

22.이응해장군 묘 출토 복식


종 목  중요민속문화재 제246호 
지 정 일 2006.09.15
소 재 지 충북 충주시  가금면 탑평리 47 충주박물관 
시 대 조선시대

 

이응해(1547~1627)는 1613년(광해 5년) 전라도 병마절도사를 지낸 무관으로 지난 2002년 묘를 이장하는 과정에서 다량의 복식류 등이 출토되어 충주시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출토된 유물은 복식류와 함께 이불, 자리 등의 치관류 등 총 34점이다. 복식류는 창의(조선시대 사대부들의 평상복)를 비롯한 다양한 형태의 17세기 남성 복식류로, 대부분이 봉황문과 다양한 꽃무늬, 구름무늬 등이 장식된 견직물로 제작되었으며, 남성용 복식류임에도 불구하고 의복의 구성이 화려해 피장자인 이응해의 생전 심미안을 짐작할 수 있는 격조 높은 옷들로 평가된다. 특히, 단령(조선시대 관복으로 깃이 둥글며 소매가 넓고 길이가 길어 발까지 내려옴) 안은 화려한 꽃무늬가 펼쳐진 비단이며, 겉은 안이 비치는 얇은 숙초(삶은 명주실로 짠 견직물)로 제작되어 매우 귀한 자료이다.

 

복식류에 사용된 바느질법은 홈질, 감침질, 시침질, 박음질 등으로 다양하며, 특히 정교한 옛쌈솔 바느질법이 주목된다. 옛쌈솔은 조선전기 철릭이나 단령 등 곱고 가는 홑옷의 배래나 옷감의 곧은선(직선)과 어스선(사선)을 연결할 때 사용하던 바느질로 매우 정교하여 많은 정성이 드는 바느질법으로 알려져 있다.

 

이응해 묘에서 출토된 복식의 대부분은 겉옷인 포류로 직령, 창의, 방령, 단령 등 그 종류도 다양하여 임진왜란 이후 남성 겉옷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특히 이응해는 우리나라 복식 변천의 격동기라고 할 수 있는 임진왜란 전후에 생존한 인물로 당시 복식 변천을 살필 수 있는 자료로써 가치가 크다.

 

23.중원 창동 오층석탑


종 목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8호

지 정 일 1975.08.20
소 재 지 충북 충주시  가금면 창동리 243 
시 대  고려시대


중원탑평리칠층석탑(국보 제6호)에서 남쪽으로 2㎞쯤 되는 지점에 자리한 5층 석탑으로, 원래는 민가의 뒷뜰에 있던 것을 100여m 남쪽으로 옮겨 복원해 놓은 것이다.

 

2층 기단 위에 5층의 탑신을 올린 모습이며, 현재 맨 위의 머리장식이 없어진 채 그 받침돌만 남아 있다. 위로 오를수록 조금씩 규모가 줄어드는 탑신의 각 몸돌에는 네 모서리마다 기둥모양의 조각을 두었다. 지붕돌과 몸돌은 각기 다른 돌로 조성되어 있는데 5층에서만은 한 돌로 되어 있어 흥미롭다. 지붕은 네 귀퉁이가 부드럽게 치켜올라갔고, 위로 올라갈수록 밑면의 받침수가 줄어드는 특징을 보인다. 이 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기단 위에 두툼한 괴임돌을 끼워 탑신의 1층 몸돌을 받치고 있는 것과 각 층 지붕돌 위에도 비슷한 괴임을 표현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장식이 거의 없는 탑신에 작은 변화를 주고 있다.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이 탑은, 섬세한 조각은 볼 수 없지만, 전체적으로 구성이 간략화되고 대범하여 고려인의 기상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24.중원 미륵리 석등


종 목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9호

지 정 일 1976.12.21
소 재 지 충북 충주시  상모면 미륵리 56 
시 대 고려시대


월악산을 바라보며 서 있는 괴산미륵리석불입상(보물 제96호)과 괴산미륵리오층석탑(보물 제95호)의 중간에 놓여 있는 석등이다.

 

각 부분이 8각의 평면을 기본으로 하고 있으며, 상·중·하로 이루어진 3단의 받침을 마련하여 불을 밝히는 화사석을 올린 후 지붕돌과 머리장식을 얹은 모습이다. 바닥돌과 아래받침돌은 한 돌로 이루어졌으며, 아래받침돌에는 엎어놓은 연꽃무늬를 둘렀다. 가운데기둥은 적당한 높이에 간결한 모습이다. 윗받침돌에는 아래받침돌과 대칭되는 연꽃무늬를 조각하였다. 화사석은 불빛이 퍼지도록 4면에 창을 내었다. 지붕돌은 여덟 귀퉁이가 살짝 치켜올려졌다. 꼭대기에는 8각의 낮은 받침 위에 보주(寶珠:꽃봉오리모양의 장식)를 얹어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함께 서 있는 석불입상, 5층 석탑과 함께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짐작된다.
 


25.중원 미륵리 삼층석탑


종 목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33호

지 정 일 1976.12.21
소 재 지 충북 충주시  상모면 미륵리 58 
시 대 고려시대


석굴이 있는 미륵사터 경내에서 동쪽으로 500m쯤 떨어진 곳에 자리한 고려시대 3층 석탑이다. 이곳이 원래의 터로 추정되는데 절터와 멀리 떨어진 곳에 왜 탑을 세웠는지는 알 수 없다.

 

탑은 2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리고 머리장식을 얹은 모습이다. 위 ·아래층 기단과 탑신의 몸돌에는 기둥 모양을 조각하였다. 탑신은 1층 몸돌에 비하여 2층 몸돌의 높이가 많이 줄어들었고,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4단씩이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을 받치던 네모난 받침돌만 남아 있다.

 

전체적으로 통일신라 석탑의 전형을 충실히 따르고 있지만 시대가 고려로 내려옴으로 인해 지붕돌 밑면받침 수가 4단으로 줄어드는 등 후대의 양식이 나타난다. 대체로 소박하고 단아한 모습을 갖추었다. 

 

26.청령헌


종 목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66호

지 정 일 1980.11.13
소 재 지 충북 충주시  성내동 154-1 
시 대 조선시대


동헌은 옛 관청인 관아에서 업무를 처리하던 중심건물을 가리킨다.

 

이 건물은 충주목 동헌으로, 당시 충주 목사가 이곳에서 집무를 보던 곳이다. 조선 고종 7년(1870) 화재로 타버린 것을 같은 해 조병로가 다시 세웠다고 한다. 지금 있는 건물은 중원군 청사로 개조하여 사용하다가 1983년 군청 자리를 옮기면서 원형으로 복원하였다.

 

앞면 7칸·옆면 4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가운데 3칸은 대청, 오른쪽 끝 1칸은 마루방, 대청 왼쪽 2칸은 온돌방, 왼쪽 끝 1칸은 누마루로 구성되어 있다. 

 

27.중원 창동 마애불


종 목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76호

지 정 일 1980.11.13
소 재 지 충북 충주시  가금면 창동 240 
시 대  고려시대


충청북도 충주시 가금면에 있으며 자연 암벽 위에 얕은 선으로 새겨진 마애불로 연꽃무늬가 새겨진 대좌 위에 서 있다.

 

크고 길게 찢어진 눈꼬리, 큼직한 코와 귀 등에서 근엄한 인상을 풍긴다. 양 어깨에 걸친 옷에는 3가닥의 선으로 새긴 것과 더불어 구불구불한 선으로 새긴 특이한 형태의 옷주름이 표현되어 있다.

 

토속적인 분위기와 세련되지 못한 세부 표현, 하체 조각이 생략된 기법, 구불구불한 선 모양 등 이 지방에서 많이 보이는 독특한 지방양식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28.청룡사 위전비


종 목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42호

지 정 일 2004.09.27
소 재 지 충북 충주시  소태면 오량리 산32-2 
시 대 조선시대

 

숙종 18년(1692년)에 세워졌으며 2m가 넘는 크기의 4면비로 당시 청룡사의 운명과 관련한 경비를 충당하기 위하여 신도들이 전답을 기증한 내용을 적은 비이다.

 

창룡사는 고려말기에 창건되어 보각국사가 머물면서 번성을 이루었던 것으로 보이나 그 이후의 사실은 이 비로서 짐작할 수 있다. 비에는 시주한 신도들의 이름과 품목 및 수량이 적혀 있으며 2~3차에 걸쳐 추가로 기록한 부분도 있어 절은 몇 차례 걸쳐 보수·중건된 것으로 보인다.

 

이 비의 받침들은 거북모양이고, 가첨석이 있는데 그 마루에는 용이 조각되어 있는 점이 특이하다. 주변에 흩어져 있던 것을 최근에 복원한 것으로 당시의 사찰운영을 알게하는 귀중한 자료이다.

 

29.미륵리사지 귀부


종 목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69호

지 정 일 2005.05.06
소 재 지 충북 충주시  상모면 미륵리 58 
시 대 고려시대


우리나라 최대규모의 귀부로 원위치의 자연석을 다듬어 만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비신은 남아 있지 않으며 비신꽂이 홈이 조성되어 있으나 일반적인 모습은 아니어서 실제 비신이 있었는지의 여부도 불투명하다. 귀갑문은 표현되지 않았고 거북등 좌측 경사면에 2마리의 새끼거북이 새겨져 있다. 

 

30.창동리 약사여래입상


종 목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71호

지 정 일 2006.03.03
소 재 지 충북 충주시  가금면 창동리 243-7 
시 대 고려시대


화강암 판석 1매에 보주형 광배와 불신을 부조한 불상으로소발위에 두터운 육계가 표현되었으며 눈썹은 반원형이며 얼굴은 통통하게 살이쪗다. 양귀는 어깨까지 닿으며 삼도가 표현되었다.

 

법의는 통견이며 왼손을 가슴에 대고 그 위에 약합을 쥐고 있으며 오른손은 가슴위까지 올려 손바닥을 밖으로 향하고 있다. 대좌는 장방형 판석에 연화문을 새기고 불상을 끼우도록 되어 있으나 원래의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31.중원 미륵리 도요지


종 목  충청북도 기념물  제100호

지 정 일 1994.12.30
소 재 지 충북 충주시  상모면 미륵리 215 
시 대 조선시대


요지는 자기나 기와, 그릇들을 만들어 굽던 가마터를 말한다.

 

미륵리 가마터는 중원 미륵사터와 가까운 거리인 점말마을의 높은 산 동남쪽 경사면에 17세기에서 20세기 전반에 걸친 여러시기의 가마가 한 곳에 밀집되어 있다. 이곳에서는 4기의 가마터와 1기의 퇴적층, 1곳의 작업장이 확인되었다. 가마구조는 계단식 오름칸 가마로 보존상태가 잘 남아 있다. 출토유물로는 청화백자, 철화백자, 초문철화백자 등이 있다.

 

미륵리 가마터에서는 20세기전반의 백자 가마와 일본식 가마가 동시에 발굴되어 한국과 일본의 도자문화 교류상황 파악은 물론 우리의 전통 가마축조 방법과 자기 생산양상 파악 등 도자사 연구의 중요한 자료이다. 

 

32.조동리 지석묘


종 목  충청북도  기념물  제119호 
지 정 일 2001.09.14
소 재 지 충북 충주시  동량면 조동리 1756 
시 대 청동시대

 

지석묘는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 고인돌이라고도 부른다. 우리나라의 고인돌은 4개의 받침돌을 세워 돌방을 만들고 그 위에 거대하고 평평한 덮개돌을 올려놓는 탁자식과, 땅속에 돌방을 만들고 작은 받침돌을 세운 뒤 그 위에 덮개돌을 올린 바둑판식으로 구분된다.

 

충주 조동리의 지석묘는 조동리 탑평마을 중심부에 위치하며 민가에 둘러싸여 있다. 여러 개의 자연돌을 고임돌로 사용하고 그 위에 커다란 덮개돌을 올려 놓은 전형적인 바둑판식 고인돌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특히 다른 지방의 고인돌과 달리 덮개돌 위에 평면 타원형의 돌을 올려 놓아 3층의 탑과 같은 구조를 이루고 있어 매우 특이한 구조를 갖추고 있다. 덮개돌 위의 2층은 본래 고인돌 축조와는 시기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이며 이는 불교 전래 이후 탑의 모습을 모방하여 쌓은 것으로 추정되어 고인돌과 불교가 결합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독특한 양식으로 주목된다.

 

조동리 지석묘는 바둑판식 고인돌로서 3층 구조의 특이한 외부구조를 갖추고 있고, 보존상태도 매우 양호하며, 청동기시대의 묘제연구에 중요한 학술 자료가 된다. 특히, 조동리 선사시대(신석기∼청동기) 생활유적과 인접하고 있어 중원지방의 청동기시대 생활문화상을 연구하는데 매우 중요한 유적이다.

 

 

33.조동리 선사유적


종 목  충청북도  기념물  제126호 
지 정 일 2002.10.25
소 재 지 충북 충주시  동량면 조동리 1368-2 
시 대 선사시대


충주 조동리유적은 1990년 9월 이 지역에 내린 집중 호우로 유적의 퇴적 층위가 깎이어 나가는 과정에서 많은 양의 유물이 지표에 노출·수습되면서 알려지게 되었다.


1996년 조동제축조공사시 구제발굴을 실시하여 신석기∼청동기문화층이 잘 발달되어 있음이 확인되었다. 1997년도에는 청동기시대 집터·불땐자리·움 등 생활유구가 조사되었으며, 2000년도에도 조사되었다.


신석기시대 문화층과 청동기시대 문화층이 잘 보존되어 있는 유적으로 신석기시대 문화층에서는 빗살무늬토기가 다량 출토되었으며 지금까지 충북지방에서 확인된 가장 오래된 신석기문화의 존재를 확인함으로서 중원지방 신석기문화의 성격을 규명하는데 중요한 유적이다.


신석기시대 문화층에서 출토된 많은 양의 빗살무늬토기를 통해 바탕흙·제작수법·문양형태 등에서 한강, 금강 및 남해안 계통의 빗살무늬토기 특징이 모두 찾아지고 있어 문화적 점이지대로서의 성격을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으며, 이것이 중원지방의 독특한 지역양식을 띠고 있는 것으로 볼 때 새로운 문화유형으로서 「중원식」의 신석기문화유형 설정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된다.


청동기시대 문화층에서는 장방형 주거지, 불땐자리, 움, 도랑 등의 다양한 청동기시대 대규모 취락지가 존재하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출토된 유물은 돌보습·돌도끼·그물추·토기 등 농경과 어로 등 생활 활동과 관련된 연모가 발달된 특징이 있고 쌀·보리·밀·조·도토리·복숭아씨 등 곡물과 열매씨앗 등이 많이 출토되어 청동기시대에 이곳에 대규모 취락을 형성하고 활발한 생산경제 활동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조동리 선사유적은 우리나라 선사문화(신석기∼청동기)의 교류와 전파, 발달 및 생업경제 등에 대한 연구를 수행함에 있어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다른 선사유적이 상대적으로 매우 빈약한 현실에서 선사시대의 생활 연구, 교육적인 가치가 높다고 평가된다.
 

 

34.신청리 지석묘


종 목  충청북도  기념물  제133호 
지 정 일 2004.11.26
소 재 지 충북 충주시  신니면 신청리 502 
시 대 청동시대


청동기시대의 개석식 지석묘(지하에 만든 무덤방을 덮을 때 받침돌 없이 덮개돌을 바로 올리는 형식의 고인돌)이다. 2004년 11월 26일 충청북도기념물 제133호로 지정되었으며, 지석묘 주변 1,789㎡가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정해져 있다.


충주 신청리 지석묘의 덮개돌 크기는 가로 4.82m, 세로 3.70m, 높이 1.25m이며 무게는 약 20t에 이른다. 본래의 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는 지석묘인 데다 덮개돌 윗면에 지름 약 3.5~10cm, 높이 약 1~3cm의 크고 작은 굼(성혈) 141개가 분포하고 있어 선사시대 거석문화 연구자료, 특히 매장행위와 관련된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덮개돌의 141개 굼 중 곱게 갈아 파 놓은 것은 81개, 거칠게 판 것은 60개이다.


2006년 현재 밭 한가운데에 놓여 있는 지석묘는 남북 방향으로 설치되어 있으나 덮개돌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기울어져 있고, 주변에서는 삼국시대 토기편과 조선시대 자기편들이 다양하게 출토되고 있다. 지석묘가 있는 신의실마을에는 작은 동굴 주변에 바위들이 흩어져 있는 일명 바위산이라 불리는 산이 있는데, 이곳에서 덮개돌 재료를 가져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석묘 부근에는 철기시대에 쌓은 토성으로서 충청북도기념물 제137호로 지정되어 있는 ‘충주 견학리 토성’이 있다.
 

 

35.견학리 토성


종 목  충청북도  기념물  제137호 
지 정 일 2006.01.06
소 재 지 충북 충주시  신니면 견학리 441일원 
시 대 철기시대


구릉 선단부에 축조한 규모가 작은 토성으로 서쪽성벽은 유실되었으나 나머지 부분은 온전하다.


해발 110-114미터 높이의 성밑마을 뒤편 구릉 윗부분에 위치하며 특이하게 네모진꼴로 쌓은 토성이다. 납작하게 다듬은 돌은 성 둘레로 한줄 돌려 기초를 만들었고 그 위로 흙을 잘 다져 판축기법으로 축성한 성이다.


현재의 성벽은 북벽 26미터,동벽 58미터,남벽도 일부가 훼손되어 17미터가량 잔존한다. 서벽은 모두 훼손되었으나 복원하면 전체 성 길이는 210미터 정도이다. 북동쪽의 문터와 성내 일부가 발굴조사되었는데 청동기시대의 돌도끼와 민무늬토기,원삼국시기의 토기,신라시대 회청색 경질토기,통일신라시대의 각종 토기와 쇠낫을 비롯한 철제품도 출토되었다.


조사결과 선사시대는 생활공간으로 사용되다가 삼국시대초기에 토성을 축조하여 이용하였으며 통일신라시대에 다시 보수된 것으로 보인다.

 

36.중원 미륵리사지 석조보살의상


종 목  충청북도 문화재자료  제47호

지 정 일 2005.05.06
소 재 지 충북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 55 
시 대 고려시대


지방형의 판석에 조각한 보살살으로 의자에 걸터앉아 사색에 잠겨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얼굴은 갸름한 편으로 마모가 심하여 정확한 형상은 보이지 않으나 머리에는 보관을 썼으며 양쪽귀를 감싸고 어깨까지 관식이 드리워져있다.

 

보살의 목에는 세 겹의 주름살이 보이고 옷은 왼쪽 어깨에만 걸치고 오른쪽 가슴은 드러낸 모습으로 표현되었으며 삼국시대부터 많이 조성된 반가사유상과 비슷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마모가 심한데다 검게 변색되어 있어 조각이 뚜렷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될 뿐 원래의 위치와 용도는 분명하지 않다. 높이 95cm, 두께 50cm, 폭은 68cm이다.

 

37.청룡사지 석종형부도


종 목  충청북도 문화재자료  제54호

지 정 일 2006.03.03
소 재 지 충북 충주시  소태면 오량리 산32 
시 대 조선시대


이 부도는 조선시대에 유행하던 전형적인 석종형 부도로서 정사각형의 지대석 위에 2단의 하대석을 놓고 화강암의 탑신을 올려놓았다.

 

탑신 윗부분은 복발 모양으로 조성하여 정상부에 3단의 돌기부분을 조각하였고, 탑신의 전면부에 문자를 음각한 흔적이 보이는데, 마멸이 심하여 눈으로는 쉽게 판독하지 않으나 '적운당사리탑'으로 추정되고 있다.

 

비교적 대형에 속하는 부도 주변에는 장석을 방형으로 돌려놓아 탑구를 형성하였다.

 

38.청룡사 다층청석탑


종 목  충청북도 문화재자료  제56호

지 정 일 2006.06.30
소 재 지 충북 충주시  직동 366 창룡사 
시 대 고려시대


높이 35센티미터의 화강암 탑신석 위에 9층의 점판암제 옥개석이 올려져 있다. 평면 정사각형이며 초층 및 2층 옥개석 하면에는 연판문이 장식되어 있으며 그 이상은 각형 층급받침을 새기고 있다.

 

충주 지역에서는 다른 예가 없으며 전국적으로도 몇 기 안되는 청석탑으로 규모는 작으나 공예품과 같은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충주의 축제)

 

1.충주밤축제
                  

지역별 충청북도 충주시
주최/주관기관 충주시 / 충주밤축제추진위원회
최초 개최년도 2000
개최기간 9월중
축제장소  충주시 소태면 소태초등학교 교정
축제성격 관광특산

▶ 축제의 유래 및 특성
◦ 충주 밤의 우수성을 널리 홍보하여 밤 판매 확대를 통한 소득증대에 기여하고, 먹거리와 볼거리, 즐길거리가 풍부한 관광충주 이미지를 제고하기 위하여 창설

 

▶ 지역특성
◦ 충주시의 서북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쪽은 엄정면, 남쪽은 가금면, 서쪽은 앙성면, 북쪽은 강원도 원주시 귀래면과 부론면에 접하고 있고 남한강이 면의 동남서 에서 서쪽으로 흐르고 있으며 동북부에 백운산맥이 있어 산악지대가 많으며 평야가 적음
◦ 주 소득원으로 밤, 고추, 담배 등을 재배하고 있음

 

▶ 축제행사종목
◦ 알밤 줍기 체험
◦ 밤 요리 전시 및 시식
◦ 밤 품평회에 출품 된 우수밤 전시
◦ 충주 밤 1일 장터
◦ 가족사진 컨테스트, 통나무자르기 등


2.충주사과축제
                  

지역별 충청북도 충주시
주최/주관기관 충주시 / 충주사과발전회
최초 개최년도 1997
개최기간  10월중

축제장소  충주체육관광장
축제성격 관광특산

▶ 축제의 유래 및 특성
◦ 우수한 품질의 사과를 생산하면서도 품질관리 및 홍보 부족으로 시장에서 제값을 받지 못하므로 철저한 품질관리와 공동브랜드 사용 및 사과 축제 개최로 충주사과의 우수성을 홍보하여 농가 소득증대에 기여하기 위해 창설

 

▶ 지역특성
◦ 교통 : 국토의 중심부 위치, 전국 어디서나 접근 용이
◦ 산악·온천·호반 등 수려한 자연경관
◦ 전국 7개문화권의 하나인 중원문화의 중심지

 

▶ 축제행사종목
◦ 사과 따기 체험 및 팜 스테이
◦ 사과 품평회 및 전시회
◦ 사과 많이 먹기
◦ 사과 두더지 달리기 대회 등

 

3.충주세계무술축제
                  

지역별 충청북도 충주시
주최/주관기관 충주시/충주세계무술축제추진위원회
최초 개최년도 1998
개최기간 10월중
축제장소  유엔평화공원(구.탄금대 칠금관광지)
축제성격 관광특산

▶ 축제의 유래 및 특성
◦ 충주가 예로부터 힘의 상징인 철의 주산지였으며, 삼국시대 이후 군사적 요충지 로써 국운을 가늠하는 역사의 고장으로
◦ 대몽항쟁의 최대의 격전지이며 전승지로 6.25사변 한국군 최초의 전승지(충주 동락전투)
◦ 2천년전 고구려시대부터 전승된 국가 중요무형문화재 제76호인 택견역사의 고장으로 충주가 수많은 외침속에서 결사 항전한 충절의 고장과 한국무술의 뿌리인 택견의 본고장을 널리 알리고, 지역경제의 활성화에 기여하기 의해 개최

▶ 지역특성
◦ 교통 : 국토의 중심부 위치, 전국 어디서나 접근 용이
◦ 산악·온천·호반 등 수려한 자연경관
◦ 전국 7개문화권의 하나인 중원문화의 중심지

▶ 축제행사종목
◦ 사전행사 : 블랙이글 에어쇼, 축하콘서트
◦ 공식행사 : 개막식, 폐막식
◦ 국내·외 무술단체 연무
◦ 특별이벤트 : 세계원화도대회, "중원의 혼(이종격투기대회)"
◦ 체험행사 : 고수의 향기(무술수련관)", 기 체험코너, 지역문화체험 등
◦ 전시행사 : 세계무술연맹회원국기증품전, 건강음식전, 무술과 서예의 만남
◦ 부대행사 및 문화행사 : 세계민속공예품 전시판매, 향토음식점, 월드푸드, 세계민속공연, 무술영화제, 무술진기명기, 100인의 조수, 무술격파왕 선발대회, 추석특별체험행사 등
 

4.수안보 온천제
                  

지역별 충청북도 충주시
주최/주관기관 수안보온천관광협의회/수안보온천축제추진위원회
최초 개최년도 1985
개최기간 4월중

축제장소  수안보온천일원, 물탕공원무대
축제성격 관광특산

▶ 축제의 유래 및 특성
* 온천의 약리적인 현상은 의학적으로 증명되었지만, 우리조상들은 나아가 온천수가 온갖 질병을 치유하는 신험이 있다고 믿음
* 그러므로 온천수는 우리생활에 제례행사를 통한 신앙의 대상이 되었고, 인간이 건강하고자 지원하게 되면서부터 생긴 자연스런 제례행우이가 수안보에서 정월 보름날에 행해 짐
* 수안보 온천은 수천년 역사를 지녀오면서 전국 최고의 알칼리성 리듐온천의 명성을 얻기 시작하면서, 조상의 온천에 대한 각종 제례 및 기타 자료를 재현함으로써 고장의 고유한 온천문화를 계승 발전시키고 온천의 관리 및 활용을 바르게 하기위해 수안보온천관광협의회 주관으로 1985년 11월 온천제 창설

 

▶ 지역특성
* 천혜의 온천자원과 유적·유물이 많은 고장 : 리듐단순유황온천, 미륵리사지, 월악산국립공원
* 관광상업농의 개발이 기대되는 지역 : 야생조류, 산채류, 토종닭, 토종벌
* 산과 계곡이 깊어 버섯, 머루, 다래 등 자연식품의 소득화 지역
* 전골 미각의 개발 : 꿩요리, 토종닭, 산채정식 등

 

▶ 축제행사종목
* 의전행사 : 산신제 및 발원제, 길놀이, 온천수 취수 봉송, 온정수신제
* 체험행사 : 온천수 체험, 물고기잡기 등
* 문화행사 : 문화예술공연 등

 

5.충주복숭아축제
                  

지역별 충청북도 충주시
주최/주관기관 충주시 / 충주복숭아발전회
최초 개최년도 2000
개최기간 8월중

축제성격 관광특산

▶ 축제의 유래 및 특성

◦ 우수한 품질의 복숭아를 시장에서 제값을 받도록 홍보하여 농가 소득증대에 기여 하고자 함

 

▶ 지역특성

◦ 교통 : 국토의 중심부 위치, 전국 어디서나 접근 용이
◦ 산악·온천·호반 등 수려한 자연경관
◦ 전국 7개문화권의 하나인 중원문화의 중심지

 

▶ 행사내용

- 식전행사 : 축하공연(풍물놀이 및 난타공연, 연예인축하공연)
- 의전행사 : 개회식, 유공자 감사패 전달, 품평회 입선자 표창 등
- 홍보행사 : 복숭아품평회, 복숭아 판촉 및 판매행사, 복숭아 음식전시, 지역 농·특산품 판매
- 체험행사 : 복숭아 관련 체험행사
- 이벤트행사 : 복숭아관련 게임, 향토가수 초청공연, 경품권추첨 등

 

6.충주호사랑호수 축제
                  

지역별 충청북도 충주시
주최/주관기관 충주시 / 충주MBC
최초 개최년도 2002
개최기간 8월중
축제장소  중앙탑공원 일원(탄금호)
축제성격 관광특산

▶ 축제의 유래 및 특성
○ 천혜의 호수 관광지인 충주호(탄금호)에서 수자원을 활용한 호수축제를 개최함으로써 한반도의 중심도시 충주를 널리 알리고 주5일 근무제 등으로 날로 증가추세에 있는 수상레저 인구의 충주 유입으로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
○ 탄금호변 중앙탑공원에 위치한 현존하는 신라석탑으로 가장 오래 된 충주지방을 대표하는 문화재인 중앙탑(국보7호)과 탄금대 일원에서 축제를 개최하여 조상의 얼을 되새기고 탄금호를 자라나는 청소년들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수상체험 학습 관광지로 개발하고
○2002년도에 호수축제를 처음 개최 시민들의 좋은 반응과 각계 각층 및 전국적으로 많은 관광객의 호응으로 매년 축제를 개최하여 오고 있음

▶ 지역특성
○ 교통 : 국토의 중심부 위치, 전국 어디서나 접근 용이(2시간내 서울1시간30분 대구1시간50분, 부산3시간,광주3시간내)
○ 산악·온천·호반 등 수려한 자연경관
○ 전국 7개문화권의 하나인 중원문화의 중심지

▶ 축제행사 내용
○뮤직페스티발 : 충주MBC주관으로 레이크콘서트,째즈블루스콘서트,팝트로트콘서트,7080세대콘서트, 청소년락페스티발, 한여름밤의색소폰등
○수상대회 : 전국드레곤보트경주대회,전국물축구대회,전국철인3종경기등
○수상체험 : 강변수영장운영, 드레곤보트, 물축구, 래프팅보트타기, 바나나보트타기, 카타마란타기,수상트렘플린등
○부대행사 :
·호수반딧불별축제,호수깃발서예전,이벤트행사, 진기명기프로그램, 댄스페스티발(발리,째즈댄스등)
·봉숭아물들이기, 솟대공예, 천연염색체험,과학실험체험,열기구체험등
 


7.앙성탄산온천휴양축제
                  

지역별 충청북도 충주시
주최/주관기관 충주시/앙성온천관광협의회
최초 개최년도 1998
개최기간 8월중

축제장소  앙성온천관광 특설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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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성격 관광특산

 

▶ 축제의 유래 및 특성
전국 유일의 탄산온천수의 영원한 용출을 기원하며 우리지역 천혜의 관광자원과 연계하는 관광축제로 발전시켜 지역발전의 터전구축과 충주 관문으로서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여 21C 한반도의 중심 도시 충주 건설에 기여한다. 수안보온천과 함께 충주를 부각시킬 수 있는 축제로 발전지역 주민과 관광객이 함께하는 축제로 승화시킴으로써 관광객 유치를 통해 지역경제활성화 도모 및 온천개발에 일익을 담당한다.

 

▶ 축제행사 내용

문화행사 : 개막식, MBC스파콘서트, 민속놀이경연대회, 삼도가요제 등
체육행사 : 충주앙성복숭아마라톤대회 등

 

8.우륵문화제
                  

지역별 충청북도 충주시
주최/주관기관 예총충주지부/우륵문화제추진위원회
최초 개최년도 1971
개최기간 9월중

축제장소  충주시내일원(문화회관, 문화의 거리, 관아갤러리, 우륵당, 젊음의 거리 일원), 충주시립 우륵국악대
축제성격 문화예술축제

▶ 축제의 유래 및 특성

◦ 1971년 한국예총 충주지부 설립과 함께 충북 북부지역의 예술문화활동 및 전통있는 향토문화 계승과 창달을 목표로 제1회 우륵문화제 개최

 

▶ 지역특성

◦ 교통 : 국토의 중심부 위치, 전국 어디서나 접근 용이
◦ 산악·온천·호반 등 수려한 자연경관
◦ 전국 7개문화권의 하난인 중원문화의 중심지

 

▶ 축제행사종목

◦ 전통민속행사 : 명현추모제, 목계별신제, 중앙탑탑돌이 등
◦ 공식행사 : 개막식(길놀이 포함) 및 폐막식, 조선통신사행열 재현
◦ 경연대회 : 전국탄금대가야금경연대회, 강수백일장, 감자꽃 동시 백일장 등
◦ 기 타 : 우륵국악단 공연, 학술세미나, 민속장터 및 특산품 전시장 운영, 각종 예술 전시회 등

 

9.충주복숭아축제


지역별 충청북도 충주시
주최/주관기관 충주시/농협, 충주복숭아발전회
개최기간 8월중

축제장소  충주체육관 광장
축제성격 문화예술축제

▶ 축제의 유래 및 특성

2007년도 충주재배면적은 974ha(전국의 6%)로 전국 자치단체 중 3위를 차지하여 충주복숭아의 우수성을 대내외에 널리 알려 『충주는 복숭아의 고장』 이라는 전국적 이미지 제고, 복숭아재배 농가의 자긍심을 고취시키는 계기 마련. 복숭아 수확의 기쁨을 시민과 함께 하는 한마당 축제로 승화발전.


▶ 축제행사 내용 
- 식전행사 : 축하공연(풍물놀이 및 난타공연, 연예인축하공연)
- 의전행사 : 개회식, 유공자 감사패 전달, 품평회 입선자 표창 등
- 홍보행사 : 복숭아품평회, 복숭아 판촉 및 판매행사, 복숭아 음식전시, 지역 농·특산품 판매
- 체험행사 : 복숭아 관련 체험행사
- 이벤트행사 : 복숭아관련 게임, 향토가수 초청공연, 경품권추첨 등


10.수안보대학찰옥수수축제


지역별 충청북도 충주시
주최/주관기관 수안보대학찰옥수수축제위원회/수안보농업협동조합, 수안보대학찰옥수수작목반
개최기간 7월중
축제장소  수안보 물탕공원
축제성격 문화예술축제

 

▶ 축제의 유래 및 특성


천연 온천의 고장인 수안보에서 지역특산품의 하나인 대학찰옥수수를 테마로 한 서민적이고 토속적인 성격의 축제로서 대학찰 옥수수의 우수함을 널리 홍보하고 농촌의 정취와 친근함을 흠뻑 빠져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향토의 전통과 미풍양속을 계승 발전시켜 수안보 면민의 화합을 도모하며 농산물 수입 개방으로 어려운 농촌에 새로운 소득 작목으로 육성하여 농업인의 소득향상과 관광 수안보 온천을 홍보하여 지역경제 발전을 홍보하여 지역경제 발전의 계기를 마련함을 목적으로 한다.


▶ 축제행사 내용 

- 1부 : 개막식 및 옥수수한마당
- 2부 : 이벤트공연
- 3부 : 축하공연
- 4부 : 부대행사(특산품 판매 등)

2011.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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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처

    충주시청, 문화체육관광부 및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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