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무명 희생자 5인을 찾습니다”

강현석 기자

2001년 10월. 사망 21년 만에 세상에 나왔던 5·18민주화운동 희생자 유골 5기가 잊혀지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국립5·18민주묘지로 옮겨진 유골은 ‘무명열사’ 묘비 아래 다시 묻혔다. 유품은 보존처리를 거친 뒤 곧바로 수장고로 들어갔다.

5·18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이 묻힌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는 36년이 지난 13일 현재까지도 이름이 확인되지 않은 희생자 5명이 ‘무명열사’ 묘비 아래 잠들어 있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5·18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이 묻힌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는 36년이 지난 13일 현재까지도 이름이 확인되지 않은 희생자 5명이 ‘무명열사’ 묘비 아래 잠들어 있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그리고 15년이 흘렀다.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희생자들을 두고 5·18을 폄훼하는 일부 세력은 “북한군이라는 증거”라는 황당한 주장을 하기 시작했다. ‘무명 희생자’ 5명은 5·18민주화운동 이후 36년의 부침을 대변한다.

이들은 1980년 5·18 직후 신원이 확인되지 않았던 6명과 함께 시립묘지였던 망월동 5·18 옛 묘역에 묻혔다. 그러다 2001년 10월 5·18민주묘지로 이장하기 위해 발굴이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유전자(DNA) 분석을 통해 6명이 가족을 찾기도 했지만 그게 마지막이었다.

경향신문은 발굴 뒤 15년 동안 5·18민주화운동기록관 수장고 오동나무 상자에 보관돼 있던 무명 희생자 5명의 유품을 지난달 처음으로 다시 꺼냈다. 유품을 분석해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단서를 추적하기 위해서였다. 취재결과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유력한 단서들이 36년 만에 하나씩 드러났다.

먼저 발굴 당시 유골 측정 기록을 찾아 조선대 치대 윤창륙 교수(61)와 경찰청 과학수사대 등 전문가들에게 의뢰해 키와 나이를 확인했다. 희생자가 당시 입고 있던 체육복 상의를 통해 해당 학교를 찾았고, 본체와 금속 밴드의 브랜드가 각각 다른 손목시계의 비밀도 풀었다. 36년 전 검찰이 찍어둔 시신의 컬러 사진과 일부 희생자의 신체 특징도 확인했다.

이장 당시 확보된 이들의 DNA는 전남대 법의학교실 냉동고에 보관돼 있다. 가족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확인이 가능하다. 광주시는 “무명열사 가족이라고 추정되는 분들이 연락해 오면 사전 검증을 거친 뒤 유전자 분석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광주시 5·18민주선양계(062-613-2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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