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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불온한 상상, 녹색당의 실험

입력
2016.02.11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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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서양을 눈앞에 둔 스페인의 폰테베드라(Pontevedra) 시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구 8만 명의 특징 없는 상업 도시에 불과했다. 폰테베드라 시의 주도지만 포르투갈 접경에 위치한 관광도시 비고(Vigo)를 가기 위한 통과점 정도로만 여겨지던 곳이다. 그런데 이곳이 몇몇 언론에 소개되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한눈에 받고 있다. 자동차가 없는 도시기 때문이다. 서울 4대문 도성 넓이의 폰테베드라의 중심가에는 개인승용차는 물론이고 버스도 진입이 불가능하다. 지하철도 없다. 오로지 도보로만 이동이 가능하다. 변화의 결과는 오래가지 않아 나타났다.

차량 출입이 금지되자마자 주거지역 골목 상권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차를 타고 대규모 쇼핑몰에 나가 생활물품을 구입하는 것보다 골목에서 그때그때 필요한 물품을 사는 것이 더 편해졌기 때문이다. 대기질이 개선되자 관광객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인구가 적은 중소도시에 활력이 생겼다. 교통비가 거의 들지 않다 보니 생활비가 줄어들었고, 아이들은 어떤 거리에서도 자동차로부터 안전하다. 처음에는 모두가 불편을 호소했지만, 15년이 지난 지금은 모두가 만족하고 있다.

변화의 정치 하면 으레 첫손으로 꼽히는 독일 녹색당도 시작이 어렵긴 마찬가지였다. 사회운동 영역을 의회정치의 영역으로 끌어오겠다는 기치를 내걸었지만, 신사회운동의 바람을 탔음에도 불구하고 1980년 총선에서 1.5% 지지를 얻는 데 그쳤다. 하지만 독일 녹색당은 포기하지 않았다. 기존 정치권이 전혀 관심을 두지 않던 정책 방향을 제시하면서 차별화를 지속했다. 그 결과 1983년에 5.6% 지지를 얻어 원내 진입에 성공했다. 1998년에는 사민당과 적록연정을 탄생시키며 집권 여당이 되기도 했다. 2005년에 다시 야당이 되기까지 녹색당은 독일의 탈핵, 에너지 전환을 주도했다. 그 결과 독일은 핵발전소 없이도 에너지가 부족하지 않고, 세계 재생가능에너지 시장을 주무르는 경제 강자로서 군림하고 있다. 유전자조작식품 표시 제도를 도입하고, 주별로 녹지 비중을 의무화하여 난개발을 막은 것도 독일 녹색당이다. 도입 당시에는 비상식적인 정책이라며 독일 내에서도 거센 반발을 샀지만, 지금은 독일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도 그 정책들이 상식이다.

우리에게도 그런 변화의 바람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우리나라에도 녹색당이 있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사고를 계기로 2012년 총선 직전에 녹색당이 창당했다. 19대 총선에서 탈핵을 내걸고 비례대표 후보 3인을 냈지만 득표율 0.48%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꽤 오랜 시간 공들였던 2014년 지방선거에서도 당선 소식은 전해지지 않았다. 4월 20대 총선에도 지역구 후보와 비례대표 후보를 내겠다는 계획이지만, 현실적으로 원내 진입은 녹록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선거 결과는 차치하더라도 녹색당이 내세운 공약들은 눈여겨봐야 한다. 핵발전소 폐쇄와 같은 전통적인 녹색 정책은 물론이고, 북유럽에서 시도되고 있는 기본소득제도의 도입, 자동차 수요 억제 등 수권정당들이 내놓기에는 어려운 정책들이 눈에 띈다. 성장을 전제로 한 난개발 공약이 쏟아지고 있는데, 녹색당은 폰테베드라 시의 실험과 같이 ‘동네에서 먹고 살자’고 주장한다. 대형마트 동네 진입금지와 젠트리피케이션을 막기 위한 상가임차인보호 제도가 대표적이다.

변화는 쉽지 않다. 사실 우리가 폰테베드라 시에 관심을 보이는 것도 부러움보다는 범접할 수 없는 경외감 같은 것일지 모른다. ‘헬조선’이란 신조어가 신문 헤드라인으로 등장하는 사회에서 희망은 고문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처음부터 거대한 전환이란 없다. 변화란 누군가가 꿈을 꾸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혼자 꾸는 꿈은 꿈으로 남지만 같이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 우리 사회가 녹색당의 도전을 눈여겨봐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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