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뇌질환 유발’ 정황

사용 후 ‘1급 발달장애’ 12살 우경이

이혜인 기자

“미숙아에 나쁜 균 들어갈까 정성껏 쏘여…석 달 뒤 폐질환·심장 구멍…발달장애로”

2004년 5월 1㎏도 안되는 몸으로 태어난 우경이가 출생 직후 중환자실에서 가습기 살균제가 들어간 증기를 들이마시고 있다. 당시 가습기에 굵은 호스를 연결해 우경이 코 앞에서 증기가 나올 수 있도록 고정했다.

2004년 5월 1㎏도 안되는 몸으로 태어난 우경이가 출생 직후 중환자실에서 가습기 살균제가 들어간 증기를 들이마시고 있다. 당시 가습기에 굵은 호스를 연결해 우경이 코 앞에서 증기가 나올 수 있도록 고정했다.

‘삐~.’

손바닥만 한 아기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기기에 찍힌 산소포화도 수치는 0을 향해 빠른 속도로 떨어지고 있었다. 병실에 있던 간호사들이 아기가 있는 침대로 모여들었다. “아이고, 우리 우경이 좀 살려달라예!” 아기 엄마가 울먹였다. 엄마는 벌떡 일어나서 가습기로 향했다. 방금 막 청소를 마친 가습기에 물과 가습기 살균제를 채워넣었다. 엄마는 가습기 증기가 나오고 있는 굵은 호스 한쪽 끝을 잡아서 우경이 입에 바짝 가져다댔다. ‘나쁜 균이 없어져야 우리 우경이가 산다꼬!’

2004년 5월23일. 예정보다 13주나 일찍 세상에 나온 우경이는 그렇게 숱한 고비를 맞았다. 몸은 1㎏이 채 안됐다. “우리 아이 괜찮을까예?” 의사가 말했다. “좀 작게 나왔지만 건강합니다. 병원에서 몇 개월 더 자란 다음에 퇴원합시다.” 작은 우경이의 호흡은 불안정했다. 호흡이 안정될 때까지 산소호흡기를 낀 채로 중환자실에 있기로 했다. 의사가 중환자실 한구석에 있는 가습기를 가리키며 말했다. “가습기가 호흡에 도움이 되니 계속 틀어주세요.” “예, 선생님!” 간호사가 가습기에 분홍색 호스를 연결해 고정했다. 증기를 우경이 코 바로 앞에 쏘여줄 수 있게 한 것이다.

엄마는 병실에서 쓸 물건들을 사러 마트에 갔다. ‘가습기메이트-가습기 전용 살균제’라고 쓰인 제품이 매대에 진열돼 있었다. ‘가습기에는 포도상구균이라는 위험한 균이 산다.’ 뉴스에서 본 말이 떠올랐다. 가습기메이트 서너 병을 카트에 담았다. 병원에 돌아오자마자 가습기 수통을 세제로 씻었다. 물을 채우고 가습기메이트를 용기 뚜껑에 따라 넣었다.

지켜보던 의사가 말했다. “가습기 열심히 틀어주세요, 어머니.” 가습기 살균제는 보름에 한 통 정도 썼다.

3개월이 지났다. 중환자실에 있던 우경이는 퇴원을 준비하며 일반 병실로 옮겼다. 간이침대에서 자던 엄마는 뚜뚜거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 우경이 얼굴이 파랬다. “선생님!” 긴급상황을 직감한 의사 손이 아이의 작은 배를 덮었다. 격렬한 심폐소생술에 우경이의 갈비뼈가 부러졌다. 0으로 가던 산소포화도가 다시 70으로 돌아왔다. “우리 우경이 왜 이럽니꺼?” ‘원인불명의 폐질환’이라는 말이 차트에 적혔다. 우경이는 다시 중환자실로 갔다. 4개월이 지난 후 병원에선 “가망이 없다”고 했다. 우경이는 인턴의사와 엄마가 엠부(수동식 인공호흡기)를 교대로 누르는 구급차를 타고 부산에서 서울까지 갔다.

우경이는 출생 직후부터 3년 동안 가습기 살균제를 넣은 가습기 증기를 들이마셨다. 우경이가 두 살 때 집에서 찍은 사진 뒤편에 가습기 메이트 병이 놓여 있는 것이 보인다. 왼쪽 사진은 가습기 메이트 제품 사진.

우경이는 출생 직후부터 3년 동안 가습기 살균제를 넣은 가습기 증기를 들이마셨다. 우경이가 두 살 때 집에서 찍은 사진 뒤편에 가습기 메이트 병이 놓여 있는 것이 보인다. 왼쪽 사진은 가습기 메이트 제품 사진.

서울의 병원에서는 1년을 더 있었다. 우경이 심장에서 구멍이 발견돼 심장수술을 두 차례 했다. ‘원인불명의 심장질환’이 차트에 추가됐다. 병원에서 더 할 수 있는 치료가 없어 퇴원을 했다. 퇴원하는 날 간호사가 엄마에게 엠부를 주면서 심폐소생술을 가르쳐줬다. 우경이 얼굴은 자주 파랗게 질렸다. 한밤중에 구급차로 서울의 병원까지 올라가는 일이 열 번 더 있었다. 집에 돌아온 엄마는 밤에 잠을 잘 자지 못했다. 그래도 가습기를 깨끗이 씻고 가습기 살균제를 넣어주는 일만은 잊지 않았다.

두 살이 될 때쯤 산소호흡기 없이 우경이가 숨쉴 수 있게 됐다. 첫돌 때 하지 못한 돌잔치를 두 돌에 했다. 우경이와 동갑인 친척 아이가 방을 뛰어다녔다. 혼자 힘으로 앉지 못하는 우경이는 남편이 붙잡고 앉혔다. “우경아, 여기 보래이” “우경아” 아무리 불러도 우경이는 허공만 바라봤다. 엄마의 머릿속에 ‘보통 아이들보다 발달이 느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동치료를 시작했다. 우경이를 업고 5층 계단을 오르내리는 치료실을 다녀오면 녹초가 됐다. 가습기 물을 갈기 힘들어 가습기를 쓰지 않게 됐다. 가습기 살균제는 언제부턴가 집에서 보이지 않았다.

2011년 어느 날, 부부는 뉴스를 봤다. 텔레비전에 울부짖는 사람들이 나왔다. 옥시에서 만든 가습기 살균제를 썼다고 했다. “하이고, 옥시 썼으면 우짤 뻔했노. 우린 애경 거 써서 천만다행 아이가.” 엄마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런데 뉴스를 본 이후로 자려고 누우면 가습기에서 뽀얀 증기가 뿜어져나오던 병실 풍경이 떠올랐다. ‘혹시 가습기 살균제 때문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경이가 어릴 때 찍은 사진 수백장을 살폈다. 우경이 얼굴 뒤편에 가습기메이트 병이 놓여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올해로 12살이 된 우경이는 팔다리가 가늘게 자랐다. 무릎 아래 근육이 제대로 자라지 않아 혼자서는 걷지 못하고 휠체어를 타야 한다. 엄마가 “우경아” 하고 부르자 방 저쪽 끝에 있던 우경이는 낑낑거리며 기어왔다. “어제 서울 갔던 거 재밌었나.” 우경이는 대답하지 않고 다른 곳을 쳐다봤다. 우경이는 어제 있던 일을 기억할 때도 있고 못할 때도 있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한 장애검사에서 뇌병변과 지적장애, 발달장애 1급 판정을 받았다.

우경이는 가습기 살균제를 생후 약 3년간 사용했다. 산소만큼 가습기 증기를 많이 들이마셨다. 발달장애와 천식, 비염이 있다. 2004년부터 2016년까지 ‘원인불명’의 온갖 질환으로 병원에 간 것만 852차례다. 엄마는 건강하게 나아 곧 퇴원할 거라던 우경이에게 생긴 발달장애가 가습기 살균제 때문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닐 수도 있지만 그럴 가능성과 근거 역시 충분히 존재한다. 엄마는 묻는다. “우리 애는 옥시 가습기도 안 썼고 폐질환이 아니라 발달장애인데 어디다 말해야 됩니꺼?”

우경이가 쓴 애경 가습기메이트에 들어 있는 CMIT·MIT는 환경부가 지목한 가습기 살균제 피해 원인 물질에서 빠져 있다. 우경이도 접수한 4차 가습기 살균제 피해의 대상자는 ‘가습기 살균제에 사용된 화학물질로 인한 폐질환의 인정을 받고자 하시는 분’으로 제한돼 있다. 현재 진행 중인 검찰의 가습기 살균제 수사에서도 가습기메이트 제조사인 SK케미칼과 판매사인 애경은 제외됐다. 우경이는 아픈데 왜 아픈지 아직 아무도 모르고, 아무도 알려 하지 않는다.

■특별취재팀
김기범·이혜인·이혜리·이효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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